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냉철한 상황 판단...세계 서 ‘사랑받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영국 왕실 SNS)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영국 왕실 SNS)

[CEONEWS=최재혁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향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우리에게 멀고 먼 영국의 여왕이지만, 그 이름과 행적만은 무척 친숙하다. 100세 가까운 나이로 20세기를 호령했던 엘리자베스를 통해 근·현대의 흐름과 현명했던 노인에게 삶의 철학을 배울 수 있을 듯하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가 진중한 모습을 보인다(사진=영국 왕실 홈페이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가 진중한 모습을 보인다(사진=영국 왕실 홈페이지)

어린 시절부터 냉철한 상황 판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26년 4월 21일, 런던에 위치한 외가 메이페어에서 조지 5세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앨버트 왕자와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의 2녀 중 맏이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는 가정에서 세상을 배워나갔다. 당시 학교 다니는 상류층 여식들이 늘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여동생 마거릿과 함께 어머니와 가정교사 메리언 크로포드에게 교육을 받았다. 크로포드는 "매우 예쁘지만, 고집세고 영악하다"고 그녀를 묘사할 정도였다.

일찍부터 자신의 상황을 냉철히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33년 엘리자베스가 여동생 마거릿에게 "나는 3이고 너는 4야"라고 하자, 마거릿은 "아니야, 나는 3이고 언니는 7이야"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마거릿은 시간이 지나서야 왕위 계승 서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936년 조지 5세가 사망해 에드워드 왕세자가 즉위했으나, 그해 말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남동생 앨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넘겨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자연스레 그의 장녀 엘리자베스가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어 이전보다 더더욱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1945년,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기에 영국군 여군 부대에 입대한다. 이후 곧바로 전쟁이 끝나 활동 기간은 3주 정도였지만, 세계 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국가원수로 기록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사진=영국 왕실 홈페이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사진=영국 왕실 홈페이지)

의도적 ‘정치 권력’ 거리두기

국왕 조지 6세의 건강이 나빠져 가던 1952년 2월 6일, 암투병 도중 사망하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취임 직후인 1953년, 7개월간 여왕 부부는 영연방 포함 13개국을 순방했다. 처음 방문한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기간 동안 군중의 수는 엄청났는데, 호주 인구의 3/4 정도가 몰려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인기가 상당한 상태였다.

영국이 입헌군주제가 확립된 상태에서 즉위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정치적 권력이 사실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정치에 대한 발언은 일절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현대 왕가의 귀감으로 알려졌다.

하다못해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외에는 50년 가까이 영국 총리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다가, 2013년에 거행된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에만 참석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사안에는 여왕의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에 여왕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불만을 표시한 적은 있었다고 한다. 

마가렛 대처의 포클랜드 전쟁 개전선언인 아르헨티나 선전포고 결의안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불만족스럽다"며 불만 의사를 표현만 하며 정치 개입에서 사실상 손을 놨다.

엘리자베스 즉위 70주년 기념 단편영화에 출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사진=영국 왕실 공식 유튜브 갈무리)
엘리자베스 즉위 70주년 기념 단편영화에 출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사진=영국 왕실 공식 유튜브 갈무리)

세계 서 ‘사랑받는’ 여왕

현대화가 이뤄지며 영연방에서 입헌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1999년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자 영연방 주요 회원국인 호주는 엘리자베스를 폐위시키고 헌법을 바꿔 공화정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운동 끝에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선거 결과는 54.87% vs 45.13%로, 과반수의 호주 국민들이 왕정 존속을 선택해 호주의 군주직을 유지하게 됐다. 당시 공화정 전환 운동의 지도자였던 맬컴 턴불은 이후 공화정 전환 운동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을 정도로 후폭풍이 컸다.

호주의 공화정 국민투표의 여파는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다른 영연방 왕국들로 퍼져나갔다. 해당 국가들의 여론 조사 등을 봤을 때 여왕 사후 왕위 계승의 향방에 따라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제 폐지 여부가 결정된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가 발발하던 때, 영국에서는 확진자 4만여 명, 사망자 4천여 명을 기록하며 보건장관, 보건차관이 감염되고 보리스 존슨 총리마저 감염되며 국가수반이 마비됐다. 이때 여왕이 직접 나서며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일선 의료진들을 칭찬하고 국민들을 격려하며 진압에 나섰다.

2022년 2월에는 찰스 왕세자가 코로나19에 재감염됐다. 찰스 왕세자가 여왕을 만난 지 48시간이 지나지 않아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우려가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음성 판정받았다. 

그러나 2022년 2월 20일, 버킹엄 궁에서 "여왕이 코로나에 확진되었으며, 가벼운 감기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왕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화상 접견 일정이 취소됐고, 전문가들은 엘리자베스가 “평소보다 나약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매우 걱정했다. 

이후 얼마 안 가 완치되며 나이에 비해서 여전히 건강한 편이지만, 왕실 측 관계자는 "여왕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고, 능력 있고, 관심이 있지만, 육체적으로는 예전만큼 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2022년 9월 8일, 여왕의 주치의들이 건강 상태가 우려되어 의료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뜻을 드러냈다. 영국 BBC도 여왕의 건강에 대한 성명이 발표된 직후, 현지 시각으로 저녁 6시까지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와 기자, 수어 통역사를 포함한 모든 출연자가 상복을 연상하게 하는 검은 옷과 넥타이를 입고 나왔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이 웨스트 민스터 궁전으로 떠난다(사진=영국 왕실 홈페이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이 웨스트 민스터 궁전으로 떠난다(사진=영국 왕실 홈페이지)

결국 현지시각 2022년 9월 8일 오후 6시 30분, 버킹엄 궁은 "여왕이 밸모럴 성에서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엘리자베스는 향년 96세, 재위 기간은 70년 214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재위 기간이 긴 군주다. 재위 기간 동안 총 15명의 영국 총리를 승인하면서 가장 많은 총리를 승인한 국왕이기도 하며, 유럽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 재위했고, 전 세계에서 여성 군주로는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인물이다.

그는 여왕이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많은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고,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더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평생을 남들의 시선을 받고 살았지만, 타인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했다.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노력은 사후에도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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