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은 기회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는 노력과 연구, 애정과 정성으로 탄생”

조선백자 달항아리 명인

조선시대에도 일부 사대부에서만 가질 수 있는 귀한 도자기였기에 그 가치는 지금도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가치를 지닌다. 이에 국내에서 몇 안되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완벽 재현한 도예 명인인 양구 선생 만나 보았다.

 

수많은 연구와 각고의 노력 끝에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비교적 완벽재현이라는 명성

 

백자의 맑고 아름다운 색상은 과거 수많은 도예가들이 재현하고자 노력했으나 번번히 실패할 정도로 사실상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와 각고의 노력 끝에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비교적 완벽재현이라는 명성을 얻은 유명한 도예가가 바로 전남무안 태생의 도예가 양구(47) 명인이다.

1968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도예가 양구 명인은 도예 특히 달항아리에 빠지게 된 동기에 대해 “조선시대 유교적 흐름에 따라 순결하고도 간결함 그리고 티 한점 없는 깨끗함 그 자체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 백색 도자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달항아리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명작은 기회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 애정과 정성으로 탄생하는것

 

양구 도예가는 외모에서는 잘생긴 호남형에 예술인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철학적 언사보다는 철학과 과학을 비교적 동시에 수용하려는 도도한 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예가 양구 명인은 “제가 지난 30여년간 조선백자 달항아리에 푹 빠져 살면서 명작은 기회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 애정과 정성으로 탄생하는것입니다.”고 강한 어투로 강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문한 그는 여주 도자 요장에서 물레대장 등을 거처 본격적으로 조선백자 달항아리에 입문해 1997년 이천에 전시장 ‘보인행’을 설립했고 2003년 서울 삼청동에 개인 전시장 ‘보인행’을 개관하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우렸다. 그결과 마침내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완벽재현이라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이에 대해 양구 명인은 ‘조선 백자만의 고유한 색깔은 손쉽게 살릴 수 없고 많은 도예인들의 꿈이라’면서 ‘하나의 도자기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작업공정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색깔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하다’고 강조하는 양구 도예작가의 말에서 그가 지금 것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완벽한 재현이라는 명성을 얻기까지 오로지 한길을 변함없이 매진해온 열정과 꿈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시대에 조선백자 달항아리 전문도예작가로 큰 업적을 남길 인물로 손꼽히기도

 

양구 명인은 그간 많은 언론에서 주목한 유명도예가다. 이미 그의 작품은 도자기 수집가들로부터 큰 인기와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이 시대에 조선백자 달항아리 전문도예작가로 큰 업적을 남길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도예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아라고 할 까요? 요즘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가 들어옵니다. 전 달항아리가 좋아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처음 조선 백자의 맑고 또 맑은 아름다움을 봤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 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늘 초심에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단순히 완벽재현이라는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아닌 내 혼을 담아 맑고 아름다움 그리 고 넉넉한 온기가 가득한 양구만의 달항아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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