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봐도 '고봉수 영화네?'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고봉수 영화 감독(사진=고봉수 감독)

[CEONEWS=최재혁 기자] 현대 시민에게 필요한 건 뭘까.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풍족한 돈? 타인의 인정으로 차오르는 명예? 아니다. 단순히 보이고, 느껴지는 돈과 명예는 현대 시민의 충분조건일 수 있지만, 필요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 소양을 북돋아, 깊은 삶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문화’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이에 기자는 ‘문화 속’에서 사는 ‘문화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대인의 문화 소양을 키우고자 한다.

고봉수 감독은 기자에게 매우 뜻깊은 영화 감독이다. 가장 힘들 때 영화 ‘델타 보이즈’와 ‘튼튼이의 모험’을 보고 힘을 내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동네 친한 형들에게 술 한 잔 받으며 위로받는 듯한 감정이 들 정도로 포근했다.

고봉수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던 도중 영감을 떠올리고 있다(사진=고봉수 감독)

Q. 고봉수 감독님은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나요?

A. 어떤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따라서 당시 유행하던 홍콩, 한국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아, 재밌다”라고 생각했죠. 중학교 때는 가장 히트했던 영화가 ‘영웅본색’이었고요. 영웅본색 보면서 친구들이랑 온종일 떠들다가, 한 친구가 “영웅본색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왔다!” 해서 봤더니 ‘언터처블’이라는 영화가 나와서 엄청난 히트했죠.

말씀드렸다시피 원래부터 영화마니아였는데 영화를 보다가 갑작스레 ‘아,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우연한 기회로 촬영 기술과 편집을 배우게 돼서 영화를 만들 환경도 조성됐죠. 

처음엔 단편 영화를 삼촌과 함께 촬영했어요. 삼촌은 조카를 무척 사랑하시기 때문에(웃음) 조카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셔서 주연배우로 활약해주셨죠. 아무래도 첫 작품이라서 많이 부끄러웠지만, 영화를 찍을 때의 즐거움은 묘하게 중독되더라고요.

덕분에 당시 단편 영화를 4~50편을 습작처럼 제작했던 것 같아요. 이후 ‘델타 보이즈’를 찍기까지 200여 편 습작 단편을 찍으면서 영화 공부를 몸으로 체득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간혹가다 200편이 넘는 제 단편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거 있잖아요. 도자기 만드는 장인들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바닥에 던져서 깨뜨려버리잖아요? 스스로 작품이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보여드리기도 좀 부끄럽고 한데, 예전에 인터넷에 올려놨다가 누가 또 볼세라 지웠던 작품도 꽤 됩니다.(웃음)

현재 공개된 대표적인 단편은 일명 ‘고봉수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과 함께 찍은 영화를 모아서 ‘고봉수 단편선’을 선보였죠. 지금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Q. 단편과 장편을 모두 찍어본 감독이세요. 그런데 장편과 달리 단편은 살짝 무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A. 단편을 찍을 때는 제게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아무래도 영화가 제 마음을 따라간 듯하네요. 마음이 힘드니까 영화가 좀 어둡고 무겁게 나왔죠.

또 단편은 워낙 의미를 함축해서 담아야 하기에, 오히려 저한테는 조금 더 어려운 ‘시’ 같은 느낌이에요. 저는 함축적인 시보다는 소설처럼 풀어서 쓰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장편이 제게 더 잘 맞는 것 같네요.

그래서 마음이 힘드니까 영화도 좀 어둡고 무겁게 나오고 델타 보이즈 같은 경우에는 좋은 배우들을 그때 처음 만났기 때문에 이 배우들과 함께하면 내가 영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어떤 희망 이런 게 좀 있어서 그래서 이제 그런 영화가 나온 것 같고요. 그때마다 달라지는 거 같아요.

현재 찾아볼 수 있는 고봉수 감독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200편의 단편이 있다는 소식에 한 편도 빼놓지 않고 관람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 감독은 아무리 부탁해도 자신의 작품을 쉽사리 내어주지 못했다. 그의 겸손을 이때만큼은 모른 척하고 싶었다.

