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스텔스 피서’ 명당
의성 사촌마을

의성 사촌마을 
의성 사촌마을 

[글·사진 길과 마을 김관수] 

 7월의 시작이 이리도 더웠었나? 유독 빨리 찾아온 강력한 무더위에 옴짝달싹 하는 것조차 버겁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훌쩍 떠났던 그날의 피서(避暑)가 필요하다. 스텔스처럼, 그리고 조선시대 선비처럼 비밀스럽고 유유자적하던 지난여름의 그날들이. 600년 명당, 의성 사촌마을이었다.     

우리 시대의 천연기념물 '가로숲'
우리 시대의 천연기념물 '가로숲'

3정승이 나올 명당, 사촌마을 

행정구역 상 경북 의성군 점곡면에 속한 사촌마을은 안동 시내에서 남안동 방향으로 달려 약 30분이면 찾아갈 수 있는 마을이다. 안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전통마을의 역사는 1392년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630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세월 을 살아오며 한반도 역사의 주요 변곡점 곳곳에서 굵직굵직한 이야기와 함께 여러 이름들을 남기기도 했다. 안동에서 이주해와 처음 이 마을에 자리 잡은 안동 김씨 김자첨 선생은 우리 시대의 천연기념물 ‘가로숲’의 첫 나무를 심었고, 풍산 류家가 낳은 대스타 서애 류성룡 선생은 외가가 있는 이 마을 출생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촌마을 조상님들은 함께 힘을 모아 임진왜란, 정묘호란, 무신란, 일제강점기 등 나라의 운명이 흔들릴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기꺼이 한 몸 내던지며 국민으로서의 도를 다했다. 오늘날 가로숲 건너에 자리 잡은 ‘의성의병기념관’이 그 날의 숨 가빴던 이야기들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다. 퇴계 이황이 아꼈던 제자 만취당 김사원의 집 ‘만취당(晩翠堂)’을 비롯해 마을 구석구석 의롭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충의유향忠義儒鄕’, 충과 의가 있는 유자들의 마을 입구에 새겨진 네 글자 속에 사촌마을의 진심이 넉넉히 담겨있는 듯하다. 신라의 나천업, 조선의 류성룡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또 한 명의 정승을 기다리고 있는 ‘3정승이 나올만한 지세’, 사촌마을. 이만하면 감히 명당이라 칭할만하다. 

사촌마을 피서법 

의성 최고의 명당 사촌마을 역시 한 여름 더위를 피할 방법은 없는 듯하다. 무차별 내리쬐는 태양을 세상 그 어떤 명당인들 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더위에 맞서 남부럽지 않은 피서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물주와 함께 사천마을 조상님들이 만들어놓으셨다. 잘 생긴 강과 숲 그리고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넓은 품을 지닌 한옥에서의 여름나기까지. 한 가지 반드시 지켰으면 하는 권고사항이 있다. 취향대로 골라잡지 말고 한꺼번에 모두 취할 것!

천연 절벽스위밍
천연 절벽스위밍

요건 몰랐지? 절벽스위밍

어디에서나 그렇듯 사촌마을의 첫 번째 피서법 역시 물놀이다. 해수욕장, 계곡, 수영장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이색 물놀이 경험이 마련되어 있다. 우뚝 서서 온 몸으로 더위를 막아내며 강가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웅장한 절벽이 사촌마을 피서의 첫 번째 포인트다. 숲과 뜰을 지나 짠하고 나타난 기암절벽의 비경에 환호하는 것도 잠시, 그저 발 담그고 바라보고 있어도 그 멋짐에 차가운 전율이 느껴진다.

절벽 아래는 이 지역 사람들만 알 것 같은 비밀스러운 천연 물놀이장이다. 자연이 아이들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물높이와 잔잔함을 만들어 놓았고, 의성군 관계 기관에서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요원도 운영하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 마을 안에 있을 때는 눈치 챌 수 없는,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상상불가의 물놀이장이 있어 사촌마을의 한 여름 더위는 언제든 걱정스럽지 않다. 이렇듯 고품격의 천연 물놀이장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라도 입소문을 타지 않을 수는 없다. 한 여름날 오후 강가에 차량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여기저기 목 좋은 곳에 텐트와 파라솔도 세워졌다. 아직까지 그 이름을 모르는 물놀이장이지만, 앞으로도 아무도 모르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자 진심이었다.
절벽 앞에서 과거 사촌마을 사람들의 여름 풍경이 그려졌다. 진한 부러움마저 샘솟는 상상 속 그들만의 풍류는 바로 절벽스위밍이 아니었을까. 더위는 저 멀리 떠나갔고, 피서는 절정에 이르렀다.

