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 북한하면 배급경제, 통제사회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지금의 북한은 과거와 달라졌다. 최근 북한은 사회 전반적으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공존하고 있다. 기업 영역에서도 자금 및 원자재 조달, 생산품 판매 등에서 계획경제활동과 시장경제활동이 함께 일어난다.

● 북한 국영기업의 행동양식 변화

1990년대 경제난 발생 이전의 계획경제하에서 북한 국영기업은 중앙의 계획당국의 명령·지령을 수행하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였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는 중앙의 계획당국에 있었고 기업은 몸통만 있는 셈이었다. 기업의 자율성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경제난은 북한의 계획경제를 근저에서부터 뒤흔들어놓았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생산이 급감했고 국가재정은 파탄났다.

하지만 기업은 ‘자력갱생’이라 하여 국가로부터 주어지는 생산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안고 있었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 전통적인 계획경제 시대와는 전혀 다른 행동양식을 보이게 되었다.

첫째, 기업은 생산품목의 선정, 원자재 및 자금 조달, 가격결정 및 판매 등 폭넓은 영역에서 종전보다 자율성과 권한이 확대되었다. 둘째, 기업간 및 기업내 경쟁 격화이다. 기본적으로 계획경제에서는 경쟁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어려운데 시장화 진전의 결과 경쟁의 개념이 새롭게 등장했다. 셋째,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비용, 이윤과 수익성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기업의 행동양식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이다.

● 국영기업과 돈주의 연계 확대

국가가 공급하는 원자재가 불안정하고 전력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국영기업이 계획과제를 달성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여기서 최대 관건은 원료와 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 특히 초기 자금 조달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쉽고 현실적인 방안은 기업 외부에서, 특히 돈주(錢主)라는 신흥부유층, 즉 개인과의 연계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국영기업이 돈주와 연계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돈주의 자금을 대부·투자받는 것이다. 돈주는 현금 또는 현물로 대부·투자를 하고 기업으로부터 상환받을 수 있다. 기업은 돈주로부터 현금 또는 현물을 제공받아 돈주가 지정하는 제품을 생산해주고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평안남도 순천화력발전소가 돈주가 투자한 대표적인 사례다. 돈주들은 발전소의 폐열을 활용하는 수영장과 목욕탕을 건설하자고 발전소에 투자제안했다. 2014년 총 200여명 수용이 가능한 수영장과 목욕탕, 식당 등 부대시설을 건설했고 일반 대중 상대로 영업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한 이윤은 돈주와 발전소가 반씩 나눈다.

둘째, 국영기업이 돈주에게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공공자산을 임대해 주는 것이다. 기업이 자신의 명의만 빌려주는 경우도 있고 명의와 생산수단(건물, 기계설비)을 함께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이는 돈주가 기존 국영기업 일부를 임차·인수하거나 기업을 신규설립(창업)하는 경우로서 특정기관 산하의 별도 기업으로 국가에 등록된다는 특징이 있다.

흔히 ‘사회주의 모자’ 또는 ‘붉은 모자’를 쓴 기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많이 볼 수 있었다.

국영기업들이 돈주에게 공장의 건물 일부를 임차해 주는 사례 중 대부분은 국수 생산공장이며, 신발 생산공장도 있다.

● 국영부문이 시장경제행위자로 등장

김정은 시대에는 국영부문이 직접 시장경제행위자로서 시장에 등장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분야가 유통업이다. 시장경제 방식으로 유통업체를 직접 설립, 운영하고 있다. 기존 백화점 등을 개보수·확장하거나 아예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에 문을 연 ‘황금벌상점’은 새롭게 세워진 현대식 상점으로서 식료품과 각종 생필품을 판매한다.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을 하는 북한판 편의점이며 평양 시내에서 연쇄점(Chain Store)의 형태를 갖춘 유통시설이다. 이 상점은 국영부문의 황금벌무역회사가 운영주체이다.

2015년 10월 평양 중구역에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에 들어선 ‘창광상점’도 북한이 자랑하는 현대적 유통시설이다. 특이한 것은 군수공업 부문에서 생산한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상점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공식매체에도 자주 등장하는 ‘광복지구상업중심’은 한국의 대형마트를 연상케 한다. 전신은 1991년에 건설된 광복백화점으로서 기존 시설을 개보수해서 2012년에 재개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캐시백에 해당되는 ‘우대표 발급’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사례는 석유판매업, 즉 주유소에서 발견된다. 사실 승용차, 버스, 화물차 등 자동차가 늘어나게 되면 석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주유소가 고수익사업으로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원유 및 석유제품의 수입은 허가를 받은 국영 무역회사만 할 수 있다. 원유공업성 산하 삼마무역회사, 중앙당 39호실 산하 경흥지도국, 인민무력부 27부 산하 강성무역회사, 4·25 체육단 산하 붉은별무역회사 등 4개 무역회사이다.

이들은 석유를 수입하여 당·군·내각 산하의 각급 기관, 기업소, 군부대 등에게 전통적인 계획경제방식을 통해 국정가격으로 공급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평양과 주요 대도시에 직영 주유소를 설치해 국정가격보다 수십배나 비싼 시장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 소규모 기업의 사유화 진전

북한에서 법적으로는 기업의 사유화가 허용되고 있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기업의 실질적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서 이런 기업은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수산업, 광업, 무역업, 제조업의 영역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방산업, 중앙공업, (국영)상점, 식당, 개인서비스업체, 외화벌이사업소 등 6개의 범주에 대한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개인이 투자〮운영하는 기업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모든 범주에서 2015년이 2005년보다 10~15% 포인트 정도 증가했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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