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롯데 100년 신화창조

[CEONEWS 이재훈 기자]국내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이 올해 4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창립 기념식에서 질적 성장을 위한 뉴 비전 ‘Lifetime Value Creator’를 선포하며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발자취를 조망해 본다.
이재훈 기자 ljh@ceomagazine.co.kr        

롯데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4월 3일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변화에 과감히 도전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행사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각 사 대표이사 및 국내외 임직원 총 800여명이 참석했다. 롯데가 그룹 차원의 창립 기념식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의미가 크다.

‘롯데 50년사’ 첫 사사 봉정식 가져
기념식은 롯데의 50년 역사를 돌아보며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50년을 위한 변화와 도전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롯데의 지난 역사를 기념하는 영상이 상영됐으며, 그룹의 첫 사사인 ‘롯데 50년사’를 신 회장에게 전달하는 봉정식이 있었다.
‘롯데 50년사’는 6월 경 배포될 예정이다. 또한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엠블럼도 발표됐다. 고객에 대한 사랑을 50이라는 숫자로 간결하게 표현한 엠블럼은 각 사별로 다양하게 활용하게 된다.
신 회장은 회사를 위해 노력해온 모든 임직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해, 100년 기업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Lifetime Value Creator’ New Vision 선포
특히 롯데는 이날 ‘Lifetime Value Creator’라는 New Vision을 선포하고, 지난 50년의 역사를 발판삼아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신동빈 회장이 경영 혁신안을 발표하며 양적 성장 중심의 성장전략을 질적 성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결과이다.
롯데는 지난 2009년, 매출 200조를 달성해 아시아 10대 브랜드가 되겠다는  ‘Asia Top 10 Global Group'이라는 비전을 선포한 이후 빠르게 성장해왔다. 2008년 롯데의 해외 진출국은 6개국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23개 국가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그룹 매출 역시 2008년 42조5,000억원에서 2016년 92조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기술 혁명에 따른 사회 변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롯데는 외형 성장에만 집중해서는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갖추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급변하는 사회에서 주주, 지역사회, 파트너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롯데는 미래 50년에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그룹의 성장 방향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Lifetime Value Creator’라는 New Vision은, 롯데의 브랜드를 통해 고객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최고의 가치를 선사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롯데 New Vision 및 경영방침>

이와 함께 롯데는 질적 성장을 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비전 실현을 위한 네 가지 경영방침 ‘투명경영’, ‘핵심역량 강화’, ‘가치경영’, ‘현장경영’을 선정했다. 롯데는 투명경영 실천을 통해 사회 공동의 성장을 모색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한편, 핵심역량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성장률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근본적인 수익구조를 강화하는 가치경영을 실현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제고하고, 현장경영을 통해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미래가치를 창출해 나가기로 했다.
이 날 신동빈 회장을 포함해 기념식에 참석한 모든 임직원들은 New Vision 실천서약에 서명하고 위와 같은 내용을 함께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 뉴 롯데 시작
한편, 이 날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에 ‘롯데월드타워’의 그랜드 오프닝 행사가 진행됐다. 롯데월드타워 76층 시그니엘 호텔에서 진행된 오프닝 행사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롯데 임직원들과 관계자 250여 명이 참석해 롯데월드타워의 오픈을 축하했다.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기업보국 이념 아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롯데가 추진해온 사업이다. 1987년 사업지 선정 이후 30년 만에 완성되어, 새로운 롯데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신동빈 회장은 이 날 진행된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프닝 행사에서 “신격호 총괄회장님의 기업보국 정신에서 시작된 롯데월드타워가 사업지 선정 30년만에 오픈했다”며, “롯데월드타워는 국가대표 랜드마크를 넘어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는 우리나라의 자랑이 되고싶다”며, “인근의 롯데월드 어드벤처와 연계해 대한민국을 관광대국으로 만들고, 청년 중심으로 2만명을 고용해서 대한민국 사회의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롯데월드타워는 롯데의 뉴 비전, Lifetime Value Creator의 시작점이다”고 강조하고, “롯데월드타워의 오픈이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해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를 오픈하기까지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건설근로자, 설계, 감리, 협력사, 관계자 그리고 롯데 전현직 임직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여러분의 노고와 자랑스러운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롯데월드타워의 탄생을 위해 열정을 쏟으신 신격호 총괄회장님께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롯데 창업사

신격호(辛格浩)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식민지시대에 일본 유학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 ․ 유통 ․ 관광 ․ 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창업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도일해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외지에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하고,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뛰어난 안목,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오늘날의 롯데 신화를 창조해 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얼마나 신용을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을 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우유 배달시간이 워낙 정확해 유명했다고 한다. 소문이 나다보니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신 총괄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고 한다.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이다.
이러한 신 총괄회장의 신용과 성실성을 지켜본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해볼 것을 제의하며 당시 돈 5만엔을 선뜻 내주었다. 이 돈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하고 전소되고 만다. 어렵게 재기를 했으나 다시 폭격을 당해 전소되어 버렸다. 그래도 하나미쓰의 신 총괄회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1년 반 만에 이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주었다고 한다.