고봉수 감독이 편집 도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사색에 빠져있다(사진=고봉수 감독)

Q. 아이디어는 평소 어떻게 얻으세요?

아이디어는 감독마다 스타일이 다 다를 텐데요. 어떤 분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영화를 제작하시고, 어떤 분들은 이야기를 먼저 만들어 놓고 장면을 구상하세요. 

저 같은 경우는 재밌는 장면이 떠오른다면, 그 장면을 위해서 살을 붙여서 영화를 만드는 편입니다. 

Q. 세상에는 수많은 매체가 있는데, 영화만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접근성이 참 좋아요. 옛날 필름 시절에는 당연히 촬영 자체가 힘들었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하게 촬영할 수도 있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언제든 편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게 무척 큰 장점이죠.

미술로 예를 들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만 들어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물감, 붓, 팔레트 등 준비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영화는 친구 셋만 모여도 ‘이런 거 한 번 해볼까?’라는 결정만으로도 만들 수 있어요.

Q. 고봉수 감독님에게 영감을 준 감독도 있을 것 같아요.

제게 영감을 주셨던 분은 영화 ‘엘 마리아치’를 연출하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큰 용기를 얻었어요. 엘 마리아치의 제작 과정을 엮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겨우 7,000불로 본인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나도 한 번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할 수 있었죠.

또 ‘영화라는 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버트 로드리게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요. 

당시에 영화인이라면 예술 영화를 포함해서 필수로 봐야 하는 작품이 있었죠. 그런 작품을 보고 나면 ‘저게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 영화라는 것은 굉장히 무거운 거구나. 아,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거구나. 어떤 공식이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두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꼭 영화가 무겁고 어두울 필요 없이, 놀면서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영감을 얻었죠.

고봉수 감독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를 보며 힘을 냈다는 말에 무척 놀랐다. 기자도 엘 마리아치를 무척 재밌게 봤고, 지금도 심심할 때마다 로드리게즈 감독의 ‘플래닛 테러’를 보며 유혈이 낭자하는 액션을 즐긴다. 

고봉수 감독이 책을 읽다 무언가가 떠오른 듯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사진=고봉수 감독)

Q. ‘고봉수 감독’이 거쳐온 과정이 참 험난해요. 

A. 청춘에게는 방황하는 시기가 있잖아요. 목표가 있다가도 “그런 건 없어”라면서 하락세를 겪기도 하고요. 살다 보면 항상 변곡점이 있기 마련인데, 저한테는 영화를 만들 때가 ‘동력을 얻어야 내가 살 수 있겠다’라고 여겼던 시기였어요.

저랑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가 ‘이대로 살 수 없겠는데’라는 고민이 들었죠. 자꾸 고민하면서 ‘내가 과연 좋아하는 게 뭘까?’라고 깊이 생각해봤는데, 딱 2개 있더라고요. 그게 바로 청소하는 거랑 영화 보는 거였죠. 그때 탈출구처럼 여겨졌던 게 바로 ‘영화’였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경험이 하나도 없으니 너무나 막막했죠. 여기저기 찾아보고 알아보며 ‘필름 스쿨’과 만나게 됐어요. 3개월 과정을 배우면서 카메라,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게 됐죠.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삼촌에게 달려가 함께 작품을 만들었죠. 그 작품이 바로 ‘개구멍’이라고, 고봉수 단편 선에 나오는 ‘사면조가’의 초안이었어요. 머리가 커서 트라우마였던 사람이 밤길을 지나다, 뚫려 있는 개구멍을 보고 ‘저기에 내 머리가 과연 들어갈까?’ 해서 넣어본 거죠.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빠져나오지를 못해서 온종일 껴있는 사람을 다뤘어요.

영화는 시나리오, 편집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현장에 나가서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나름의 ‘노하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노하우는 ‘돈 없이도 영화를 지금처럼 만들 수 있겠구나. 이런 퀄리티를 낼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었는데, 로드리게즈 감독을 보면서 느꼈던 영감과 제 경험이 합쳐진 거죠.

