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인 아이디어로 출판 생태계를 바꾼 CEO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CEONEWS=조성일 기자] 책 안 읽던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면 형용모순의 말장난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엉뚱한 발상의 둥근 사각형같은 기업은 매출이면 매출, 이익이면 이익 모두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코스닥(KOSDAQ)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전자책에 구독경제콘셉트를 적용한 혁신 스타트업 밀리의서재가 그 주인공이다. 밀리의서재의 비즈니스 모델은 콜럼버스 달걀 세우기만큼이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도 실행할 수 없는 독특함에 기반한다. 문제적 기업밀리의서재는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전자책구독경제의 낯선 만남

요즘 책에 관심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밀리의서재쯤은 안다. 밀리의서재가 그만큼 독자들 곁으로 성큼 다가갔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리라. 하지만 이 밀리의서재가 이렇게 빨리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한 사람만 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그 과실을 따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밀리의서재 서영택 대표가 용기 있는 단 한 사람이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가 2023년 9월 12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열린 밀리 서재 IPO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소개를 하고 있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가 2023년 9월 12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열린 밀리 서재 IPO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소개를 하고 있다.

 

2016독서와 무제한 친해지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밀리의서재가 첫발을 내디뎠을 때 출판계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고가 지배적인 출판·독서 시장에 너무도 낯선 용어가 비즈니스 모델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밀리의서재의 비즈니스 모델의 키워드는 전자책구독경제이다. 전자책이 상당히 대중화 되었지만 주독자층이 여전히 물성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는 터라 여전히 종이책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이다. 그런데 전자책을 주로 파는 비즈니스 모델이란 점에서 출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할 수밖에. 이미 전자책 전문 판매서점이 등장해 나름대로 영업하고 있었지만 폭발적인 성장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리의서재는 기존 전자책 서점과 달랐다. 또 하나의 첨단무기가 장착됐다. 이른바 구독경제’.

구독경제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일정 금액의 구독료를 내면 지속적으로 물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형태를 말한다. 고전적인 구독 방식의 예는 신문 정기구독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필요할 때 가판에서 신문 한 부를 살 수도 있지만 한 달 치 구독료를 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문은 매일 아침 문 앞에 배달된다. 가격도 한 부씩 사는 것보다 정기구독하는 것이 훨씬 싸다.

바로 여기에 착안한 구독경제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월 단위의 이용액을 내는 것도 있을 테고, 일정액에 일정 횟수를 부여하는 방식도 있을 테고, . 아무튼 하나씩 개별로 이용하는 것 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속적으로 많은 것을 이용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좋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기업에게도 좋다. 시쳇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구독경제는 여러 분야로 확산 중이다.

 

밀리의서재 코스닥시장 상장기념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밀리의서재 코스닥시장 상장기념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내 독서플랫폼시장 점유율 1

구독경제라는 용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소비문화, 특히 문화 분야에서 열풍이란 말로 설명이 가능할 만큼 활성화 중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넷플릭스, 음원 서비스의 멜론 등이 우선 떠오르는 구독경제 플랫폼의 대표주자들인데, 출판시장에선 으레 밀리의서재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밀리의서재는 실구독자수가 약 60만 명에 이르고, 보유 콘텐츠(전자책) 수만도 16만여 권에 달한다. 2천 개 출판사와 제휴를 맺는 등 국내 독서플랫폼시장 점유율 63%를 차지할 만큼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밀리의서재의 지난해 3분기 영업실적이 2016년 창립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누적 매출 406억 원, 누적 영업이익 75억 원을 달성했던 것. 이 같은 데이터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각각 21%, 154% 증가한 수치다. 특히 매출의 증가는 두드러진다. 20231분기 매출 128억 원, 2분기 매출 131억 원에 이어 3분기에는 매출 146억 원을 기록했다.

