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포스코호 비상하다

“산업 내 기술 융합뿐만 아니라 산업 간의 기술 장벽을 넘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을 선택했다. 포스코는 지난 3월 10일 열린 제49기 주주총회에서 권 회장의 연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권 회장은 재계서열(공기업 제외) 6위 거함 포스코호 CEO 연임에 성공하며 임기 3년의 2기 체제에 돌입했다. 최고기술경영자(CTO) 출신인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임기 내 전 사업장을 스마트 공장화하고 향후 에너지와 소재분야 등 비철강 부문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나가는 한편 철강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해 재무건성 확보를 통한 수익달성을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재훈 기자  ljh@ceomagazine.co.kr


자산기준 국내 재계 서열 6위 거함 포스코호가 권오준 회장을 선장으로 출항했다.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 3월 10일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포스코의 새로운 3년을 이끌 수장으로 연임에 성공하며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2014년 8대 회장으로 취임한 권 회장은 첫 임기 3년간 철강 본원의 경쟁력과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면서 그룹 구조 재편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기업 체질을 튼튼히 하고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CTO(Chief Technology Office) 출신의 권 회장은 기술연구소장, RIST원장 등을 역임한 철강기술전문가로 포스코의 ‘World Best, World First’기술 개발을 주도해 독점적 기술경쟁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취임 이후 하드웨어인 강재와 이용기술, 상업적 지원, 휴먼솔루션 등 소프트웨어 요소를 결합하는 솔루션 마케팅 활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왔다.


제1기 ‘POSCO the Great’비전 제시권오준 회장은 2014년 회장에 취임하며‘위대한 포스코를 창조하자’는 의미의 ‘POSCO the Great’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인류에게 제공하여 세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될 것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윤리,화목,창의,일류경영의 4대 경영이념을 기반으로 ▲철강본원경쟁력 강화, ▲ 사업구조 혁신 가속화, ▲신성장사업 가시적 성과 창출, ▲윤리기반의 경영인프라 구축을 4대 혁신아젠다로 삼고 ‘혁신 POSCO’를 추진해왔다. 철강본원경쟁력 강화를 위해 월드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 및 기술과 마케팅을 융합한 솔루션마케팅을 적극 추진했다. 이에 따라 월드프리미엄 제품 판매량이 2014년 약 1,000만톤에서 2016년 1,600만톤 수준으로 50% 이상 누적 성장했고, 솔루션마케팅 연계 판매량도 같은기간 130만톤에서 390만톤으로 3배 가량 늘었다. 또한 포스코 고유기술에 기반한 월드퍼스트제품의 판매량도 2015년 210만톤에서 2016년 260만톤 수준으로 증가했다.

 특히 사업구조혁신을 가속화하며 취임당시 세운 149건의 구조조정 목표를 차질없이 진행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6건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5조8,000억원의 누적 재무개선 효과를 거뒀다.취임 직전인 2013년 2조2,000억이던 영업이익을 지난 2016년말 2조 6,000억으로 19% 증가시켰고, 또한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7.3%에서 10.8%로 늘어 5년만에 영업이익률 두 자리 수를 회복했다. 재무건전성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취임 이후 3년간 순차입금을 7조 1,000억원 줄임으로써 연결기준 부채비율을 74.0%로 낮췄다. 특히 포스코 별도 부채비율은 17.4%로 창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결기준 차입금은 전년대비 2조 5,152억원 감소했다. EBITDA대비 조정 차입금 비율도 2014년 3.8배에서 2016년 2.9배로 개선시켰다.국제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도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무디스가 포스코의 장기 기업신용등급 ‘Baa2’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포스코의 장기 기업신용등급 ‘BBB+’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포스코 주가 또한 52주간 꾸준히 신고가를 경신해 지난 1년 동안 약 60%의 상승했다. 신성장사업의 가시적 성과를 창출했다. 전기차, 노트북, 휴대폰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탄산리튬을 추출하는 기술 상용화에 성공해 독자 기술개발 7년만인 2017년 2월 광양에 연산 2,500톤 규모의 리튬추출공장 PosLX를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또한 용량, 수명 및 안정성이 대폭 개선된 이차전지 소재 ‘고용량 양극재, PG(POSCO Gradient)-NCM(Nickel Cobalt Manganese)’를 양산, 공급에 성공하는 등 신성장사업의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까지 니켈 80% 이상 고용량 양극재(NCM 방식) 양산이 가능한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포스코를 포함해 두 곳뿐이다.윤리기반의 경영인프라를 구축해 윤리를 경영의 최우선에 두고 ‘금품수수, 횡령, 성윤리 위반, 정보조작’을 4대 비윤리 행위로 정하고, 이를 철저히 근절하기로 했다.