또 하나의 변곡점은 어쩌다 보니 미국을 가게 된 적이 있는데요. 우연히 만난 지인이 필름 전공이라 그에게 ‘영화를 너무 찍고 싶은데 학교에서 장비를 대여할 수 있겠나?’라고 묻자, 흔쾌히 가능하다더라고요.

예정에 없던 일이라 며칠 만에 시나리오를 후다닥 써서 단편을 찍게 됐어요. 당시 단편이 시카고 코미디 페스티벌을 포함해 다양한 영화제에 출품됐죠. 다시 한번 용기를 얻어 ‘영화가 내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용기를 조금 더 내서 외국 친구들과 영화를 같이 찍어보기도 했는데요. 장편에 도전했는데, 당시 지녔던 500불만으로 촬영을 시작했죠. 촬영이 진행되던 시카고의 지인들이 도심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요. 그분들과 함께 영화를 찍고 싶어서 부탁했더니, 전폭적으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아 주셨죠.

심지어 제가 “경비행기 타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수소문 끝에 구해주셔서 무사히 촬영했죠. 또 흘러가는 말로 “총격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분들이 “우리 사람들 모두 총을 갖고 있다”면서 장롱에서 주섬주섬 총을 꺼내 시더라고요.(웃음) AK 소총, 영화 ‘더티 해리’에서 사용하는 총, 장총까지 다 있었죠. 또 그곳 교회 목사님한테 총을 요청하니 30분 만에 오셔서 총을 트렁크 한가득 실어 오셨죠. 

또 총격전을 안전하게 찍기 위해서 공포탄을 쏴야 하잖아요? 총포상에 공포탄을 주문해야 하나 고민했더니, 그분들께서 “공포탄을 왜 쏴?”라고 말하길래 굉장히 황당해했죠. 바로 앞이 옥수수밭이니까 괜찮다는데, 알고 보니 거기는 놀이가 사격이더라고요? 추수감사절처럼 친척이 모일 때 못 쓰는 컴퓨터나 모니터 놓고 빵 쏘는 거죠.

그때 처음으로 실탄을 쏘면서 촬영을 해보고, 말씀드린 내용을 포함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촬영했죠. 영화가 완성되고 극장을 빌려서 모두 모여 영화를 보는데 마치 잭 블랙 주연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생각났죠. 

그분들은 지금도 영화를 보신다고 하는데, 이처럼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끼리 즐길 수 있는 거죠. 그곳에 계신 분들이 전부 연령대가 있는데 손뼉을 힘껏 치면서 좋아해 주시니까, 역시 영화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느꼈죠. 당시 느꼈던 모든 게 다 저한테는 자양분이 됐습니다. 

고봉수 감독이 미니 영사기를 들고 앙증맞은 표정을 지었다(사진=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이 미니 영사기를 들고 앙증맞은 표정을 지었다(사진=고봉수 감독)

Q. 상업 영화의 흥행과 별개로 독립 영화의 인기는 아쉬운 편입니다. 

A. 저는 독립과 상업 영화를 당연히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오랜만에 극장에서 ‘범죄도시 2’를 보는데, 다 같이 하하 호호 웃으면서 영화를 보니까 너무나 즐겁더라고요. 범죄도시처럼 재밌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건 상업 영화가 맡아줘야죠.

반대로 상업 영화의 범주, 틀에서 벗어나 독특함, 다양성 등 무거운 예술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있죠. 그렇기에 독립 영화가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백승기 감독님’을 굉장히 좋아해요. 백 감독님의 작품을 보다 보면 예전의 로드리게즈 영화를 보던 시기가 막 떠올라요. 영화를 시작하는 분들이 저나 백 감독님을 보면서 “이렇게도 영화를 찍을 수 있구나. 돈이 많이 없어도 이런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라고 여겼으면 좋겠어요.