20239월 기준 베스트셀러 확보율이 지난해 74%에서 77%로 상승하는 한편 최근 1개월 내 출간된 신간 확보율이 전년 대비 26% 증가한 40%를 기록했다. 이는 소극적이던 출판계가 적극적인 관계로의 변환을 가져왔음을 보여준다. 밀리의서재가 여느 서점과 똑같이 매출을 담보하는 주요한 상생 협력 파트너가 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출판사들과의 상생 관계 설정에는 콘텐츠가 좋으면 독자는 언제든 찾아온다는 고전적인 비즈니스 명제를 만족시켜 준다. 밀리의서재 고객의 월평균 유료전환율 37%, 월평균 재구독률 88%를 기록하고 있음이 이 같은 인기를 반증한다.

밀리의서재는 기본적인 전자책 구독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로 확산 중이다. 오디오북, 오디오 드라마, 챗북(채팅형 독서 콘텐츠), 도슨트북과 오브제북 등 다양한 도서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밀리의서재는 최근 구독형독서 플랫폼에서 참여형출간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밀리의서재가 직접 기획한 오리지널 작품을 통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검증하고, 20235월 출간 플랫폼 밀리로드를 론칭해 24000억 원 규모의 기존 출판시장과 1인 출판에도 뛰어들었다.

한편 밀리의서재는 제휴(B2BC) 및 기업(B2B) 서비스도 꾸준히 확장해 왔다. KT, LGU+, KT 이동통신망을 사용하는 알뜰폰 브랜드 등 이통사들 혐력하여 독자 확보에 나서고, 삼성전자 DS·DX 부문, LG전자, 현대차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여 대기업 전자도서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서영택 나이 쉰 넘어 창업한 스타트업

밀리의서재가 21세기 뉴노멀을 선도하는 구독경제를 비즈니스 모델로 채택하기까지는 창업자인 서영택 대표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밀리의서재가 스타트업인 데다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는 점에서 혹 독자들은 서영택 대표의 나이가 청년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항상 반전을 요구한다. 곧 예순을 바라보는 1966년생으로 올해 쉰여덟이다. 어찌 보면 두뇌가 무딜뻔한 나이임에도 그는 이렇게 섹시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할 수 있는 보기 드문 CEO이다.

서영택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이미 한 번 창업한 경험을 갖고 있다. 스물다섯 살 나이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ARS로 듣는 회사를 창업했다. 그때의 경험에 대해 서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단한 포부가 있었던 게 아니다. 어쩌다 보니 겉멋이 들어서. 솔직히 직장 다니기 싫어서 창업했으니까라고 밝힌 바 있다. 서 대표의 성격이 자유로운 영혼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화다.

하지만 그는 서 대표는 이 회사를 매각하고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마친 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컨설턴트로 변신한다. 여기서 수석팀장까지 지내던 서영택 대표는 돌연 귀국하였고, 2년간의 시행착오를 겪다 2012년 웅진씽크빅에 둥지를 튼다.

사실 서 대표는 언제 어디에 있든 자기 사업을 하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새로움을 추구하려 했다. 웅진씽크빅에서도 입사 1년 만에 업무를 바꾸어 신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여기서 서 대표는 시쳇말로 물 만난 물고기마냥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인다. 바로 웅진북클럽’.

웅진북클럽은 밀리의서재 비즈니스 모델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 일종의 구독경제였다. 2년 또는 3년 약정을 하고 매월 회비를 내면 책을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함께 제공되는 태블릿PC인 북패드를 통해 디지털 도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회원제 독서 프로그램이다.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서영택 밀리의서재 대표.

 

안 읽는 95% 사람들이 책과 친해지게

서영택 대표는 웅진북클럽에서 착안해 성인용 북클럽을 기획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밀리의서재이다. 서영택 대표가 나이 쉰이 넘어 스타트업에 도전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나이 든 창업이 성공할 확률도 높다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젊을 땐 잃을 게 적기도 하거니와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나이 먹으면 실패가 곧 끝이라는 절박감이 커서 창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서영택은 도전했다.

