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드라마 『모래시계』

[CEONEWS=김지훈 기자] 
드라마를 말하다

‘모래시계’는 1995년 1월 9일 첫방송을 시작으로 1995년 2월 16일 24부작을 끝으로 종영됐다. 故김종학 PD, 송지나 작가가 ‘여명의 눈동자’ 성공 후 다시 만나 대중을 순식간에 흥분시켰던 작품으로 박상원과 고현정이 함께 승선하며 힘을 보탰다. “나 떨고 있냐?”라는 명대사를 내뱉으며 ‘모래시계’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최민수와 극중 고현정의 충실한 수행원으로 강한 역할을 맡았지만 오히려 여성 시청자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며 일약 청춘스타반열에 오른 이정재가 출연했다.
      
드라마 배경은 6.25 이후 최대의 격동기였던 70년 말부터 90년 초까지의 현대사를 그려냈으며 당시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둘렀던 탓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오죽하면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었다. 시청률 64.5%로 역대 드라마 순위 3위라는 기록이 당시에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왔는지 알 수 있다.

추억은 방울방울
1995년으로 최면을 걸어보자. 벌써 이 드라마의 나이도 24살이다. 그만큼 나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했다. 다시 보며 기억이 많이 왜곡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어린 시절이라 반항적이고 거친 극중 인물에 지나치게 이입되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전설로 남은 이 작품에 실례가 되는 말을 해야겠다. 깡패들의 땅따먹기쯤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이렇게 무섭다. 반성이라는 명사를 붙여본다. 다시 보니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비극적인 현대사를 노골적으로 담아냈으며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내세워 시청자들에게 자극과 환상을 심어주었다.

가족이 많았던 만큼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면 말이 많았다. 유독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는데 배우 정성모가 열연했던 이종도는 끊임없이 주변을 배신하며 비열한 말과 행동을 일삼았다. 23화가 끝날 무렵 이종도는 끊임없는 박태수의 호의를 무시하고 칼로 찌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이의 기억에도 ‘죽일 놈’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이유는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저 죽일 놈”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급하게 두 손으로 나의 귀를 막으며 “애 듣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냐?”라며 호통쳤고 두 분은 언성을 높였다. 한 가족의 일상은 드라마에 깊숙하게 녹아들었다. 

극중 인물 이종도는 드라마 ‘손 the guest’의 박일도와 함께 절대 잊히지 않는 드라마 속 이름으로 자리한다.   

스크린 속 현실 속
네 남녀의 기구한 운명을 담은 ‘모래시계’의 흔적을 쫓아 강원도로 떠났다. 극중 인물들의 인생을 투영한 듯 짙은 먹구름이 끼였고 그 흐릿한 기운은 여행자에게 엄습했다. 그들의 공간이 나의 공간이 되는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인상적인 두 장면이 뇌리를 스쳤고 방문하게 되었다. 

먼저 정선으로 향했다. 12화에서 한적한 시골 역이 나오는데 나전역이다. 친구를 돕느라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까지 위중해지면서 강우석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배우 박상원의 착잡한 표정 뒤로 나전역 간판이 노출된다. 

현실은 어떨까? 하루 한 번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4855 열차가 12시 32분에 나전역에 정차한다. 그리고 1분 후 아우라지역을 향해서 달린다. 평일 오후 이곳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주민 한 사람만이 대합실을 지키며 감상에 빠져있었다. 추억을 상기하기 위해서 철제 난로와 철도원, 승객들의 모습을 본떠서 인형으로 만들어 놨다.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전역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된 역이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킬미 힐미’ 예능 ‘1박 2일’ 서태지의 CF까지 촬영장으로 각광 받았다. 지금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며 쓸쓸함을 안고 있는 역이기도 하다. 

다음 행선지는 정동진이다. 8화에서 고현정이 노동 운동의 피해자인 여성의 밀고로 경찰에게 검거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촌마을 작은 역인데 정동진역이라고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모래시계’하면 정동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유명한 곳인데 기억하는 장면과 일치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정동진은 방문했던 기억 속 정동진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덕분에 24화까지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스크린 속 정동진은 황량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바다 사나이는 거칠고 외롭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 표현을 빌려 쓰고 싶다. 거친 파도와 황량한 바닷가 풍경은 우울한 장면과 담기며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하게 만든다. 

지금은 어떨까? 도착했을 때 드라마 속 명장면처럼 날씨가 우중충했다. 하늘은 먹구름이 끼였고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도 거칠었다. 찜찜함에 고현정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에게 투영되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달랐다. 평일 오후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정동진역은 많은 인파로 붐볐다. 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모래시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일명 모래시계 나무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고현정 소나무로 명명되다가 그녀가 결혼하자 모래시계 나무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정동진역의 경치는 일품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역 앞 백사장이 펼쳐졌던 예전과 달리 모래가 많이 유실되었고 레일바이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바다 반대쪽 역 앞은 각종 상가와 숙박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지 느낌을 물씬 풍긴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길 바라는 것은 이방인의 욕심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여파가 크다고 느끼는 것은 모래시계 공원을 조성해서 정동진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잠시나마 잡는다는 것이다.

정동진 철로 위에 서서 그녀가 되어보았다. 플래폼으로 들어오는 기차와 자신에게 뛰어오는 경찰 무리를 드라마는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그녀의 시선이기도 한데 보면서 허탈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배신감과 양심의 가책 곧 허망함이 밀려왔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서서 감정이입을 해보는 것은 여행지에서 큰 기쁨으로 자리한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역의 풍경이 또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여행의 시간
1박 2일 동안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보았다. 이동하며 가을을 품은 강원도의 절경에 감탄하며 희열을 느꼈다. 삼척시에 진입하면서 가을 장대비가 쏟아졌고 취재 과정에서 비를 쫄딱 맞기도 했다.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도 들렀다. 대나무숲 장면이 촬영된 양리마을에 방문하여 영화에 출연한 강화순 할머니를 뵙고 인사를 드렸다. 돌아서는 이에게 두 손 가득 감을 선물해주셨다. 가슴이 먹먹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누군가는 그 시절,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 소중한 시간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것이다.      

기자의 여행 노선을 남긴다.

나전역 – 문치재 – 라마다앙코르정선호텔 – 추전역 – 미인폭포 – 신흥사 – 양리마을 대나무숲 – 맹방해수욕장 – 헌화로 해안도로 – 정동진     

     

사진. 김지훈 김동규
글.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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