고봉수 감독과의 인터뷰 후 바로 다음날 기자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잔고: 분노의 적자’로 백승기 감독을 만났다. 원래도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고 감독과 함께 이야기했다 보니 백 감독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왓챠에 등록된 고봉수 감독의 영화(사진=왓챠 페이지 갈무리)

Q. OTT나 유튜브 등 기존 극장 체계에 변화가 일고 있어요.

A. 영화계의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요. 참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껴져요. 예를 들어 ‘탑 건’ 같은 경우에는 풍부한 사운드만 들어도 명백히 극장용 포맷으로 만들어진 영화죠. 그런데 열악한 독립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좋겠지만, OTT 플랫폼을 통해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니 옛날보다 더 좋아진 게 아닌가 싶어요. 

‘왓챠’ 플랫폼만 보더라도 독립, 단편 영화를 굉장히 많이 선보여요. 왓챠를 통해 수면 위에 올라가지 못했던 작품들이 관객에게 보여질 수 있죠. 최근 왓챠에서 봉준호 감독님 예전 단편을 공개했는데, 저는 보면서 감동했어요. 봉준호 감독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싶었죠.

앞으로 넷플릭스나 티빙 등 공룡급의 OTT와 별개로 작은 OTT가 많이 생기면 좋은 독립 영화를 더 많이 소개해주지 않을까요?

가끔 접하기 힘든 영화를 유튜브에 올리면 어떠냐는 질문도 받곤 하는데요. 유튜브는 그들만의 콘텐츠가 있어요.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영상보다는 ‘너덜트’, ‘숏박스’처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2~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끝내는 콘텐츠가 어울리죠. 만약에 제가 장편 영화를 만들어서 “봐주세요!”라고 올린다는 건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가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유튜브라는 훌륭한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해봐야죠. 막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게 아닌, 어떻게 올리면 좋을지 고민에 있어요.

Q. 코로나19로 인해 제작환경이 많이 변화했습니다. 감독님은 어떠신가요?

A. 저는 메이저에서 제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환경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오히려 최근에는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봤던 작품은 쿠팡 플레이에서 상영하는 ‘안나’라는 드라마인데, 보면서 소름 끼치게 놀랐어요.

이런 웰메이드 작품을 지상파에서 틀면 시청률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텐데, 쿠팡 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잖아요? 안나와 같은 대단한 드라마가 각각의 OTT에서 제작되고 있으니, 오히려 메이저는 더 활발해지지 않았을까요?

고봉수 감독의 많은 작품이 OTT 플랫폼 ‘왓챠’에 등록되어있다. 그를 몰랐거나, 몇 작품만 알았던 분들에게 ‘델타 보이즈’, ‘고봉수 단편선’를 추천한다. 또, 고봉수 감독이 직접 출연한 ‘갈까부다’도 뛰어난 명작이다.

영화 '델타 보이즈' 포스터에 나온 고봉수 사단 배우들(사진=영화 델타 보이즈)
영화 '델타 보이즈' 포스터에 나온 고봉수 사단 배우들(사진=영화 델타 보이즈)

Q. ‘고봉수 사단’으로 꼽히는 배우들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아는 작가의 소개로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배우를 만났어요. 첫 만남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은 아우라를 느꼈는데, 제가 제안했죠. “영화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은데, 가진 게 없어요”라고요. 그런데 배우들도 “저희도 연기를 하고 싶은데 무대가 없어요”라고 말하네요?

배우가 필요한 감독, 감독이 필요한 배우가 의기투합해서 촬영한 게 몇 편의 단편과 이후에 나온 ‘델타 보이즈’였죠.

Q. 연출하신 작품에 애드리브가 상당해요.

A. 애드리브는 아무래도 배우와 일반인이 함께 섞여서 영화를 찍는 환경이라, 대사를 일반인께 드리는 순간 분위기가 바로 경직되더라고요. 자꾸만 국어책을 읽으시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대사를 다 지웠어요. 물론 기존의 대사와 상황을 충분히 인지시켜드린 후에 상황이나 분위기에 맞게 촬영을 시작했죠. 예를 들어 튼튼이의 모험에 나온 고물상 사장님은 실제 지역 주민이세요. 이분에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시키려면 상황만 드리고, 카메라는 숨어서 다큐멘터리처럼 찍는 방법뿐이에요. 어쩌다 보니 저희만의 스타일로 조금 부드러워지게 됐죠.