꿀 밀()자에 마을 리()자를 합해 회사 이름 밀리가 된 이 스타트업은 독서와 무제한 친해지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장에 명함을 내민다. 독서로 꿀이 흐르는 마을 생태계라는 뜻을 가진 밀리의서재는 처음 론칭에서 당시 인기 절정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톱스타 이병헌과 변요한을 광고모델로 캐스팅에 TV 광고에 나섰다. 얼마 안 되는 초기 투자비를 모두 쏟아부을 만큼 모험을 건 광고에 시장은 반응으로 화답했다.

기존의 독서 행태를 일거에 깨부수는 도발적인 광고 카피 읽어야만 독서인가요로 바뀌는 시장의 변화를 앞에서 이끌었다.

서 대표는 이미 바뀐 독서문화 앞에서 변하지 않고 망하든지, 변해서 살든지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물었다. 꼭 종이책을 읽어야만 독서인가. 책을 고르기만 하는 것도, 또 베스트셀러가 뭔지 검색하는 것도 다 독서의 범주가 아니겠는가. 이에 서 대표는 1년에 1권도 제대로 안 읽는 95% 사람들에게도 이런 욕구는 있다고 봤다. 그들이 바로 밀리의서재의 잠재 고객이라고 생각했다.

서영택 대표는 디지털 음원 초창기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서비스 품질이나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던 CD 이용자들이 점차 음원 차트에 안 오르면 앨범도 안 팔린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 대표는 출판시장의 흐름도 d와 비슷할 거라고 봤다. 종이책을 사면서도 온·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게 번거로워 전자책 플랫폼을 쓰는 이용자가 늘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매출로 돌아왔다.

이렇게 시장 론칭에 성공한 서영택 대표는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서비스를 출시한다. 김영하나 김중혁 같은 유명 저자의 신간 종이책을 두 달에 한 권씩 독점적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 역시 출판계의 고정관념을 깼음은 물론이다.

 

수평적 의미의 밀리다움이 기업문화

서영택 대표는 파격 그 자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저만치 앞서간다. 특히 밀리의서재에는 기업 하면 으레 있을 것 같은 것이 없다. 그의 방도, 결제도 없다. 서 대표의 사전엔 수직이란 낱말도 없다.

물론 서 대표는 기업문화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업문화는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서 대표는 회사가 스타트업에 머물지 않고 제대로 된 엔터프라이즈(기업)가 되려면 대표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업문화가 좋아서 회사가 잘 되는 게 아니라 회사가 잘 되면 좋은 기업문화가 선순환으로 자리 잡는다고 믿는다.

서 대표는 실패를 탓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비밀 없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생각도 과감하고 솔직하게 공유하며 수평적으로 일하는 밀리다움이 바로 밀리의서재의 기업문화이다.

출판 콘텐트 시장의 큰 변곡점으로 평가받는 밀리의서재는 이젠 책 많이 보는 사람도 구독을 한다. 사실 서비스 초기에는 다독가들이 찾는 책이 드물어서 그런 혹평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서영택 대표는 1년에 책 1권 읽는 사람 눈엔 소장 도서 5만을 다 읽으려면 5만 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비록 밀리의서재가 성공 신화를 쓰고 있음에도 서영택 대표는 출판시장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그런 원대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도 말한다.

서영택 대표는 밀리의서재 고객은 억만금을 주고도 못 바꾸는 시간이라는 가치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흔히 하는 교보문고와 단순 비교를 거부한다. 물론 고객과 서비스도 다르기 때문에 경쟁 관계도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대신 그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경쟁기업이라고 했다.

밀리의서재에 밀리의 이장이라는 닉네임으로 남은 날의 전부 휴가라는 이름의 서재를 만든 서영택 대표는 이장 추천도서로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의 말하기, 페트라 하르틀리프의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21권을 담아놓았다. 출판시장의 생태계를 바꾼 서영택 대표가 이끄는 밀리의서재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자못 그 미래가 궁금하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