현장중심 경영키워드로 위기 극복권 회장은 현장중심 경영으로 위기극복에 팔을 걷었다. 취임 후 그는 포항제철소, 광양제철소를 시작으로 해외사업장을 잇따라 방문해 현장 직원들을 격려했다. 2014년 3월 14일 포항제철소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취임식을 가졌던 그는 평소 임직원들에게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 때문에 취임 직후부터 포항, 광양제철소는 물론이고 포스코엠텍, 포스코켐 등 주요계열사 사업장을 수시로 찾았다.또한 기술 기반의 ‘솔루션 마케팅'을 강조하며 국내 주요 자동차사 및 조선사들을 직접 찾아갔다. 기술 솔루션 마케팅이란 고객에 대한 기술지원과 마케팅 활동을 통합한 것으로 고객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고객가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솔루션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등 국내 주요 자동차사를 직접 찾아가 기술전시회를 개최하고, 고객사를 포스코센터로 초청해 신차를 전시∙시승하는 등 공동프로모션으로 고객사와 포스코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 및 마케팅 교류를 확대했다.
철강기술 전문가로 기술개발 주도권 회장은 철강기술 전문가로 포스코의 기술개발을 주도해왔다. 그는 RIST 강재연구부 열연연구실장과 기획부장을 지내며 열연제품의 품질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입사했을 당시 포스코는 품질 기술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포항 4기 설비가 종합준공 돼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기술개발 능력의 확충과 품질관리 기능의 고도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고품질, 고생산성, 저원가 달성을 위한 품질관리 체제가 이때부터 대대적으로 구축됐다.RIST도 예외가 아니었다. 품질 좋은 열연제품(쇳물에서 최초로 생산된 철강 완제품, 컨테이너, 파이프나 얇은 철판의 소재로 쓰임)이 나오기 위해선 첫 단추인 연구개발(R&D)단계에서부터 완벽하게 품질관리가 이뤄져야했다.

그는 열연의 품질을 좌우하는 재질예측제어기술을 연구해 철강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데 공헌했다. 철강시장을 읽고 미래전략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기술개발 철학을 정립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이후 기술연구소 부소장과 기술연구소장, RIST 원장 등을 거치며 박판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고 2012년 기술총괄 사장으로 선임됐다. 현재 포스코의 핵심 수익원이 된 자동차 강판, 전기강판, 에너지용 강재, 선재 등 고부가가치 강(鋼)을 개발하고 공정 기술을 개선하는 데 그의 연구 실적과 노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 중에서도 2000년 초부터 심혈을 기울인 자동차 강판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기술과 마케팅 접목한 혁신경영 추구공학박사인 그는 신제철기술인‘파이넥스 공법’을 상용화하는 데 기여하고 염수(鹽水•소금물)에서 배터리 필수 소재인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그가 다방면에 걸쳐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적 호기심’과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기술 지상주의자’다. 그리고 근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스코의 근본은 철이다. 업황 침체로 모든 철강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철을 기본으로 차별화된 기술을 구현하면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그렇다고 권 회장은 한 자리에 앉아 연구에만 몰두하는 기술인에 머물지 않는다. 직접문제를 찾고 행동으로 옮겨 사업화까지 고민한다. “산업 내 기술 융합뿐만 아니라 산업 간의 기술 장벽을 넘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각종 특허와 발명 성과로 장영실상(1996년), 대한금속학회상(1996년), 기술경영인상(2013년), The Korea Society ‘Van Fleet Award’ (201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16년) 등을 수상했다. 권 회장은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직후 기부의사를 밝히면서 “창조경제의 본질은 일자리 창출이며 기관별로 청년창업, 벤처기업 지원 등에 활용되어 차세대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함께 꿈을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상금 3억 원 전액은 포스텍과 한국공학한림원, 서울대에 1억 원씩 각 기관에 헌납됐다.


