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

조성일 CEONEWS 대기자
조성일 CEONEWS 대기자

[CEONEWS=조성일 기자]후한 시대 관서 지방에 양진(楊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지만 늘 배우기를 좋아해 사람들이 그를 관서의 공자라 부를 만큼 학문이 매우 깊었다.

양진은 벼슬길에 나서 양주 자사 직에 오른다. 양진이 부임하기 위해 길을 가던 중 창읍(昌邑)이라는 고을을 지나게 된다. 이 창읍의 수령이 마침 양진과 인연이 있는 왕밀(王密)이었다. 왕밀은 양진이 추천하여 이 자리에 있게 되었었다.

왕밀은 양주 자사 양진이 마침 자신이 통치하는 창읍에서 묵게 되자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겠다고 맘먹는다. 그래서 왕밀은 양진을 찾아가 금 열 근을 내놓으면서 이랬다고 한다.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양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앎이 없다 하는가?(天知神知子知 我知何謂無知)”

청렴결백하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양진이 그 금을 받지 않았음은 물론일 테고, 왕밀이 무척 부끄러워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하는 그대로다.

이 이야기는 양진의 사지(四知)’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청렴을 설명할 때 단골로 인용되지만,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의미를 상징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문제와 더불어 이 고사가 불현듯 떠올려진다. 명품백 논란을 보더라도 비밀스럽게 건넸을 테지만 결국 온 국민이 다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툭하면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게 뇌물 사건이 아닌가. 뇌물을 주고받을 때 공개적으로 하는가. 다 은밀하게 한다. 하지만 양진이 말한 하늘과 귀신 그리고 나와 너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흔한 말로 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꼴이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내가 여기서 이 고사를 인용한 건 12백만 관객을 넘은 영화 <서울의 봄>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다. 애초 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그렇고 그런 내용을 담고 있을 줄로 짐작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소위 역사의 비밀을 과감하게 스크린에 담았다. 아마도 이게 성공의 비밀이 아닌가 싶다.

사실 많은 사람이 19791212일에 일어난 그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모른 채 살아오고 있었다.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신군부가 첫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라거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날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 취급받을 정도였으니까.

더욱이 MZ 세대에겐 이 사건이 조선시대 왕권 암투사처럼 까마득히 먼 과거의 사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역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여전히 이 하늘 아래에서 함께 숨 쉬고 살고 있다는 현실감이 이들의 잠자고 있던 역사의식을 깨웠다. 진실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음은 물어보나 마나다.

영화 <서울의 봄>진실은 묻힐 수 없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말한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회고록까지 내어 호도하려 해도, ‘그때의 그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화소가 거칠기만 한, 그들만의 만찬 모습을 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아주 무미건조한 감정으로 보았었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내 주위에서도 반전이 일어났다. 내 가까운 지인 몇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에 나오는 걸 보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는 말밖엔 할 수 없다, 그동안 오해한 내가 부끄럽다, 이런 반응을 보였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사진 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사진 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내가 들었던 이 몇몇 사람들의 반응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날의 진실이 다 드러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없음에도 오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 많기 때문이다.

12·12의 진실도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이 진실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젠 말해야 한다.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훗날 의식 있는 역사학자에 의해서라도 역사에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서울의 봄>은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 진실이 묻히지 않는 것은 진실을 기록하려는 자의 용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용기를 먹고 자라는지도 모른다.

아울러 훗날 역사의 평가가 현세에 진실을 고백하고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일보다 더 가혹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하는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고 진실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 나만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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