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하성태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으로,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작년 1월 27일 시행됐다.

그러나 당시 50인 미만(건설업 경우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소규모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안전 관리 전문 인력 확보와 관련 비용 문제 등에 어려움이 커 2년의 준비 기간을 더 부여해 내년 1월 27일부터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예 기간 동안 고용노동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집중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내년 1월을 세 달여 앞둔 지난 10월 18일 경제6단체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이날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6단체 상근부회장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노사관계 안정과 기업경영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경제계 입장'을 채택했다. 또 이 같은 내용을 국회와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경제6단체는 입장문을 통해 "노동조합법 제2조·제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산업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이라며 "개정안의 입법 추진은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정안이 통과돼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쟁의행위가 발생한다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는 붕괴하고, 양질의 일자리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6단체는 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은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수 있도록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법 적용 시기를 2년 더 유예해야 한다"며 "경영자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합리적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경제6단체는 "노사관계 안정과 미래세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확립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개 단체 대표자들이 지난 6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개 단체 대표자들이 지난 6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이정식 장관 “시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국정감사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과 관련한 현안질의가 심각하게 다뤄졌다.

10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내년 1월로 예정된 중대재해처벌법 소규모 사업장 확대 적용과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저희도 고민 중"이라며 유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예정대로 시행할 계획이냐는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예고된 바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적용법 적용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경영계에서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추가 유예 요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정식 장관은 "국회 법 개정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지만 현장에서 노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저희들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83만 사업장 중 40만 사업장에 대해 예산이나 인력이나 준비가 부족한 데 대해서 지원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현장 노사의견을 들어보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하는 방법, 실효적인 안전관리 대책을 만드는 방법, 전문인력을 내실화하는 방법을 함께 가져가야 재해를 예방하면서 법을 개선하는 논의도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식 장관은 현 정부 들어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민주당 우원식 의원 질의에 "어떤 정부가 노동자가 죽고 다치게 하는 것을 방치하겠느냐"며 "중대재해법 시행령 연구용역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연구용역을 거쳐 기업 최고안전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자는 취지의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방안을 노동부에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연구용역이 전 정권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중대재해 발생 이후 내려지는 작업중지명령 유지 기간이 올해 들어 반토막 났다는 지적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산안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작업 중지요건과 범위들을 대폭 줄여놨다"고 말했다.

우 의원이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상생·협력의 노사관계를 만들겠다는 이 장관 취임사를 거론하며 장관직 사퇴를 촉구하자 이 장관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양심이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안 죽고 안 다치게 하겠다는 게 1차 목표"라고 밝혔다.

 

노동계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 반발

 

이에 대한 노동계의 반대 역시 극렬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소규모 사업장 확대 적용을 앞두고 추가 유예 가능성이 제기되자 민주노총이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10월 16일 국회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등과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쳐온 윤석열 정권이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연기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에 나섰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즉시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민노총은 "중대재해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10년간 사망한 노동자는 1만2,045명에 달한다"며 "또다시 적용 연기를 추진하는 것은 죽고 또 죽는 '죽음의 일터'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올해 들어 2분기까지 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사고 희생자 289명의 62%인 179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연간 사고사망자 874명의 무려 81%인 707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였던 것이다. 규모별로 보면 사고사망자 중 50인 미만 사업장 비중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81% 수준으로 동일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고 책임자 처벌을 확대·강화하라"며 유예 연장 저지를 위한 10만 명 서명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적용에 대한 노사간 입장차가 큰 만큼 유예에 대한 향방이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