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그립습니다] 레전드 CEO를 찾아서-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편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사진=롯데)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사진=롯데)

[CEONEWS=박세영 기자] 생전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집무실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과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도 혼자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 달리 집무실 규모도 아주 소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명예회장이 2020년 1월 19일 타계한지 3주기다. CEONEWS는 레전드 CEO 추모 시리즈 ‘회장님! 그립습니다’의 올해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를 만나본다.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창업주 흉상에 추모하는 모습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창업주 흉상에 추모하는 모습

 

신격호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회장이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나남)에 따르면, 그는 20대 때는 문학을 좋아했다. 틈틈이 세계문학을 접했고 그중 대문호 괴테를 특히 즐겨 읽었다고 한다. “부인을 처음 만나 선물한 책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을 정도로 롯데는 그의 사업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중요한 화두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는 철저하게 기본을 중시한 경영으로 유명하다. 가장 먼저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고, 판매조직을 철저하게 정비하고 점검하며, 이를 모두 갖춘 뒤에는 상품 홍보 캠페인으로 고객을 끌어들였다. 이것은 그가 70여 년 간 롯데그룹을 이끌며 대한민국의 유통산업을 발전시킨 3개의 기둥이었다. ‘입속의 연인’ 롯데 껌은 그가 만든 작품이다.

 

그는 1941년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일본 롯데, 1967년 한국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식품, 유통, 석유화학 등 다양한 사업 부문으로 롯데를 키워낸 주인공이다. 그는 세상에 ‘맨손의 거인’이란 이름을 남겼다. 그는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관광산업 분야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의 관광산업에 대한 열정은 롯데월드타워로 완성했다. 올해는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타계(2020년 1월 19일)한지 3주기다.

울산에서 일본으로…주경야독 문학청년, 괴테에 매료되다

신격호는 1921년 경남 울주군 삼동면에서 5남5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양을 목축하는 도립 종축장에서 잠시 일하다 배움의 열망으로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다. 뱃삯을 내고 남은 돈은 83엔, 친구의 자취방에서 지내며 우유배달을 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와세다중학 야간부에 다닌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며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야간부 화학과에 진학한다. 문학을 좋아했던 청년 신격호는 고학 생활 틈틈이 책을 읽었다. ‘롯데’라는 기업의 이름은 젊은 시절 그의 마음을 뒤흔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로테(charlotte)’에서 가져왔다.

성실함을 담보로 빌린 큰돈, 청년사업가의 밑거름이 되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 2학년 당시 신격호에게 전당포와 고물상을 운영하던 노인 하나미쓰가 찾아와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하며 당시 돈으로 5만엔을 투자받는다. 하나미쓰는 커팅오일 공장운영을 제안했고 신격호는 청년사업가가 되어 사업을 준비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에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으로 공장이 완파되었고, 남은 돈으로 다시 시작한 커팅오일 공장 역시 미군에 다시 폭격을 당해 전소되는 시련을 겪는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에게 거금을 투자한 은인에게 돈을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한 번 돈을 다른 이에게 융통하여 세탁비누와 세숫비누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도 생활필수품 수요는 생길 것이라는 신격호의 예상대로 비누, 포마드 크림 등이 불티나게 팔려 1년 여 만에 하나미쓰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도 집 한 채까지 선물하게 됐다.

불티나게 팔린 롯데껌 공장. (사진=롯데)
불티나게 팔린 롯데껌 홍보 장면. (사진=롯데)

 

‘입속의 연인’ 껌의 인기 업고 1948년 일본 롯데 설립하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들여온 껌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자 신격호는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껌을 사들여 씹으면서 연구했고, 식품안전을 위해 약제사까지 고용한 뒤 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다른 품질의 ‘신격호표 껌’이 우수하다는 점은 바로 소문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과자점 주인들은 줄을 서서 납품을 희망했다. 이때 그는 투자자를 모집해 본격적으로 기업을 설립한다. 1948년 6월,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 ‘롯데’가 탄생했다. 그는 인근의 주부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면서 고학생들에게는 '학비'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밀려드는 주문량도 모두 소화해냈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사진=롯데)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사진=롯데)

 

1967년 ‘달콤한 과자 대명사’ 롯데제과 설립, 기업보국 실천하다

초콜릿의 시장성을 내다본 신격호는 유럽에서 스위스 출신 최고의 기술자 막스 브라크를 영입하는데 성공하고 최고의 시설을 갖춰 일본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는 롯데가 일본에서 종합메이커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가 됐으며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으로 진출하여 성공을 이어갔다. 1965년 한일수교로 롯데의 국내투자의 길이 열리자, 그는 한국으로 들어와 1967년 4월 대한민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그는 롯데제과를 통해 국내 식품 산업의 빠른 현대화와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0년대에는 식품산업 부문을 확대해 사업다각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 투자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기업보국 신념 아래 모국 투자를 확대하여 일본보다 한국사업을 점차 강화했다.