Q. 고봉수 감독은 ‘코미디의 장인’이라는 말도 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코미디’ 장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A. 장르를 나누는 게 참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데, 액션이다, 코미디다 규정을 지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제 영화는 “이게 왜 코미디야?”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배급사에도 부탁한 적이 있어요. 코미디로 홍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요.

제 영화가 웃기는 영화기도 하지만, 저와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영화예요. 제 영화를 코미디로 생각해서 가볍게만 보는 건 절대로 원하는 바가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래도 장르를 나눠야 해서 ‘코미디’로 홍보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관객께서 “코미디라고 해서 왔는데 뭐가 웃겨?”라며 따지시는 일도 있는데, 제 영화를 심각하게 봐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들더라고요.(웃음)

Q. 델타 보이즈에서 거울과 타격 연습장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 참 많아요. 

거울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제작비가 적다 보니 촬영 일수가 길어질 수 없어요. 카메라 2대로 동시에 찍으면 참 좋겠는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다행히 거울을 통해 비친 모습을 함께 찍으면 해결이 됐죠. 

게다가 영화 촬영 현장에는 항상 변수가 있잖아요? 저는 변수에 대해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처럼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구현하는 제작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변수가 오면 오는 대로 제 것으로 만들어 제작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늘 하는 말이 “와, 이런 장면이 나왔어?”였죠.(웃음)

영화 델타 보이즈에서 일록(백승환)이 타격 연습장에서 공에 맞고 있다(사진=영화 델타 보이즈)
영화 델타 보이즈에서 일록(백승환)이 타격 연습장에서 공에 맞고 있다(사진=영화 델타 보이즈)

그중 많은 분이 인상 깊게 보신 델타 보이즈에서 백승환 배우가 연기한 ‘일록’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뺨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요. 당시 백승환 배우의 처지가 일록의 상황과 아주 비슷했어요. 그러다 보니 백승환 배우가 연기인지, 다큐멘터리인지의 경계에 있던 것 같은데, 자신의 뺨을 치면서 계획에 없던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때야 깨달았죠. 거울이 저런 의미였구나.

타격 연습장 같은 경우도 제작환경 때문에 주변에 있는 모든 상황을 끌고 와서 촬영해야 하죠. 그런데 촬영장 근처에 타격 연습장이 있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일록이는 일이 있을 때마다 자해하는 스타일인데 신선한 방법이지 않을까?’라고요. 당연히 공을 맞으면 아프겠지만, 얼마나 아픈지 몰라서 제가 먼저 맞아봤어요. 별로 안 아프더라고요.(웃음)

이 장면과 대칭되는 점이 공을 맞기만 하던 일록이, 이제는 공을 치거든요. 공에 맞서는 자체가 ‘극복’의 의미를 줄 수 있어서 참 좋았죠.

원래도 참 좋아했던 ‘백승환 배우’지만, 델타 보이즈의 뒷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다음 ‘최 기자의 문화in’ 인터뷰는 백승환 배우다.

영화 델타 보이즈 장면 중 '루저'처럼 보이는 네 명의 캐릭터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사진=영화 델타 보이즈)
영화 델타 보이즈 장면 중 '루저'처럼 보이는 네 명의 캐릭터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사진=영화 델타 보이즈)

Q. 감독님의 캐릭터는 일명 ‘루저’가 많습니다. 사회에선 쉽게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데, 감독님에게 패자는 뭘까요?

A. 사람들이 흔히 “넌 루저야”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루저’라고 말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가 궁금할 정도예요. 본인은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타인에게 루저라고 말하는 자체가 아이러니죠. 본인이 하나님, 심판자도 아니고요.

사람은 항상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잖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루저라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추락이 있으면 비상하는 시기도 있어서 기다리다 보면 영광의 순간이 찾아오는 거죠.

그 시기를 기다리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되고, 또 성공해서 교만해지면 추락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인생이 다 그런 거로 생각해요. 그나마 인생에서 가장 평탄한 시기가 노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청춘의 경우에는 자신의 상황에 크게 흔들리겠죠.

