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이 소환한 대영웅 이순신을 찾는 통영여행

[글·사진 길과 마을 김관수]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 드디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1761만 명, 관람객 순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명량>을 넘어 대한민국 영화사를 새롭게 쓰기 위한 위대한 돌격이 시작됐다. 올 여름 환생한 불멸의 영웅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픈 이들에게 고한다. 이순신, 그가 지금 통영에 있다.

이순신의 통영
이순신,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지난 2019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2014년에 이어 2019년에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부문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역사상 최고의 장군’, 단 1패도 없었던 전장에서의 기록,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이 아니라면 목숨을 걸고 국왕의 명령도 따르지 않았던 충신 그리고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고 부하와 백성들을 항상 먼저 생각했던 인간적 면모. 그런 사람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한산대첩이 이순신과 통영 사이 가장 흔한 연관어이지만, ‘통영’의 지명 유래를 통해 흥미로운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3년, 한산도 진영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 3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처음으로 설치됐다. 당시 전라좌수사로 한산대첩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꺼져가던 조선의 불꽃을 살려낸 이순신 장군이 초대 통제사로 부임했다. 1597년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며 한산도 진영이 폐진 된 후, 전란 상황에 따라 위치를 옮겨 다니던 통제영은 1604년 현재의 위치인 두룡포에 터를 잡고 약 300년의 세월을 지속했다. 오늘날의 해군총사령부 삼도수군통제영의 존재는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작은 바닷가 마을 통영이 남해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원동력이 됐고, 삼도수군통제영을 편하게 부르던 줄임말 통영이 두룡포를 대신해 지역의 공식 명칭이 됐다. 통영, 그 시작에 이순신이 있었던 것이다. 

완승, 한산대첩
1592년 7월 7일 이순신 장군의 부대가 지금의 통영 당포에 닿았을 때, 이곳 사람 김천손이 왜선 약 70여 척이 견내량에 정박해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늦은 밤까지 작전 회의를 마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이순신 부대는 견내량으로 출정하여 적선을 확인한 뒤, 좁은 견내량에서의 불리한 전투 대신 넓은 한산도 바다로 적을 유인하여 싸울 것을 계획한다. 유인책에 속아 쫓아온 적선 앞에서 그 유명한 학익진을 펼쳐 바람과 우뢰와 같이 적의 대선단을 섬멸하는데 성공했다. 

한산대첩이 남긴 것은 70여척의 적선을 파괴하고, 9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단 한 번의 큰 승리만이 아니었다.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해서 북진을 막았고, 나라의 울타리이자 곡식 창고인 호남을 막아 식량을 지켰으며 결국, 한 나라가 사라질 위기를 삭제시킨 더 없이 위대한 승리였다.  

이순신 장군이 거둔 수없이 많은 승리 중에서도 가장 큰 승리는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이자 한국사 3대 대첩 그리고 세계 해전사 4대 대첩으로 기록된 한산대첩이라는 사실은 전 세계가 공히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산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배를 당한 적장 와카자카 야스하루에게 이순신은 가장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죽이고 싶고, 또 가장 좋아하고, 차를 한잔 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 남았다. 그의 후손들은 최근에도 한산도에 이순신을 찾아 존경의 인사를 표하고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도 운주당(지금의 제승당) 수루 위에는 암흑같이 어두운 밤 차마 잠들지 못하는 애타는 심정을 담은 시 한 수가 걸려있다. 새벽에 망궐례를 하고 우수사 이억기 등 장수들과 함께 흠뻑 취한 밤, 으스름 달빛이 비치는데 잠들지 못하고 밤새 읊은 시, 한산도가(閑山島歌)다. 

한산대첩의 짜릿한 흥분의 기억만 남아있을 것 같던 한산도에서 한 사람의 깊은 시름을 만난 순간,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머물던 약 4년의 시간은 전쟁의 위기감과 피로감 속에서도 자신만은 지칠 수 없었던 고독하고 외로운 수장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됐다.  

이순신ROAD in 통영

세병관
1605년에 최초 건립, 1872년 고쳐지었다. 국보 제 205호, 통제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건축물로 꼽힌다. 현존하는 건축물 중 바닥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며, 위엄 있는 자태와는 달리 ‘은하수를 끌어와 무기를 씻는 곳’이라는 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순신공원
산책로를 따라 언덕 위로 오르면 높이 17.3m의 청동으로 제작한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시원한 바다 풍경과 함께 이순신 장군이 거둔 다양한 업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해안가 산책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한산대첩 광장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휘하 장수 및 군사, 격군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군상 조형물들을 조성했다. 병풍석 위 금빛 거북선과 함께 판옥선 위에서 활을 쏘는 병사, 총을 쏘는 병사, 기수, 격군, 취타대 등이 전쟁을 펼치는 역동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통영충렬사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현종 임금으로부터 충렬사 현판을 받은 사액사당이다. 이순신 장군의 여러 사당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존속되어 온 유일한 사당이다. 유물전시관에 정조의 명으로 발간한 <충무공전서>와 정조의 제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착량묘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다음 해에 함께 종군하였던 수군들과 지역 주민들이 초묘를 짓고 기신제를 처음으로 올렸던 곳으로 이충무공 사당의 효시가 된 의미 깊은 장소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고, 해저터널, 충무교와 함께 도보여행이 가능하다.

조선 군선 (거북선) 
스탠포드호텔&리조트 아래 해안가에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주역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척이 정박해있다. 통제영 거북선, 한강 거북선, 전라좌수영 거북선 3척이 각각 다른 용머리 모습과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배 안으로 들어가서 해전에서의 활약상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한산도 문어포마을(한산대첩기념비)
한산도 전투에서 패배한 왜군들이 쫓겨 들어온 마을로, 한 노인에게 “이리로 가면 바다길이 열려 있느냐?”라는 물음에 노인이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고 하여 ‘바닷길을 물어본 바닷가마을’이라는 뜻의 문어포마을이 됐다. 마을 정상에 한산대첩기념비가 서 있다. 

통영해상택시 한산대첩 승전항로 투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 승전지를 해상으로 투어하는 프로그램. 통영에서 가장 빠른 배로 꼽히는 해상택시를 이용, 스피디한 해상레포츠를 즐기면서 역사해설을 통해 한산대첩의 감동을 오감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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