창의성과 탁월한 마케팅 감각, 종합광고회사를 설립하다

 

신격호는 남다른 마케팅 감각과 창의성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창기 일본에서 껌을 생산, 판매할 때 풍선껌을 쉽게 불 수 있도록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판매하거나 껌 포장 안에 1000만엔 추첨권 이벤트를 마련해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직접 제품명을 만들거나 제품의 광고문구 작업에도 참여했다. TV, 신문광고 등 홍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일본 롯데 껌의 대표 홍보 카피인 ‘입속의 연인’이라는 문구나, 롯데리아의 ‘리브샌드’라는 상품명을 직접 짓기도 했다. 이후 그는 광고 및 마케팅 산업을 리드하는 종합광고회사 대홍기획을 1982년 설립했다.

롯데호텔,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에 관광산업을 개척하다

국가의 장래를 고민하던 신격호는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관광’을 통한 번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9년 10월, 6년간의 공사 끝에 롯데호텔(서울 소공동)의 문을 열며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지하 3층, 지상 38층, 객실 1020개를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준하는 약 1억5,000만 달러가 투입되었는데, 당시 호텔이나 관광 상품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과감한 결정이었다. 롯데호텔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치러질 당시 우리나라가 국제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들에게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

신격호는 한국 관광산업이 고궁 등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변혁을 시도한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 밀려 있던 관광업을 민간의 힘으로 개척하려 한 것이다. 그는 1984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 건설사업’을 시작하도록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와 호텔, 백화점을 함께 짓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 잠실의 건설부지는 황량한 모래벌판과 물웅덩이 유수지였고 게다가 주변은 참외밭이어서 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권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과 수준 있는 서비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강조하며 잠실이 명동만큼 번화한 곳이 될 것이라 확언했다. 그것은 곧 현실이 됐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경 (사진=롯데)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경 (사진=롯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축물을 남기는 꿈을 실현하다

신격호는 대한민국 랜드마크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1987년 서울시로부터 랜드마크 사업에 필요한 부지 8만6,000여㎡를 매입했다. ‘롯데월드타워'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이후 롯데월드타워 건설 프로젝트는 건축 허가까지 24년이 소요됐고, 안전성 문제 등으로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는 ‘된다’고 믿었다. 2017년 신격호의 롯데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이자 2021년 기준,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했다. 총공 사비 약 3조 8,000억 원, 연인원 500만 명, 하루 최대 7천여 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지금 롯데월드타워는 ‘한국 건축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며, 서울의 낮과 밤을 지켜보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연보

1921.11 경상남도 울산 삼동면 출생 5남 5녀 중 맏이

1939 울산농업전수학교 졸업

1941 일본으로 건너감

1946 일본 와세다대 고등공업 이공학부 졸업,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 설립

1947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에서 껌 생산 시작

1948.6 (주)롯데 설립(일본), 종합제과업체로 발돋움 시작

1958.5 ㈜롯데 설립(한국)

1966.11 동방아루미공업 설립(현, 롯데알미늄)

1967.4 롯데제과 설립(한국)

1973.5 호텔롯데 설립

1973 롯데전자공업 설립 (현, 롯데알미늄 흡수합병)

1974 롯데상사 설립, 칠성한미음료 인수(현, 롯데칠성음료)

1977 삼강산업 인수 (현, 롯데제과)

1978 평화건업 인수 (현, 롯데건설)

1978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1979 호남석유화학 인수 (현, 롯데케미칼)

1979 롯데리아(현, 롯데GRS), 롯데쇼핑 설립

1981 동탑산업훈장 수훈

1982 대홍기획, 롯데자이언츠 설립

1983 롯데장학재단, 롯데중앙연구소 설립

1985.5 롯데캐논(현 캐논코리아) 설립

1988 롯데호텔월드, 롯데백화점 잠실점 개장

1989.7 롯데월드 개장

1994.8 롯데복지재단 설립, 코리아세븐 인수

1995.9 금탑산업훈장 수훈

1995.11 롯데캐피탈 설립

1996 롯데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및 롯데정보통신 설립

1998.4 롯데마트 설립

1999.9 롯데시네마(현, 롯데컬처웍스) 설립

2000 롯데슈퍼 설립

2000.1 롯데닷컴(현, 롯데이커머스) 설립

2005.1 현대석유화학 2단지 인수, 롯데대산유화(현 롯데케미칼) 설립

2007 우리홈쇼핑 인수, 롯데홈쇼핑으로 채널명 변경

2012 하이마트 인수(현, 롯데하이마트)

2015 KT렌탈 인수(현, 롯데렌탈), 미국 '뉴욕팰리스호텔' 인수

2016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 삼성BP화학(현, 롯데이네오스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현, 롯데케미칼) 인수

2017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롯데지주 주식회사 출범,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프닝

2020.1. 19. 별세

 

*참고자료

1. 위대한 창업자들, 고정일 지음, 조선뉴스프레스, 2017.

2.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한계를 넘어 더 큰 내일로, 나남, 2021.

3. 전경련 디지털기업인박물관, 전경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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