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반도체 기술 보유한 ‘하이닉스 맨’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CEONEWS=조성일 기자] 그동안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수출 부진으로 평가되던 우리 반도체 경기가 회복 조짐이 보인다고 시장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경기 부침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SK하이닉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4년 새 첫 현장 방문으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찾아 반도체부터 챙겼다는 뉴스는 SK하이닉스를 넘어 우리나라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당위가 행간에 숨어있다. 그래서 업계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시선이 이 SK하이닉스를 이끄는 CEO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에게 쏠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오로지 SK하이닉스에만 일해온 하이닉스맨곽노정. 그는 어떤 CEO인가.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1월 4일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곽노정 대표로부터 HBM웨이퍼와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1월 4일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곽노정 대표로부터 HBM웨이퍼와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적 어닝서프라이즈

 

SK하이닉스의 지난 2023년 실적은 좋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게 맞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이 77303억 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CES 2024 SK그룹관에서 전시 주제 영상을 상영하는 구형 LED '원더 글로브(Wonder Globe)'. 사진=연합뉴스.
CES 2024 SK그룹관에서 전시 주제 영상을 상영하는 구형 LED '원더 글로브(Wonder Globe)'. 사진=연합뉴스.

 

SK하이닉스 2023년 매출액은 327657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6% 감소했고, 순손실도 91375억 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수요 약세 및 가격 급락에 따른 이익 감소 영향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20231년 평가치가 부정적임에도 SK하이닉스는 올해 반도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왜일까?

그건 우선 지난해 마지막 4분기의 실적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 매출 11355억 원과 영업이익 3460억 원을 기록했다. 직전 영업이 흑자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20224분기부터 적자를 보였다. 그런 상황이어서 지난 4분기의 실적은 시장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실적의 증권사 전망치 평균인 컨센서스는 매출 104447억 원, 영업손실 896억 원이었다. 시장이 놀랄만하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는 특히 생산라인 전환과 같은 공정 효율성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어서 안정적인 생산체제를 갖춤으로써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1, 2세대 뒤처진 레거시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우시 공장의 D램 생산 라인을 1a(10급 초반의 4세대 공정) 나노미터(nm)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DDR5, LPDDR5’ 등 제품 양산이 가능하게 하면서 공장의 활용 기간을 최대한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반도체 회사의 중국 공장 운영은 온통 지뢰밭이다. 특히 미국 정부의 규제가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210월부터 중국에 18나노 공정 이하 D램 제조를 위한 첨단 장비 기술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EUV(극자외선) 장비 역시 2019년부터 중국 수출이 불가능하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하반기 미국 정부로부터 예외적으로 EUV 장비를 제외한 장비 반입을 허용하는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로 지정됐다. 그래서 생산은 중국에서 하되, EUV 공정을 국내에서 처리하는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젊은 CEO 곽노정 대표가 고려대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비전과 인재 육성'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젊은 CEO 곽노정 대표가 고려대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비전과 인재 육성'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경영 불확실성 민첩 대응하는 젊은 CEO

 

이런 대내외적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눈에 띄는 인사를 단행했다. 그동안 박정호 부회장이 함께 맡고 있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곽노정 사장이 단독 대표를 맡게 된 것이다.

박 부회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게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인공지능(AI) 얼라이언스 등 미래 성장동력 확충에 나설 거라고 하지만,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사업 구조를 첨단 반도체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의미에서 엔지니어 출신인 곽 사장에 대한 힘을 싣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 경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또 곽 사장이 비교적 젊다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 버지니아 미들버그에서 열린 ‘2023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 포럼에서 새로운 경영진, 젊은 경영자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라고 했던 발언처럼 50대의 곽 사장 단독 대표이사 인사는 젊은 CEO 체제를 중심으로 경영 불확실성에 민첩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기술 전면전이 예상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곽 대표이사 사장은 제조 공법이 빠르게 전환되는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12일 발표된 신년사를 통해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곽 대표이사 사장은 “2024년을 SK하이닉스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자고 했다. “지속되는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위기가 일상이 되고 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수익성 위주의 사업 운용을 강화하고 차세대 기술과 제품에 대한 과감한 투자 의지도 내보였다.

그러면서 곽 대표는 GPT의 등장으로 개막한 인공지능 시대는 모든 산업과 문화의 변화를 이끌 핵심이 될 것이라며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퍼스트 무버이자 글로벌 인공지능 고객이 가장 먼저 찾는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고 강조했다.

