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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 CEO 48 ]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세계적인 기업 휠라를 한국기업으로 인수한 정통 흙수저 출신 CEO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CEONEWS=추현욱 기자]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CEONEWS가 '대한민국 리딩 TOP CEO'를 선정합니다. 이번 선정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CEO들의 명예와 자존감을 앙양하고 그들의 업적과 노고를 치하하고 CEO PI의 본보기로 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지사가 본사를 인수해 버린 신화 창조의 장본인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 꽃피운 곳은 한국

1991년 필라 코리아 경영을 맡은 뒤 해마다 30%가 넘는 성장을 이끌어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휠라를 꽃피운 곳은 한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경기침체 속에도 연봉 18억을 자랑하며 샐러리맨들의 신화 같은 존재로 우뚝 섰다. 게다가 휠라 본사까지 인수하여 세계 기업 경영사에도 드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윤 사장의 족적은 글로벌 경영시대의 대표적인 역할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 생애 및 성과

윤윤수 휠라 코리아 회장은 태어난 지 백일도 안돼 어머니를 잃었다. 가난했던 윤회장의 아버지는 갓 태어난 윤회장을 안고 동네 젖동냥을 해야만 했다. 이런 아버지마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암에 걸려 돌아가시는 시련을 맞았다. 돌아가시기 직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아버지를 눈물로 보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한 대학입시. 의대에 낙방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 번, 세 번에 걸쳐 연이은 낙방. 윤윤수는 드디어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 당시 후기대학이었던 한국외국어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한 그의 대학생활은 무미건조했다. 그래서 영어나 배울 심산으로 카츄사에 입대했다. ‘민족 자존심도 없는 놈’이라며 다른 사병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미군병사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영어에 재주가 있었던 윤회장은 3년이 지나자, 미군병사들도 놀랄 만큼 실력이 많이 늘어 있었다. 

제대 후, 그는 배운 영어를 바탕으로 외교관이 되려고 외무고시를 보았다. 만만치가 않았다.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겨우 졸업하게 되었지만 졸업장만 달랑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은 많지는 않았다. 그는 준비해두었던 영어를 무기로 미국 JC페니 백화점에 취직을 하게 된다. 당시 한국 상품을 구매해서 미국본사로 보내는 일을 맡았다.

여기서의 경험을 밑천으로 화승그룹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 수출부장 역할을 맡아 미국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는 등 업무로서 인정을 받고 자신감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시장을 바라보는 혜안이 생기니 새로운 기회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스포츠의류 업체인 휠라(FILA)였다. 창업 당시 휠라는 속옷을 주력으로 생산하던 회사였다. 그러던 중 1972년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 피아트가 휠라를 인수하면서 휠라는 단순한 의류브랜드가 아닌 스포츠 브랜드로 거듭났다. 1980년대 당시 침체기였던 시절 윤윤수회장이 휠라를 만나게 된다. 화승에서 일을 배운 후 종합무역상사를 차린 윤회장은 휠라가 나이키처럼 운동화를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윤회장은 미국 휠라 신발 판권을 가진 호머 알티스를 설득한 끝에 한국 신발에 휠라 상표를 붙여 미국에서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휠라에서 의류매출보다 신발 매출이 많아지면서 이탈리아 본사는 윤회장을 주목했고, 1991년 휠라 코리아가 설립될 때 그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윤회장은 회장 취임 첫해 휠라 코리아를 매출 150억원 규모로 성장시킨데 이어 2000년에는 매출 1,470억원을 기록해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스포츠웨어를 개발한 결과였다.

성장을 거듭하던 휠라 코리아는 지난 2007년 부도위기에 빠진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또한 인수 당시 엄청난 적자를 보던 휠라를 지난 2010년에 흑자로 전환하면서 운영 능력을 뽐냈다. 

◆ 경영전략 및 공과

아크쉬네트 인수

휠라 본사 인수효과로 2010년 영업이익 1000억 원을 달성한 휠라코리아는 이듬해 7월 미래에셋 등 FI들과 골프용품업계 세계 1위 아쿠쉬네트를 인수했다. 아크쉬네트 인수 후 휠라코리아의 영업이익은 2011년 다시 900억 원대로, 2015년에는 805억 원으로 떨어지며 고전을 했으나 ‘리브랜딩(re-branding)’전략을 펼치면서 다시 성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먼저 2015년을 브랜드 리뉴얼의 원년으로 삼고, 잃어버린 20~30대를 붙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브랜드 이름만 빼고 모든 분야에서 전격 개편에 들어갔는데 여기엔 윤윤수 회장의 장남 윤근창 사장의 역할이 컸다. ‘뉴트로’를 주제로 삼고 2016년 하반기부터 휠라의 옛 디자인을 살려 제품 출시했다. 또한 4-50대 소비자 이탈을 감수하고 밀레니얼 세대로 타겟층을 변경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10~30대이기에 가격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연령대임을 고려해 가격을 대폭 낮추기도 했다.