▲롯데의 탄생
1940년대 초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의 일을 하면서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고학했던 청년 신격호는 첫 사업이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지만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되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은 일본에서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청년 사업가 신격호도 타고난 사업 감각을 발휘해 껌 사업에 뛰어든다. 워낙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라 신격호 총괄회장은 큰 돈을 번다. 그는 드디어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됐고, 이때 회사이름 ‘롯데’가 탄생한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샤롯데)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온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감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천재적 마케팅 감각으로 롯데 풍선껌 인기몰이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롯데는 풍선껌 사업을 강화해 아예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천만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초콜릿 시장 제패하며 종합 메이커로 우뚝

1961년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고 이것이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고국투자 - 현해탄 경영의 시작

“새롭게 한국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 인사말)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라는 기치 아래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한 계획에 착수해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투자를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제과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한국의 마천루 롯데호텔 건설

‘한국의 마천루!’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천여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6년여 기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 5천만 달러가 투자됐다.
호텔사업 구상은 신 총괄회장과 롯데그룹에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광업 자체의 민간투자가 저조한데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신 총괄회장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 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했다.

▲국내 NO.1 롯데쇼핑의 탄생

한국전쟁 이후 경제개발과 국토재건 사업에 집중해온 우리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을 진행했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 욕구와 구매 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백화점은 대부분 영세하고 운영방식이 근대화 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국가 경제의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롯데쇼핑센터(現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만 7,438㎡, 영업면적 1만 9,835㎡에 지하1층, 지상 7층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 백화점의 2~3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우리나라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호남석유화학 글로벌 화학기업 롯데케미칼로 성장

애초에 신 총괄회장은 기간산업에 투자해 모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특히 제철사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부가 제철사업은 국영화한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이러한 희망을 접어야했다.
이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비로소 신 총괄회장은 중화학 기업에의 꿈을 이루게 된다. 호남석유화학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이었다. 단지조성 후 정부는 호남석유화학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고, 롯데는 공개입찰을 거쳐 1979년 이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그해 호남석유화학은 여천단지 내 3개의 공장을 완공하고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폴리프로필렌(PP), 에틸렌옥사이드(EO)와 에틸렌글리콜(EG)의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 유화사와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롯데그룹 50주년 주요 연혁

롯데그룹은 1967년 롯데제과를 창립해 식품 산업에 진출한 이후, 호텔과 백화점을 설립해 국내 관광·유통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또한 석유화학 및 건설 산업 등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롯데는 지난 50년간 각 부문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차별화된 역량을 꾸준히 쌓아왔다.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으며, 끝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전세계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는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나고 있다.

▲창업기 <개척과 도전> : 1967년~1980년
1966년 동방아루미공업 설립 (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 설립 (*그룹 창립 기준)
1973년 호텔롯데 설립
1973년 롯데전자공업 설립 (현 롯데기공)
1974년 롯데산업 설립 (현 롯데상사, 롯데스카이힐C.C)
1974년 칠성한미음료 인수 (현 롯데칠성음료)     
1977년 삼강산업 인수 (현 롯데푸드)
1978년 평화건업사 인수 (현 롯데건설)
1979년 호남석유화학 인수 (현 롯데케미칼)
1979년 롯데리아 설립
1979년 롯데쇼핑 설립
1980년 미화사진필름, 미화사진판매 인수 (현 한국후지필름)
1980년 상원기재 인수 (현 롯데로지스틱스)
1980년 롯데면세점 설립

1967년 신격호 회장이 설립한 롯데제과는 롯데그룹의 모태가 됐다. 롯데제과는 새롭고 맛있는 제품을 제공해 국내 식품산업을 현대화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0년대의 한국은 고도성장의 신흥 산업국가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경제성장에 따라 고급화, 다양화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품부문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사업다각화를 가속화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틀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 롯데리아 등의 설립을 통해 국대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설립함으로써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닦았다. 또한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롯데전자, 롯데상사 설립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도약기 <사업영역의 확장> : 1981년~1996년
1982년 대홍기획 설립
1982년 롯데자이언츠 설립
1982년 롯데물산 설립
1982년 롯데중앙연구소 설립
1983년 롯데유통사업본부 설립
1983년 삼남장학회 설립 (현 롯데장학재단)
1985년 잠실롯데월드건설사업본부 설립 (현 롯데건설 CM사업본부)
1985년 롯데 캐논 설립 (현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1989년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원
1994년 롯데연수원 개원 (현 롯데인재개발원)
1994년 코리아세븐 인수
1994년 롯데복지재단 설립
1995년 부산할부금융 설립 (현 롯데캐피탈)
1996년 롯데로지스틱스 설립
1996년 롯데정보통신 설립