Q. 많은 청년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껴요. 행복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도 해요.

이런 주제는 연세도 좀 많으시고, 경험도 출중하신 원로 감독님이나 하실 수 있는 대답 같은 데 제가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걱정되네요.(웃음)

물론 괴리감이 있죠. 그 괴리감 때문에 저는 많이 괴로웠어요.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하는데, 또 생업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도 있어요. 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껴 갈등하던 시기가 바로 2~30대였죠.

이후 제가 40대에 데뷔하게 됐잖아요? 만약에 ‘영화는 개뿔, 무슨 영화냐. 영화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돈 벌고 가정이나 꾸려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살자’고 스스로 결정했으면 지금처럼 영화를 못 만들었겠죠. 

영화를 찍으면서 보람찬 순간이 너무나 많아요. 삶이 너무 힘들었는데, 기자님처럼 “감독님 영화를 보고 힘이 생겨서 그 원동력으로 살아가요”라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행복에 빠지죠. 영화가 단 두, 세 분에게만 영향을 끼쳐도 엄청난 거잖아요. 그런데 간혹 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면 ‘영화를 찍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물론 영화를 선택해서 어려운 순간이 정말 많았어요. 물질적인 걸 포함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순간이 너무나 많았지만, 제 영화를 본 분들의 응원은 부정을 다 상쇄하고 남죠.

우리가 살면서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하겠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작게나마 성취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돈’이랑 비교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무조건 생업으로 하라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어요. 저는 생업 따로, 취미 따로 사는 분들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연극배우, 연출자분들을 보면 생업이 있으신데 밤에 모여서 연습하고 무대에서 보여주시잖아요. 저는 보면서 “와 대단하다...”라고 느껴요. 놓지 않는 것만으로 ‘끝내준다’고 생각하죠. 

최선을 다하는 분들은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기회만 잘 잡으면 분명히 좋은 배우가 될 거로 생각해요. 지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외에도 능력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모든 출중한 배우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면 좋겠고, 제가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패배감과 꿈의 부재는 청춘에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선사한다. 우리의 인생은 언젠가 빛날 것이다. 그 믿음을 고봉수 감독은 직접 보이는 중이다.

고봉수 감독이 미니 영사기를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사진=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이 미니 영사기를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사진=고봉수 감독)

Q. 평소에 영화를 어떻게 보세요?

A.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나서는 극장을 자주 가고 있어요. 오랜만에 많은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보는 분위기에 취해서 아내에게 틈만 나면 “극장 가자!”고 외치죠. 최근 본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었어요.

Q. 감독님에게 영화제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우선 전주국제영화제는 매번 왔다 갔다 하니까 가는 길 자체가 너무 익숙해요. 저한테 전주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고, 전주국제영화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화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김영진 당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님, 당시 전주국제영화제 위원장님께 정기적으로 안부 인사를 드리고 있을 정도예요. 저나 배우들이 전주는 ‘우리를 살려준 영화제’라고 할 정도니까요.

지금까지 전주에서 많은 관객을 만나기도 했는데요. 전주에 오는 분들은 ‘고봉수 사단’의 영화다, 그러면 무장 해제를 하고 오시는 것 같아요. 관객 중에는 평가도 하고, 단점을 잡아내는 분들이 있는데, 저희의 영화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전부 다 놓고 즐기자는 생각으로 보시더라고요. 덕분에 전주에 올 때는 긴장하는 거 없이 같이 웃으면서 보고 있어요.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제를 거의 못 갔어요. 코로나 이전 영화제라고 하면 북적북적하고 한 쪽에서 라이브 공연이 계속 이어지는 등 시끌벅적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게 영화제가 맞나?’ 싶은 거죠.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슬프더라고요.

