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손진기 칼럼니스트] 1979년 12월 겨울 칼바람이 용산에도 어김없이 휘감아 돌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심장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나란하고 있는 곳이다. 국방부와 육본의 경계병들은 저녁을 먹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을 가르는 사이렌이 울린다. “진돗개 하나, 진돗개 하나” 경계병들은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영문을 몰랐던 병사들은 실탄을 장전하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었다. 분명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비상 상황인데 왜 비상이 발령 된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는 상황. 

초소를 지키고 있던 제대를 3개월 앞둔 고참 정 병장. 탕!탕!탕!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정 병장은 총소리가 들린 육군본부 쪽을 주시했다. 이어 총소리는 투투투투투투... 총소리는 더 커지고 더 많아졌다. 정 병장의 벙커는 수십 명의 특전사( 특수전 사령부. 정병주 사령관 ) 병사에 의해 포위당했다.

1212 군사 반란 쿠데타의 시작이다.

당일 8시경 정병주 특전사 사령부 사령관은 부대로 급히 들어왔다. 지휘관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 사령관은 매우 격노한다. 특전사의 여단장들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상황에서 1, 3, 5 여단장들이 위치 파악이 안 되거나 자리에 없었다. 이들은 수도경비사령부 내 경복궁 30단에 가 있었다. 이들은 여기서 군사 발란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쓰리스타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투스타 노태우, 박준병, 원스타 박희도, 최세창, 장기호 대령 장세동, 김진영. 별들만 21개가 모여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기 근무지역을 이탈하여 이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진돗개 하나 발령 상황에서... 엄밀히 말해 탈영이다. 

이들은 30경비단에 모여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육군 소장 전두환 보안사령관. 

‘생일 집 잔치’

계엄사령관이자 육군 대장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체포 작전의 작전명이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려면 대통령이 재가가 있어야만 한다. 전두환은 이 시각 정승화 체포 승낙 결재를 받으러 청와대에 있었다.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의 싸인 없이는 절대 재가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시각,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총소리에 놀라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해 버려 연락 두절. 차~암 한심한 나라다.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이 총소리에 놀라 책임을 무시하고 가족과 도망을 다니고 있다니. 훗날 그는 북한군이 쳐들어온 줄 알고 피신했다고 증언했다. 국방부 장관이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도망가도 된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을 믿고 우리는 방위성금을 냈고 피땀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냈다.
상황은 급박해진다.

대통령의 재가가 나기 전에 정승화 참모총장 쪽에서 먼저 움직이면 이들은 모두 국가 반란죄로 사형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생일 집 잔치’ 반란 작전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있었다.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정병주 특전사령관 이들 3명은 작전에 걸림돌이다. 이 세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의 저녁 초대를 받는다. 12월 12일 18시 30분경 연희동 모 요정에 모인 이들은 술이 한 순배 돌았다. 전두환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갈 생각도 없었다. 전두환은 급히 대통령께 보고할 일이 있어 조금 늦게 온다고 부하를 보내 이들을 묶어놓으라는 유인작전을 펼친 것이다. 
바로 그 시각 총리공관 1층에서 총성이 울렸다.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 의해 대한민국 계엄사령관이자 육군 참모총장이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보안사에 의해 납치되는 순간이다.

이때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것이다. 진돗개 하나는 적의 공격이 있을 것을 예상되었을 때 내려지는 전투 경계 태세이다. 적의 공격이 예상될 때...
연희동 요정에 모여 있던 이들은 바로 자대로 복귀하고 전투복과 무장을 하고 산하 예하 부대를 통솔한다. 그러나 통솔할 부대가 모두 쿠데타에 가담해서 움직일 병력이라고는 9공수여단 밖에는 없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가장 긴 밤이 시작되었다.

육군본부는 30단에 있던 지휘관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서기로 한다. 반란군은 정병주 특전사령관 회유 실패,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 회유 실패. 정병주 장군은 1공수를 동원해 진압할 생각을 하고 1공수에 출동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반란군 편에 선 1공수. 3공수도 넘어가고 이어서 5공수도 반란군에 가담한 후였다. 정병주 사령관 휘하의 4개 공수여단 중 3개가 이미 반란군에 가담한 것이다. 이들이 군에 비밀 사조직 ‘하나회’다.

하나회의 보스가 바로 전두환이다. 

1공수 여단장은 병력 1,500명을 이끌고 김포에서 서울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때 9공수도 부천에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아군끼리의 교전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상황. 전두환은 육본에 9공수 본대 복귀명령을 하달하라고 한다. 육군본부에서 무전이 9공수에 날아온다. 9공수는 부대로 복귀하라는 육본의 명령이 하달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서울이 눈앞인데…. 전두환의 결정적 한마디 “곧 있으면 9공수가 서울에 진입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도 병력을 다 동원할까요? 서울이 완전히 쑥대밭이 될 텐데요….” 다급해진 반란군. 
1공수와 9공수가 서로 교전을 벌이면 아군끼리의 전쟁이다. 이때 전두환의 제안 “9공수를 철수시키세요. 그러면 우리도 1공수를 철수시키겠습니다.” 거짓말이다. 1공수는 그대로 서울로 진입해서 바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한다. 12월 12일의 밤은 반란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정병주 사령관과 장태완 사령관을 제거하는 일만 남았다. 
체포조가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러 갔을 때 정병주 사령관의 부관 김오랑 소령만이 자기의 상관을 지키고 있었다. 권총에 7발의 탄알을 장전하고 문을 향에 서서 군인의 본분을 다하려 자기의 상관을 지키고 있었던 참 군인. 
M16 개인화기로 무장한 자기 부대의 특전사 병사들이 문을 향에 사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김오랑 소령은 6발 맞고 쓰러진다. 피를 다 쏟고 전사. 정병주 장군도 팔에 관통상을 입고 신음하며 자기 부하들에 의해 팔다리가 들려 끌려갔다. 
국방부 청사를 지키기다 제대를 3개월 남겨 놓고 전사한 정선엽 병장. 
정승화 계엄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4성 장군 서빙고에서 모진 고문 받다 이등병으로 강등 강제 전역. 18계급 강등. 2002년 6월 별세.
정병주 사령관 버스를 타고 서울을 돌아다니다 1998년 가을 경기도 야산에서 의문의 자살 변사체로 발견. 

1991년 김오랑 소령 부인 백영옥 여사, 남편 사망 충격으로 실명 1991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의문의 추락사, 
장태완 장군 가택연금, 아버지 충격으로 곡기를 끊고 이듬해 4월 사망. 아들과 아내는 자살.

2010년 장태완 장군 별세
그로부터 42년 후 
2021년 10월 26일 노태우 숙환으로 별세. 11월 23일 전두환 혈액암으로 별세.
모두 세상을 떠났다.

하나회 신군부 세력은 무엇을 남기려 했나?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의 역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2021년 12월 12일이 또 다가온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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