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제일주의와 고아사랑 실천하는 CEO

 

 

권선복 행복에너지 대표이사
권선복 행복에너지 대표이사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인생 명장 중의 명장이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건설업계에서 영원한 현역을 외치고 있는 요진건설산업의 최준명 회장이다. 그는 평범한 할아버지의 외모를 지녔으나 자신은 아직 팔다리가 건강하니까 자신의 인생 키워드는 현장에 있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자신의 업에 대해 혈기왕성한 어른이다.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현장을 수시로 체크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장제일주의자’다. 이것이 바로 현장의 중요성, 즉 현장이 살아 움직여야 하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생산된다는 그만의 신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단돈 600만 원으로 건설사업을 시작한 저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들은 그 돈으로 어떻게 사업을 하냐, 투정을 늘어놓을 때 그는 열정과 긍정으로 무장하고, “한번 해보자. 언제는 돈 있어서 사업하냐, 없어서 사업하지!” 하는 용기로 거침없이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요진건설사업이 한해 매출액 3천억 수준을 유지 이러한 성과는 그의 남다른 추진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건설업이라는 것이 제조업과는 달라 조금씩 투자하여 훗날 한꺼번에 이익을 얻는 논리를 단박에 깨뜨렸다. 그 말은 어려운 때일수록 돌아가라는 건설업의 이치를 재빨리 체득하여 공사의 흐름을 봐가면서 전진하는, 기술력과 유동성을 고루 갖춘 성장을 지향하는 바와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사업가적 기질 말고도 故 정주영 회장과의 에피소드로도 유명하다. 

그는 젊었을 적 닿은 정회장과의 인연이 젊은 자신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고 그러한 거름이 미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때는 1950년대 후반, 그가 20대 나이에 동두천 7사단에서 미군 공사를 했을 때였다. 

당시 미군 발주공사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동성 상공에 입사를 하여 그는 처음 건설업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의 상황은 미군 부대 발주 공사가 건설업의 주축이 되던 때로 `건설 맏형`이라 불리는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삼환기업 등이 미군 공사에 집중하던 시기였다. 그는 20대 초반에 동성 상공 현장소장을 맡았다. 그때가 현대건설의 정 회장과의 인연이었다. 당시 동두천 보병 7사단 막사를 짓는 공사를 동성상공은 현대건설과 함께 했는데 미군 공사감독이 정 회장 앞에서 그가 현장소장을 맡고 있는 현장과 비교하며 공사가 늦은 현대건설을 질책한 적이 있었다. 

최준명 요진건설 회장
최준명 요진건설 회장

 

그 일 뒤로 정회장은 그가 눈에 들었든지 얼마 후 그를 개인적으로 부르더니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미군 건설현장과 현대건설이랑 맞붙었는데 오히려 미군 건설현장이 실적이 좋으니 정 회장이 직접 자신한테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했던 거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 있던 현장소장을 물러서지 않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따랐다고 한다.

정 회장의 스카우트는 거절한 그였기에 인연의 진전은 없었지만 그가 낮은 자리, 즉 배우려는 자세로 정 회장에게 그 당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정 회장만의 카리스마였다. 

 

늘 그는 현장에 나타날 때면 지프 차에다 작업 모자를 쓰고 현장을 아우르는 기운을 뿜었다. 그때 최준명 회장은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현장에서 저런 아우라를 가져야겠다. 나도 현장에서 커나가면서 저런 기질을 길러야겠다.’ 하고. 정 회장의 제안이 성사되진 않았더라도 이런 계기로 그는 역사의 큰 인물의 단면을 맛보았고 그 느낀 바를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기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인생 여정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하고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하는 부분은 이러한 성공으로 가는 에피소드보다도 그가 거쳤던 고난과 그것을 환원하는 과정, 즉 인생의 명장들이 우리에게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는 나눔의 본보기일 것이다. 그도 세상의 빛을 자신만이 끌어안는 피사체가 아니라 몸소 빛을 내는 발광체로 우리에게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

그는 6.25를 아이 때 겪었다. 당시 고아원에서 살았다고 한다. 6.25가 났을 때 시골로 내려가 고학을 하고, 굶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생활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친 시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비극은 전 국민 온 나라의 아픔이었지만 개인의 역사 또한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그 아픔을 몸으로 기억했고 그것의 참된 의미로 사회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회상한다. 

어려운 시간을 통과한 참된 사람은 그 어려움을 잊지 않고 거기에서 다시는 그런 어려움이 다른 이가 겪는 일이 없기를, 조금만이라도 그 어려움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으로 보탬을 사회에 헌신하기에 이르렀다. 

최준명 회장은 참된 사람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아이. 그런 와중에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 

그리고 그는 고아원에 있으면서 고아라는 것이, 그 아픈 성장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 때 참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잘 아는 주인공이었다.

그는 말한다. “고아라는 것은 애정을 줘야 하고, 품 안에 안아야 하고, 온몸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마음마저도 영혼마저도 고아가 된다”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보며 그는 돈이 있어서 학교를 세우고 특별한 자선심이 있어 보육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선행은 바로 자신의 꿈이었다, 라고 말한다. 자신이 자라오면서 어렴풋이 간직한 꿈을 이제야 진정한 어른이 되어 그는 사회로, 안타까운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자신의 꿈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설립 52년 된 휘경여자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육을 통한 나눔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그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려고 하는 것은 사람 냄새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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