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천재’ 원희룡...대학서 사회의식 눈 떠
40대 대권주자로서 ‘젊은 혁신 정치인’ 이미지 얻어

[CEONEWS=최재혁 기자] 4.10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군 뜨고, 누군 지며, 누군가는 대통령 후보로, 누군가는 한때 인기 있던 정치인으로 저물 것이다. 소장파 정치인이자, 제주도지사를 지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공부 천재’ 원희룡...대학서 사회의식 눈 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1964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창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집안에 전기불이 안 들어왔다고 한다. 1년에 쌀밥이나 고기반찬은 구경조차 못 해봤고,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다녀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 형편이었다.

1976년 2월 서귀포 중문초등학교, 1979년 2월 중문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는 제주 시내에 있는 제주제일고등학교(25회)에 진학하게 돼서 긴 거리를 통학해야 했다.

제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전국적으로 치른 12차례의 시험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며 기대를 모으던 중 1982학년도 제1회 대학입학 학력고사까지 수석을 차지한 것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82학번)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장차 대한민국을 위해 막스 베버와 같은 법사회학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982년 대학진학 이후 신군부 독재의 폭압적 정치현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이 중심이 된 지하서클 '사회복지연구회'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의식에 더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8년간 본격적인 운동권의 길을 가게 되는데, 1984년에는 대학 동기 4명과 함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노학연대 데모를 위한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남부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구속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며, 당국의 주목 대상이 되어 몇 차례 경찰 수배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 무렵 야학과 노동운동에도 뛰어들었는데, 구로공단의 한 교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했으며, 인천의 금속공장 등지에서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하여 하루 일당 2,900원을 받으며 삶을 살아갔다.

"주체사상이 아닌, 노동자들 입장에서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지만,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고 사상적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할 시기에 이르자 사회인으로 일해보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법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1990년 말에 시작해 2년밖에 안 되는 준비기간 동안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패스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24기)에서 최상위권인 5등의 성적으로 수료했다.

 

40대 대권주자로서 ‘젊은 혁신 정치인’ 이미지 얻어

사법시험 합격 이후 검사 및 변호사로 지내오다가 한나라당의 당내 혁신 차원에서 이회창 총재의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로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 지역구에 공천되어 새천년민주당 박범진 후보를 꺾고 당선에 성공, 젊은 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개혁적이고 소신있는 언행들로 유명해졌는데, 미래연대의 주축 멤버로서 보수 일색이던 당 내부에 이때부터 젊은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이후 남경필, 정병국과 함께 소위 '남원정'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의 개혁을 주도하는 소장개혁파 운동을 이끌었고, 당 지도부와 부딪히면서 정치이력을 이어왔다.

탄핵 역풍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생존한 몇 안 되는 서울권 야당 의원이었을 정도로 당 지도부의 결정에 동요하지 않았고 잘못된 방식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당 안팎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양천구 목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구 관리에 소홀히 하지 않고 민심을 살피며 기반을 다져나갔다.

2004년 17대 총선 직후에 치러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당 최연소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당 지도부에 입성하였고,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서는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대통령 경선을 완주하게 된다. 이때 대통령 경선에서는 떨어졌지만 페이스메이커로서 보수층의 격려와 함께 40대 대권주자로서 신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원 지역구인 양천구 갑에서 국회의원 내리 3선에 성공하게 되고, 2009년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당내 쇄신 바람을 주도하였다.

2010년 3월에는 출향 28년, 정치인생 10년을 내걸고 "6.2 지방선거에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디자인에 올인하는 겉치레 행정이 아닌 일자리, 교육, 집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행정 하겠다"며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정면 비판하였고. 당시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부각되던 '초.중교 무상급식'에 대해 야당의 전면 실시 주장과 비슷한 '친환경 의무급식'을 주장하여 오세훈 시장과 견해를 달리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에 맞서기 위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한테 근소한 차이로 패하며 인지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후 2010년 7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을 두루 역임하며 대중적 정치 행보를 걸어왔다.

2011년에는 한국 정당정치의 비정상적 공천시스템 개혁과 선진 정치를 위한 선거구 개편 문제를 거론하며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친서민 정책의 확대"를 주장하면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나름 배수의 진을 치고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4위로 낙선하게 되었다. 당시 당 대표인 홍준표와 당 쇄신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본인이 공언한대로 2012년 5월을 끝으로 여의도 중앙정치무대를 떠났다.

 

소장파 정치인에서 ‘거물 정치인’으로

이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자신의 출신지인 제주지사에 출마하여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후보를 꺾고 득표율 60%를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임기 초반에 "불합리한 도의회의 예산 관행을 타파하겠다"며 제주도의회와 예산안을 두고 갈등을 겪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도의회와 화해하며 서로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는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상으로 접전으로 보이던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를 11.71% 포인트 격차로 여유롭게 누르고 당선되면서 지방선거 이후 범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하였다. 

원 지사는 6월 지방선거때부터 제주도의 블록체인(Blockchain) 특구지정과 제주코인을 발행, 암호화폐공개(ICO)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이를 8월 초에는 공식화하였고 2018년 8월 30일 제1차 시도지사 간담회때 제주특별자치도의 블록체인 특구지정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였다. 

2021년 8월 9일, 아직 제주도지사인 상태로 제 1호 공약 교육 국가찬스 공약을 발표했다. AI 튜터를 두어서 기초학력을 진단하고 맞춤형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평균 학습능력을 높이고 AI 교육 시장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만18세 청년들에게 2천만원 한도의 카드를 발급하여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국민의힘 20대 대통령 경선에 참가해 2021년 8월 19일에는 만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석열 총장을 법무부장관으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컷오프 전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까지 3명은 무난히 컷오프를 통과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님은 건 결국 마지막 4위 자리. 4위 한자리를 두고 원희룡, 황교안, 최재형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로 잡혔다.

컷오프 며칠 전 대장동 게이트와 관련하여 1타 강사처럼 쉽게 설명하는 것이 화제가 되면서 흐름을 탔다.

10월 8일 컷오프를 통과했다. 정식 순위가 발표된 것은 아니나 그동안의 여론조사로 미루어볼 때 그가 4위로 막차를 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컷오프 통과를 했으니 원희룡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2022년 4월 10일, 윤석열 당선인이 1차 내각 인선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하마평과는 달리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국토교통부장관으로 지명했다.

이후 2023년 5월 24일, '청년과의 만남, 주거정책의 시작' 간담회에서 청년 주거정책에 대해 밝혔다. 이 자리에서 ① 청년·신혼부부 및 생애 최초 대상자에게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 첫 집 등 50만 가구 5년 내 공급 ② 생애 최초 구매자에 대한 LTV 80%까지 완화, DSR 미래소득 확대 등 대출규제 완화 ③ 중형과 소형주택 추첨제 비율을 늘리는 등 청약제도 개편으로 청년 청약 기회 확대 ④ 청년임대주택 품질 혁신을 통해 높아진 청년층 눈높이 충족 ⑤ 정책 설계 과정에 청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청년자문단 구성 등 청년주거 지원을 위한 5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원희룡 후보가 이번 4.10 총선 명룡대전에서 이재명을 꺽는 파란을 일으킨다면 대통령을 향한 그의  정치횡보는 탄탄대로 일 것이다.   나아가 국가 CEO 즉 대통령에 등극할 수 있는 개연성이 그 만큼 높아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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