사촌리 가로숲
사촌리 가로숲

가로숲 그늘아래 서면

가수 이문세가 부른 불후의 명곡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이 떠오르는 사촌리 가로숲은 오늘날 천연기념물 제405호에 빛난다. 600년 이상의 마을 역사를 함께 해왔으며, 이 숲을 통해 사촌마을이 비로소 명당의 조건을 완전하게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입향조인 김자첨 선생이 이곳으로 이주한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한 방풍림으로, 기나긴 세월 샛바람을 막아 마을을 보호해준 슬기롭고 영험한 숲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선생이 바로 이 숲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상북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숲, 가로숲 속에 피서를 책임질 그늘들이 풍성하게 우거져있다. 최근 관광지로 조성된 유명 숲들이 다분히 인공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반해, 사촌리 가로숲은 장고한 세월이 빚어낸 천연 그대로의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다.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등 400살 이상 된 나무들이 범접할 수 없는 클래스를 선보인다. 흔히 ‘숲’하면 산 속이나 해변가에 조성된 숲을 떠올리게 되지만, 가로숲은 마을 평지에 조성되어 있어 가볍게 동네한바퀴를 돌며 편안하게 숲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코스다. 물놀이에 이은 두 번째 사촌마을 피서법 ‘가로숲 그늘아래 서면’.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 아닐까. 

사촌마을
사촌마을

기와의 바다를 상상하다

유서 깊은 600년 전통마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한옥집이다. 1896년 병신의병이 거행되던 당시 일제는 사촌마을을 의병의 본거지라는 이유로 불살랐다. 기와가 바다를 이루는 ‘와해(瓦海)’의 진면모를 뽐내던 마을은 이제 선조들의 피 끓는 애국·애향의 정신으로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비록 영화롭던 옛 마을의 풍경은 아니지만, 혼돈의 시대를 모두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은 자랑스러운 현장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 한 가운데에서부터 골목 구석구석까지 30여동의 한옥들이 지금도 여전히 사촌마을을 지키고 있다.
옛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은 이 마을의 터줏대감인 만취당이다. 마을에 남아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임진왜란 이전에 세운 건물로,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사가 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꼽힌다.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쓴 현판 등 ‘보물 제1825호’의 가치들이 여전히 보존되고 있어 사촌마을의 큰 어른댁다운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한옥스테이 큰댁, 민산정
한옥스테이 큰댁, 민산정

한옥스테이 큰댁, 민산정
사촌마을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하룻밤이라도 묵어간다면 한옥스테이가 정답일 수밖에 없다. 한옥체험이 가능한 숙소들 중에서 가장 큰댁은 단연 민산정이다. 풍산 류씨 가문이 조선 후기 문신 민산 류도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건물과 함께 본채와 사랑채 그리고 강당 건물 등이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한 여름 짙은 초록으로 물든 대지 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한옥 고유의 미적 안정감이 사촌마을에서의 감성적 힐링을 보장해준다. 
머무름을 위한 공간으로서 민산정이 주는 혜택은 단지 너른 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건축적 우수성은 기본, 현대의 편리함까지 제공하는 이상적인 한옥스테이를 목표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한옥인 듯 아닌 듯, 그럼에도 내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꼼꼼하게 느낄 수 있는 한옥스테이. 2005년에 지어 가장 어린 한옥집이지만, 그 속에 담을 수 있는 세월의 폭이 가장 넓은 집. 누구와 함께라도 몇 명이라도 모두 받아줄 수 있어서 언제라도 진심으로 찾아가고 싶은 집. 그렇게 피서의 마지막 목적지로 부족함이 없다. 사촌마을의 낮과 밤까지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공간, 민산정에서의 머무름이 더해지니 온전한 피서가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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