1980년대 들어 롯데는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기반으로 식품, 유통, 관광 등 각 사업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10대 기업에 진입했다. 아울러 미래에 대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세계시장 진출 기반을 구축해나갔다.
이 시기에는 롯데월드를 완공하고, 호텔롯데부산과 롯데물산을 건립해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현대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롯데캐논과 한국후지필름을 설립해 첨단산업 진출도 가속화했다. 더불어 그룹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롯데자이언츠와 대홍기획을 설립했으며, 롯데중앙연구소와 롯데유통사업본부를 설립해 신제품 연구개발 및 유통 노하우 전파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대는 핵심전략 사업군을 기반으로 21세기 초우량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시기였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의 전국 체인화 및 신규업태 진출로 호텔·쇼핑의 국내 체인망을 완성했다. 동남아 및 일본, 미주 시장 진출 확대를 통해 식음료산업과 유통관광산업의 세계 진출을 가속화했고, 롯데정보통신과 롯데닷컴을 설립해 첨단산업 진출을 확대했다. 또한 코리아세븐, 롯데로지스틱스를 설립해 21세기 새로운 유통·생활문화를 창조해나갔다.

▲성장기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 : 1997년~2008년
1998년 할인점사업본부 설립 (현 롯데마트)
1999년 시네마사업본부 설립 (현 롯데시네마)
2000년 롯데닷컴 설립
2001년 레몬사업본부 출범 (현 롯데슈퍼)
2002년 롯데경제연구실 설립 (현 롯데미래전략연구소)
2002년 동양카드 인수 (현 롯데카드)
2004년 케이피케미칼, 케이피켐텍 인수 (현 롯데케미칼)
2004년 FRL코리아 설립
2006년 대산엠엠에이 설립 (현 롯데엠알시)
2007년 우리홈쇼핑 인수 (현 롯데홈쇼핑)
2007년 롯데제이티비 설립
2007년 롯데자산개발 설립
2007년 중국 ‘마크로(Makro)’ 8개 점포 인수
2007년 대한화재해상보험 인수 (현 롯데손해보험)
2008년 케이아이뱅크 인수 (현 롯데피에스넷)
2008년 벨기에 길리안(Guylian)’ 인수
2008년 인도네시아 ‘마크로(Makro)’ 8개 점포 인수

1997년 말부터 시작된 ‘IMF 체제’라는 위기 속에서도 롯데는 업계 최고의 경쟁력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착실히 성장을 이어나간다. 이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신중히 선택하고,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모든 역량을 집중, 전문화하는 롯데의 전략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롯데는 식품, 유통, 관광·서비스, 화학·건설·제조, 금융 등의 사업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더욱 성장했다. 또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미주까지 세계 곳곳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갖춰나갔다.
국내외 크고 작은 M&A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며, 특히 2006년에는 롯데쇼핑이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동시 상장하는 등 내수기업의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글로벌도약기 <롯데 100년을 향한 도전> : 2009년~2017년
2009년 두산주류BG 인수 (현 롯데칠성음료 주류BG)
2009년 파키스탄 ‘PTA’ 인수
2009년 마이비 인수
2009년 중국 ‘타임스(Times)’ 인수
2009년 롯데삼동복지재단 설립
2010년 바이더웨이 인수
2010년 영국 ‘아르테니우스(PTA/PET)’ 인수
2010년 중국 ‘럭키파이(Lucky Pai)’ 홈쇼핑 인수
2010년 GS리테일 백화점ㆍ마트 부문 인수
2010년 이비카드 인수
2010년 필리핀 펩시(PCPPI) 인수
2010년 파키스탄 ‘콜손(Kolson)’ 인수
2010년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Titan Chemical)' 인수
2010년 현대정보기술 인수
2010년 파스퇴르유업 인수 (현 롯데푸드)
2012년 하이마트 인수 (현 롯데하이마트)
2013년 카자흐스탄 ‘라하트(Rakhat)’ 인수
2014년 롯데네슬레코리아 설립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 인수 (현 롯데글로벌로지스)
2015년 롯데멤버스 설립
2015년 케이티렌탈 인수(현 롯데렌탈)
2015년 뉴욕팰리스 호텔 인수
2015년 롯데문화재단 설립
2016년 삼성정밀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본부 인수(현 롯데첨단소재, 롯데정밀화학, 롯데BP화학)

롯데는 철저한 내실경영을 바탕으로 주력업종과 연관산업에 대한 효율적인 투자를 실행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2009년 ‘Asia Top 10 글로벌 그룹’이라는 비전을 발표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 가속화를 통해 당당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춰오고 있다.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에서 잇달아 1조원이 넘는 대규모 M&A를 성공시키며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했으며, 중국 및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지역에 현지 진출한 사업을 안정 궤도에 올려놨다. 또한 기타 지역으로의 진출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며 글로벌 롯데의 기반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다.

 롯데그룹은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거버넌스(governance) 강화를 중점전략으로 삼고 미래성장 준비를 철저히 할 계획이다. 각 사업부문별로 옴니채널, AI 기술 도입 등 4차산업 혁명 대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룹사간 사업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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