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위한 변명

 

[CEONEWS=조성일 기자] 나는 지금 벨기에에서 이 칼럼을 쓴다. 이곳에 사는 딸아이한테 왔는데, ‘망중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여전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팔자이긴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맘껏 먹지 못하던 사과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며칠 전 딸아이 집 가까이에 일주일 한번 선다는 시장 구경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잔뜩 담긴 과일 상자 위에 써놓은 과일 가격표 때문이었다. 색깔이 선명해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사과 1kg5.4유로가 아닌가. 숫자 관념이 맹탕인지라 처음엔 그 가격표의 진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함께 간 아내가 그 사과값을 보고 이렇게 반색하는 게 아닌가.

아침에 사과 두 개씩 줄게요.”

사과 두 개라니,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평소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핀잔 듣기가 특기였기에 아내의 말보다 내 듣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반색 리액션을 기대했던 아내는 나의 무덤덤한 표정에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있는 동안 아침에 사과 두 개씩 먹으라고요.”

나는 아침 식사로 사과 반 개(원칙은 한 개)와 삶은 달걀 두 개를 먹는다. 작년까지는 식빵 한 조각도 포함됐으나 나름 다이어트 흉내라도 내보겠다며 아침 식사에서만 과감하게 탄수화물 퇴출(?) 선언으로 짜인 식단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 누가 사과를 감히; 한 개씩 먹는단 말인가.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하는 주부들의 인터뷰를 보면 사과 반 개밖에 못 먹는다며 살인적 물가를 걱정하지 않는가. 물론 설 명절이 겹쳐서 체감물가가 더 크게 와닿았을 수 있겠지만, 제수용 사과 한 개에 만 원이라는 뉴스는 우리를 우울감을 넘어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평소에 먹는 과일이 제수용처럼 정품이 아니라 B급이지만 얇은 지갑의 비명에 선뜻 사기가 망설여지게 마련이다. ‘못난이 싼 과일 찾아 삼만리라는 어느 신문 기사의 제목이 한국에서 내가 하던 그 모습이라 크게 공감했다. 그런데 문제는 설이 지났는데도 과일값이 진정되기는커녕 더 오른다는 점이다.

최근 접한 한국이 세계에서 과일값이 가장 비싼 국가라는 국가·도시 물가를 비교하는 한 국제 통계 사이트 조사 결과를 접하곤 여기 과일값은 눈으로 똑똑히 본 바에 따라 그 기사가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과일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른단 말인가. 아무리 지난해 기후 탓에 사과 농사가 흉년이었다고 해도 이럴 수 있는 건가. 사과만이 아니다. 배도 귤도 겨울이면 으레 먹을 수 있는 과일이면 죄다 나 비싼 몸이요하고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이 과연 사과의 잘못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모든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혐의가 짙은 기후로 인한 흉년 탓도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우리 인간들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의 결과 아닌가. 지구온난화로 사과 주산지가 점점 북으로 올라가 강원도 정선이 사과 최적지라는 뉴스가 이젠 뉴스가 아니다. 당연한 걸로 보인다.

또 하나 생각할 문제는 비싼 과일값의 혜택을 누가 보는가이다. 생산자인 농민들일 걸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서민들도 이젠 그 정도의 눈썰미가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유통과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응당 일어나는 정상적인 상거래를 탓하고 싶지 않다. 그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생산자-도매상-소매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적정 이윤이 붙다 보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각에선 수입 과일로 눈길을 돌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바나나나 오렌지 같은 수입 과일이 우리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지만 소비가 더 늘어난다면 이것 또한 걱정이다. 국산 과일이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럼 과수 농가는 망하게 되고, 결국 우리는 무조건 수입 과일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불 보듯 뻔하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과수 농가의 어려움은 곧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장난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 같은 산업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전통적인 근간은 농업이다. 이는 수도권 집중화를 막는 최후의 보루인 지방소멸화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알은체하다 보니 사과값에서 시작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방소멸까지 왔다. 너무 멀리 왔다 싶긴 하다. 하지만 고물가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 보니 이 횡설수설도 양해가 되리라.

결론적으로 말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 과일 생산과 소비, 물가를 누가 관리하는가. 정부 아닌가.

그러니 사과여, 그대는 정녕 비싼 몸값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시라. 그대는 아무 책임이 없다. 그대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사과가 되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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