‘자사주매입’ 과‘분기배당제’ 도입2015년 10월부터는 구조조정, 재무구조 개선활동 등의 책임 있는 완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그룹 내 임원들의 주식매입 프로그램과 ‘분기배당제’를 도입했다.포스코그룹 임원은 매월 급여의 10% 이상 규모로 포스코, 포스코대우, 포스코켐텍, 포스코ICT, 포스코엠텍, 포스코강판, 포스코플랜텍 등 그룹 내 7개 상장사 중 1개사를 선택해 주식을 매입해왔다. 이와함께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국내 대기업 최초로 ‘분기배당제’를 도입했다. 분기배당제를 도입해 투자자는 배당금의 지급주기가 단축됨에 따라 배당에 대한 불확실성이 축소되고, 실질 배당수익률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대폭 개선된 실적과 함께 강화된 주주가치 제고 활동으로 시장의 신뢰를 꾸준히 회복했다. 포스코 주가는 52주간 꾸준히 신고가를 경신해 2016년 한해 동안 59.57%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제2기‘Smart POSCO’로 새로운 50년 준비제1기 권오준호의 방향타가 ‘PG(POSCO the Great)’라면 닻올린 제2기 권오준호는 ‘SP(Smart POSCO)’를 방향타로 출항했다.이번 연임으로 ‘권오준 2기 체제’가 공식 출범한 가운데, 권 회장은 향후 비철강 부문의 경쟁력 강화와 스마트화 등에 초점을 맞춤 방침이다.권오준 회장은 새로 주어진 3년의 임기동안 ‘Smart POSCO’로의 체제 전환(Smart Transformation) 을 통해 미래 50년을 준비 할 포부를 밝혔다.철강사업은 기술∙원가를 리딩하는 글로벌 No.1 철강사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생산부문에서 AI, Big Data, IoT 등 Smart 기술을 활용한 ‘Smart Factory’ 적용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판매부문에서는 WP+ 전략을 통해 수익성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할 방침이다.또한 에너지와 소재분야의 차별화 역량을 기반으로 신성장 동력을 마련 할 구상이다. 특히, 리튬전지 전극소재, 자동차/항공용 경량소재,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그룹사업은 ‘Smart Technology’를 활용해 수익창출형 Biz. 모델로 전환 할 계획이다. 그룹사업 ‘Domain Excellency’와 ICT 기술을 결합, 차별화 역량을 확보하는 한편, 그룹사 간 ‘Value Chain’을 연결, 시너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추진할 예정이다.또한, 창의와 협력의 조직문화를 진작해 ‘Smart Transformantion’의 성공적인 안착과 성과창출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권오준 회장은 누구?


목표한 것은 반드시 이루는 ‘철인(鐵人)’


권오준 포스코그룹 9대 회장은 1950년 경북 영주시 하망동 181번지(속칭 향교골)에서 검교공파 34세손 권영건(寧建)의 4남 1녀 중 셋째(2남)로 태어났다. 부친은 자식들에게만은“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면서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그가 서울사대부고를 다닌 시절에는 부친 사업이 어려워져 등록금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그의 부모는 5남매를 모두 명문인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이하 서울사대부고)에 보낼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이런 교육열은 부모의 부지런함과 절약정신에서 나왔다. 칼국수와 해장국이 어린 시절 가족의 유일한 외식메뉴였고 혹시라도 비싼 것을 먹으려고 하면 ‘부자 연습하나’ 라며 만류했다. 선친은 매일 새벽 다섯 남매를 깨워 영주 철탄산까지 함께 달리기를 했다. 신문의 광고지를 모아 연습장을 만들고 교훈을 적어 자녀들에게 나눠주며 몸소 근검절약을 가르쳤다.특히 어머니의 교육열은 남달랐다. 평소엔 자애롭지만 자식들이 숙제를 제대로 못 할 때에는 불호령을 내리는 ‘타이거 맘(tiger mom, 자녀를 혹독하게 교육하는 엄마)’이기도 했다. “집안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어머니는 저녁마다 다섯 남매의 숙제지도를 했는데 그 시간이 때론 ‘공포’ 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본인이 더 억울해 했고 어떤 날은 아궁이에 책을 집어 던진다고 하거나 공부를 하기 싫으면 지게를 줄 테니 나무나 해오라는 등 ‘충격요법’을 써 자녀들을 훈육했다. “어머니가 책을 태우려고 할 때 울면서 잘하겠다고 매달린 후 다시 책을 펴 문제를 풀면 척척 풀려 신기했다” 고 형제들은 회상했다. 그의 어머니는 하숙과 전세로 살림을 꾸리는 형편에도 자녀들의 학비를 미루는 법이 없었다. 서울을 다녀올 땐 스테인리스 스틸 식기를 잔뜩 사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팔았고 닭과 돼지를 키워 다섯 자녀의 등록금을 댔다.