 

오로지 SK하이닉스에서만 근무한 '하이닉스맨' 곽노정 대표가 직원들과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오로지 SK하이닉스에서만 근무한 '하이닉스맨' 곽노정 대표가 직원들과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오로지 하이닉스에서만 근무한 원팀맨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를 두고 하이닉스맨이라고 한다. 지난해 프로야구 SSG의 김강민 선수가 느닷없이 한화로 이적했을 때 나왔던 원팀맨의 상징과 가치에 대한 논쟁을 떠올려보라. 선수가 오로지 한 팀에서 뛰다 은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알 수 있었으리라. 이런 점에서 곽 대표가 오로지 하이닉스한 회사에서만 근무하며 CEO 자리까지 올라간 건 신화의 주인공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곽노정 대표는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고서 1994년에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 들어간다.

박사학위 소지자답게 곽노정은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공정기술실 개발연구원으로 배치받아 박막 공정 개발에 참여하며 현대전자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곽노정은 160나노 D램 제품 개발팀 파트 리더를, 이후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100나노, 90나노, 80나노 D램 제품 개발 과정에서 박막과 화학적 기계 연마(CMP) 분야 리더를 맡았다. 2006년엔 세계 최초 60나노급 DDR2 미세공정과 200940나노급 DDR3 미세공정 개발에 참여했다.

2012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했을 때 곽노정은 상무보로 승진해 D램 공정3팀장을 맡았다. 그리고 이듬해엔 미래기술연구원에서 공정기술그룹장을 맡아 16나노 미세공정과 20나노 미세공정 기술 연구를 주도했다.

2015년부터 제조·기술 부서로 옮겨 D&T기술그룹장, 청주M15공장장 지냈고, 2019년부터 제조·기술담당을 맡아 D램과 낸드 수율과 양산 품질을 끌어올리고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회사 내에서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은 곽노정은 2021년 최고의 실적을 구가했던 전임 이석희 사장에 빗대 포스트 이석희로 불렸다. 이런 상황에서 곽노정의 CEO 발탁은 따 논 당상이었다.

반도체 R&D·공정·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 노하우를 가진 곽노정은 예상대로 2022년 이석희 사장을 대신해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SK하이닉스의 238단 낸드플래시.
SK하이닉스의 238단 낸드플래시.

 

차세대 HBM3E 양산엔 한발 앞선 기술력

 

곽노정 SK하이닉스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아무래도 AI 관련 반도체 개발과 생산에 모아진다.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와 함께 인공지능(AI)를 지원하는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곽노정 대표는 현재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인공지능) 산업에서 HBMAI 서버에 국한된 것을 뛰어넘어 AI와 관련된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대폭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이다. HBM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에 이어 4세대(HBM3) 제품이 공급되고 있으며, 내년부터 5세대(HBM3E) 양산을 앞두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차세대형 HBM3E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3D램 기업인 SK하이닉스를 비롯하여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이 모두 5세대인 HBM3E 개발을 완료하고 샘플 공급을 시작하면서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한발 앞선 개발로 승부를 걸고 있어 주목된다. 물론 6세대 HBMHBM4 개발에도 이미 착수했다.

또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반도체도 그동안의 범용 제품 중심 생산에서 벗어나 고객사 개별 수요에 특화된 고객맞춤형 메모리를 생산하겠다고 말했다. 고객별로 다양해지는 요구를 만족시키는 SK하이닉스만의 시그니처 메모리만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하는 곽 대표는 이미 메모리 내부에 연산 기능을 더하는 PIM(메모리내부연산)기술과 시스템 교체 없이 램 용량을 손쉽게 늘려주는 모듈화 인터페이스 CXL기술에 신경쓰고 있다.

아울러 곽노정 대표는 경기도 용인에 건설되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SK하이닉스가 122조 원을 투자한 반도체 허브와 삼성전자가 360조 원을 투자하는 삼성 시스템 반도체 특화 단지가 만들어질 예정인데, 480조 원의 생산유발효과, 192만 명의 직·간접 고용효과가 추정된다. 이러한 용인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오산, 화성, 평택 등 기존의 반도체 생산 단지와 성남 판교가 연계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될 전망이다.

또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초기술 3가지 방향으로 ‘ETA’를 제시했다. 곽 대표이사는 인기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 ‘ETA’에 빗대 이 용어를 만들었다. ‘ETA’Environment(환경)Technology(첨단기술), Application(융복합 응용기술)에서 앞글자를 딴 용어다. 지구 곳곳에서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해결에 일조하는 것이 SK하이닉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곽 대표이사는 대용량·초고속·저전력 기반의 신뢰성 높은 제품을 만들고, 높게 쌓기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데이터 저장 방식을 TLC·QLC·PLC 등 다중 저장 방식으로 전환하는 기술도 대안으로 꼽고 있다.

사내에 두루 소통왕으로도 통하는 곽노정 대표. 그는 한국반도체협회 회장직을 지낼 만큼 사외와도 잘 통하는 CEO. 단독 대표이사로 올해를 힘차게 출발한 곽노정 대표는 어떤 성과로 SK하이닉스와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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