이에 맞춰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는 새로운 협력업체를 찾아 중국 푸젠성 진장 지역에 ‘휠라 글로벌 소싱센터’를 짓고 신발 생산했다. 이로 인해 경쟁 브랜드가 내놓은 비슷한 사양의 운동화들은 대부분 10~20만 원 대였으나, 휠라는 6만9000원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가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휠라의 운동화 대부분이 밀리언셀러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휠라의 운동화 중 ‘디스럽터2’는 출시된 후 1년 반 동안 전 세계에서 1,000만 켤레 이상 팔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두가지 발빠른 대처로 휠라코리아는 2017년 영업이익 2174억 원을 기록하여 전년 대비 1741% 증가해 반등에 성공하게 되었다. (휠라코리아가 2016년 12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쿠쉬네트홀딩스를 자회사로 편입한 효과도 있음)

또한 세계1위브랜드이자 골프공으로 유명한 타이틀리스트도 휠라가 가지고 있다. 그 외 두산에서 파는 유니폼도 휠라에서 제작하고 있어 두산이 우승할때마다 광고효과를 톡톡히 보고있고 올림픽과 스포츠에 후원하면서 브랜드 입지를 다시 쌓아 밀레니얼 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온라인 비즈니스도 강화한다. 2016년 공식 온라인몰 사이트 리뉴얼을 단행하며 유통 채널 변화를 준비했고 그 결과 온라인 단독제품들을 잇따라 선보이며 완판을 이어가고 있다. 공식 온라인몰의 성장성도 확인했다. 지난해 공식 온라인몰 매출은 전년대비 3배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휠라코리아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호실적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의 슈즈 전문 미디어인 '풋웨어 뉴스(Footwear News)'에서 휠라의 디스럽터2를 '올해의 신발'로 선정하는 등 스포츠 브랜드들의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FILA의 브랜드 입지는 갈수록 탄탄해지고 있다"며 "중국에서도 스포츠 브랜드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휠라'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 경영철학

벤치마킹보다는 자신의 경험에서 성공전약을 도출해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남이 거둔 성공 전략을 벤치마킹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에서 성공 전략을 도출해 보라고 권한다. 성공한 기업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전략도 한번 햇볕을 보고 나면 생명력을 잃게 마련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지금 부는 헤리티지(문화유산) 열풍은 세계적인 메가트렌드입니다. 헤리티지에서 이른바 라이프스타일이 시작됩니다. 실적(퍼포먼스)을 중시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어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중가 브랜드였던 휠라가 오래된 헤리티지 덕에 새로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이다(Old is new)’ 전략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휠라는 한때 고가 브랜드였지만 그 후 가격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포츠웨어를 찾는 젊은이들은 휠라가 그렇게 하락했을 때의 모습을 잘 몰라요. 그래서 오래된 이탈리아 브랜드 휠라의 유산을 보여줬더니 새롭다고 환호를 하는 겁니다. 반면 여전히 퍼포먼스를 부각하려는 브랜드들은 추락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01년 경영컨설턴트 이해익과의 공저한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산다」라는 저서에서 보면 “원부자재ㆍ부품 조달 및 관리의 핵심은 필요로 하는 샘플을 빨리 만드는 겁니다. 그래야 질 높은 물건을 빨리 생산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죠. 자라ㆍ유니클로 같은 브랜드가 성공한 비결입니다. 바로 우리가 신발에 이어 의류의 소싱 센터를 중국에 차린 목적입니다. 우리 회사는 우리가 필요한 샘플을 소규모 신발 공장에서 직접 만듭니다. 비즈니스는 결국 시간 싸움인데 그 덕에 신제품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경쟁사의 3분의 1로 단축했습니다.” 라는 성공경영비결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업인의 사회환원은 당연한 것 

“사업으로 번 돈의 25%만 내 것입니다. 나는 40~50%는 세금으로 내고 25%는 남을 위해서 써요. 세금으로 내는 절반이 내 것이라 생각하는 건 잘못이고, 그래서 아예 잊어야 합니다. 자기 사업을 혼자서 일궜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산입니다. 현상 유지를 한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겁니다. 남의 몫을 인정해야 사업을 문제없이 해나갈 수 있어요. 세금 다 내고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세금을 제대로 안 내려 편법을 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는 남을 위해 쓰는 25%를 힘껏 벌어 남들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한다면 바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어날 수 있는 트러블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무마되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화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그의 샘솟는 아이디어와 성공전략의 원천은 깡다구

美예일대 MBA 윤윤수 회장에게 한 수 배우다.

“경영대학원에 가면 남이 거둔 성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창의적ㆍ혁신적인 전략도 한번 햇빛을 보면 생명력을 잃어 버려요. 결국 성공 전략은 자기 경험에서 나옵니다. 상사가 어떤 지시를 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깡다구도 부리고 본때를 보여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리스크를 안아야 하고, 그랬다가 실패도 합니다. 그 덕에 겸손해지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 깡다구가 바로 기업가정신의 바탕이에요. 돈 많은 사람이 돈 버는 게 자본주의의 약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하지만 기업가정신이 있으면 돈 없이도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교정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는 자신이 자본력도 없이 4억 달러에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휠라 글로벌을 인수한 것도 결국 창조적인 전략 덕이었다고 말했다. 

추현욱 기자  chw@ceo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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