직선적이고 강직한 품성권오준 회장은 의사표시가 분명하고 직선적인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을 대할 때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없으며 표현이 간결하다. 성품도 온화하고 차분하지만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다.“한번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면 집요할 정도로 몰입해 실행하는 성격의 친구였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공부하겠다고 정한 시간에는 제 살을 꼬집으며 집중했고, 운동하겠다는 목표를 정하면 상급학교 진학 입시를 며칠 앞두고도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갔던 친구라는 게 지인들의 기억이다.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부모는 그에게 커다란 자극이 됐고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동기를 부여했다. 1965년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건설, 중화학을 중심으로 산업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특히 철은 '산업의 쌀'로 불리며 가장 중추적인 산업으로 각광받았다. 그가 철(鐵)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학업 성적이 뛰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목표로 삼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68년은 한국 최초의 일관종합제철소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가 설립된 해이기도 하다.그는 반에서 1등을 해도 남들 앞에선 늘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담임선생님이 반장을 시키려 했지만 스스로 ‘촌놈이 반장이라니 도저히 할 자신이 없다’며 포기한 일화도 있다.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도 항상 소신을 지켜왔다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포스코 기술부문장을 역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한 어떤 구설도 풍문도 없었다. 기술자로의 본인의 길을 충실히 걸어온 덕분이다.
자기관리 철저자기관리 역시 철저하다. 일례로 2008년 12월 조선일보 부음(訃音)란에 실린 부친상 부고를 보면, 그의 직함이 그냥 ‘회사원’이다. 당시 포스코기술연구소장 이었지만, 수많은 협력사가 조문(弔問)하러 오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잡음이 나는 것을 매우 꺼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변을 너무 깔끔하게 관리하는 탓에 그의 경영 경험부족을 우려하는 일부 지적도 있는데, 민동준 연세대공대학장은 “권 내정자는 10년 전부터 ‘철강 공급과잉’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은 ‘포스코만이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는 것’ 이라고 주장해 왔다.” 며 그가 일관성을 지킨다면 경영도 잘할 것” 이라고 말했다.

권오준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면서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학부 졸업 무렵 그는 미국 피츠버그대로 유학을 희망했다. 피츠버그는 미국 철강산업의 본산인 US스틸이 있는 곳이었다.다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계획을 미뤄야했다. 우선 군 복무를 마치고 국방과학연구원(ADD)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면서 유학비용을 마련했다. 이후 그가 진학한 곳은 피츠버그가 아닌 캐나다 윈저대였다. 이곳에서 장학금 제안을 받아서다. 윈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다시 피츠버그대로 도전했고 이곳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 노력과 도전이 필요한 일이었다.
기업은 국가와 사회에 책임감 가져야그는 유학 시절 US스틸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피츠버그의 경제가 쇠락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틈만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피츠버그는 US스틸이 있는 철강도시였다. 기업이 없어지면 도시가 망하고, 결국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그는 산업의 존재 이유가 국가와 도시를 살리는 것이라고 깨달으면서, “기업은 국가와 사회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형성한 것도 이 때였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1986년 포스코에 입사했다. 몇몇 대학에서 교수직 제안도 받았지만 생산 현장에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스코를 택했다. 평소 그는“생산과 연구가 서로 시너지를 가지고 병행돼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박태준 명예회장의 영향도 받았다. 박 명예회장은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가치를 세우고 인재영입과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광양제철소 1기 설비 건설이 한창이던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를, 이듬해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설립해 포스코-포항공대-RIST를 3개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체제를 완비했다. 권 회장 은 이 시기에 핵심 연구인력으로 포스코로 영입됐고 이듬해인 1987년 RIST가 출범하자마자 원년 연구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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