올해 진행되는 영화제는 많이 참석해서 영화도 보고 싶어요. 이번 부천국제영화제는 개막식부터 참가해서 가장 좋아하는 설경구 배우의 얼굴도 봤어요. 백승기 감독님의 ‘잔고: 분노의 적자’는 예매 전쟁에서 패배했기에 볼 수 없었죠.(웃음)

부천은 제가 워낙 좋아하는 영화제지만, 부천에 출품되는 영화의 색이 참 뚜렷해요. 아무래도 장르 영화를 많이 상영하다 보니, 제가 겁이 나서 출품을 못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 영화는 내년 부천국제영화제에 출품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아마 액션물이니까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고봉수 감독이 튼튼이의 모험 굿즈를 들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사진=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이 튼튼이의 모험 굿즈를 들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사진=고봉수 감독)

Q. 만약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하실 건가요?

A. 제가 최근에 배우들한테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물 받았는데요. 원래 게임을 안 하는데 선물로 받아버렸어요. 그래서 게임 추천을 받아서 해봤는데, 그게 바로 ‘레드 데드 리뎀션’이에요.

로드리게즈 감독님이 생각나는 정통 서부극 게임인데요. 배우 중에 이 게임을 하면서 운 일도 있다더라고요? 코웃음을 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결말을 깸과 동시에 오열하고 있더라고요. 주인공이 죽는데 내가 죽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만약 자본이 된다면 텍사스에서 ‘레드 데드 리뎀션’을 꼭 영화로 찍어보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집중했던 고봉수 감독이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을 언급할 때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듯했다. 너무도 신나게 떠들던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게임 하다 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봉수 감독이 LP판을 흥겹게 바라보고 있다(사진=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이 LP판을 흥겹게 바라보고 있다(사진=고봉수 감독)

Q. 취미가 청소라고 하셨어요.

A. 아마 타고난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치우는 거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 보면 장난감 갖고 놀다가 어지럽히는데, 저는 정리를 해놨거든요? 부모님께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나 봐요.(웃음)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손이 야물지 못해서 매일 혼났어요. 그런데 청소할 때만큼은 아주 프로답게 했죠. 지금도 아내가 놀라는 게 다른 남편은 여러 가지 사고 싶은 게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청소용품만 사달라고 해요. 

특히 여름이 되면 날파리가 많이 끼잖아요? 저는 환경 자체를 만들지 않는 편인데, 쓰레기를 자주 갖다 버려요. 혹여나 꼬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면 날파리 끼지 않게 뿌리는 걸 쓰레기통에 분사하죠. 앞으로 꿈이 있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가루로 만드는 기계를 사고 싶어요.

고봉수 감독이 턱을 괴고 생각 중이다(사진=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이 턱을 괴고 생각 중이다(사진=고봉수 감독)

Q.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요?

A. 제가 본 영화 댓글 중에 ‘다행이다’라고 써주신 분이 있는데요. 아마 ‘고봉수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뜻이겠죠. 너무 감사하고 공감되더라고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계속 만드는 걸 보며 대견해하시는구나. 기다려 주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되게 좋아한 감독인데 근황을 보면 영화는커녕 어디 멀리 가서 농사짓고 있잖아요. 그런 것보다 ‘아직도 영화 만들고 있네?’라고 느끼실 정도로 지속해서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지속해서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됐으면 좋겠어요. 

고봉수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자서전을 들어보며 웃음을 보인다(사진=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자서전을 들어보며 웃음을 보인다(사진=고봉수 감독)

Q. ‘고봉수 감독’으로서 원하는 바람이 있을까요?

A. 제 영화를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 아내인데요. 1차 목표는 아내 입에서 “끝내준다!”라는 말이 듣고 싶어요. 

아내는 제 영화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영화를 보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인데, 아내에게 인정받으면 대중이 봐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겠죠. 지금까지는 “수고했다” 정도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노력하고 싶어요.

또 다른 목표는 감독의 인장이 아주 강하게 박혀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영화를 딱 봤는데 누가 봐도 ‘스콜세지, 타란티노 영화네?’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처럼 아무 정보 없이 봤는데도 ‘고봉수 영화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끝내주는’ 고봉수 감독의 영화는 이미 그의 인장이 강하게 박혀있다. 고봉수 사단의 출연만으로도, 혹여나 다른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고봉수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비단 고봉수의 광팬인 기자만이 아닌, 고봉수의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쉽사리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미 목표를 이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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