지역을 살리는 해외 사례 발굴

문화적 변화에 주목하는 프랑스

한국 지방 위기 대처 방안 모색

최인숙 박사
최인숙 박사

1년 뒤 2024년 4월 10일 제 22 대 총선을 치른다. 한국은 선거 때마다 특히, 수도권의 후보자들이 SRT나 GTX, 큰 종합병원 신설 등을 공약하며 표심을 사려고 한다.  총선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지역 살리기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감소와 지역불균형 개발로 인해 일부지역이 황폐화되고 통폐합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수도권 중심의 지나친 개발로 지방이 위협받고 있다. 이는 인구감소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수도권 일변도의 공공시설, 편의시설 집중이다. 다시 말해 지역불균형 개발이 가장 큰 원인이다. 수도권 중심의 개발을 여전히 과도하게 진행하면서 지방소멸을 방지하는 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이와는 달리 프랑스나 스위스, 스웨덴과 같은 유럽권 국가에서는 지형적 조건과 인구감소로 야기되는 불평등 문제를 조정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이나 일본 상황과 달리 최근 20년간 도시인구가 농촌으로 이주해 들어가는 ‘도시탈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통계치는 상당히 유의미한 것으로 밝혀졌다.

창간 24주년을 맞은 CEONEWS는 지역을 살리는 해외사례를 발굴해 소개하면서 지방소멸이란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걸 증명하려는 현장을 2024 총선을 1년 앞두고 연중기획으로 보도하고자 한다.

우선 프랑스를 시작으로 해외 11개국 현장을 찾아 국내 상황과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하고 우리가 처한 지방위기의 대처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지방 소멸이라는 과격한 용어에 대한 비판

요즘 가장 큰 화두는 '지방 소멸'이다.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 발전으로 지방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과연 정확한가? '소멸'은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어느 지방이 과연 소멸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영남지방, 호남지방, 부산지방, 전주지방? 이 지방들은 우리 생전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후세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방'은 분명 '면'이나 '마을' 단위보다 훨씬 큰 행정구역이다. 그런데 지방이 소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억지스럽고 과격하다.

‘지방소멸(地方消滅)’이란 단어는 일본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増田 寛也)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테현(岩手県) 3선 지사를 역임하고 총무대신까지 지낸 히로야는 2014년 <中央公論>에 ‘괴사할 지방도시’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를 2015년 책으로 출판하면서 ‘괴사’ 대신 ‘지방소멸’이란 용어로 표제를 장식했다.

이에 대해 야마나시대학 이마무라 쯔나오(今村 都南雄)교수는 ‘괴사’를 ‘지방소멸’로 바꾸어도 강한 위화감이 남는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히로야가 사용한 지방소멸 지표인 20~39세의 ‘젊은 여성인구 비율’은 큰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도야마대학 히데토모 오야이즈(小柳津 英知) 교수 역시 대도시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소멸 가능성 도시'의 수를 추계하고 그것을 확정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히로야의 말은 억지스럽다고 평가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지방소멸'이라는 충격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사막화(désertification)’, ‘변방화(périphérique)’ ‘외곽화’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물론 '소멸'이란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지방차원의 소멸이 아닌 마을 차원의 소멸을 얘기할 때 사용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인구 감소로 인해 읍·면 단위의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대 약 3만6000개였던 코뮌(Commune) 수가 2016년에는 3만5885개로, 2020년에는 3만4968개로 대폭 감소했다(표1 참조). 이러한 상황에 따라 마을의 종말론이 솔솔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사회학자 장 피에르 르 고프(Jean-Pierre Le Goff). 그는 지난 2012년 '마을의 종말(La Fin du village)'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책에서 그는 "프랑스에서 마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러나 '마을의 종말'은 르 고프가 간단히 입에 담은 용어가 아니다. 30년간의 연구 결과 끝에 내 놓은 얘기다. 그가 이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그해 그는 프로방스 보클뤼즈 지역에 있는 카드네(Cadenet)를 사례 연구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이 때부터 5년간 그는 공공장소에서 이 마을의 주민들과 식사도 하고 축제를 즐기며 카드네를 세세히 관찰하고 연구했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코뮌에서 발행된 회보를 섭렵하고 주민들과 약 100여 차례의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료들과 각종 통계자료를 섞어 인류학적 관점에서 종합분석한 결과가 그의 책 '마을의 종말'이다. 이처럼 치밀한 연구 끝에 탄생한 책이건만 책 제목은 프랑스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따라서 한 기자가 저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당신의 책 제목은 ‘마을의 종말’입니다. 하지만 마을은 여전히 물리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종말’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르 고프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연구가 마을이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지방의 인구 감소와 마을 공동체의 변화에 초점

이처럼 유럽에서는 지방 소멸에 대한 논의가 한국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지방의 인구 감소와 마을 공동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과 문화적 변화를 논의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이러한 논의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도 '지방소멸'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지역 사회의 변화와 인구 이동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어, 지방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더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지방 개발에 대한 토론을 더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인숙 프로필

파리3대학에서 '선거여론조사 공표가 여론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고, 파리7대학에서 '일본 정치시스템의 현대화와 1993년 총선'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파리 시앙스포에서 '일본과 한국 여론조사의 제도화 과정'을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비교ㆍ분석해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동경대 사회심리학과에서 여론조사 신방법론 연구로 박사후기 과정을 마쳤다. 고려대학교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 연구교수 재직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아동빈곤과 불평등, 기본소득에 대해 연구하였다. 경기대 한반도 전략문제 연구소 부소장으로 북한 이탈주민과 통일 관련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한국인의 여론', '기본소득제 실현가능성: 프랑스 사례', '한국비정규직의 정치참여형태(La guerre des cuillières: préarité sociale et politique en Corée' 등이 있고, 역서로 '우유부단의 심리학' '빈곤아동의 현장을 가다'가 있다. 저서로 '빠리정치 서울정치' '기본소득, 지금 세계는', 공저로 '여론으로 본 한국사회의 불평등' '불평등 시대의 시장과 민주주의'가 있다.

이 칼럼은 저자가 대전대 SSK 연구팀 ‘지방소멸 위기 대응을 위한 한국형 제4섹터 활성화 연구’ 프로젝트에 공동연구교수로 참여 프랑스, 스위스 코뮌의 위기요인과 대응책 연구를 하면서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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