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CEONEWS=김병조 기자] 롯데그룹은 유난히 형제간의 불화가 많은 기업이다. 창업자 신격호와 바로 밑의 남동생 신철호(전 롯데화학공업 대표)의 사이가 나빴고, 둘째 남동생인 농심 창업자 신춘호와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사실상 원수지간으로 지냈다. 신격호는 19살이나 차이가 나는 넷째 동생 신준호(푸르밀 전 회장)와도 부동산을 두고 법정 다툼까지 벌일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신격호의 형제자매가 10남매(55)였는데, 남자 형제들 모두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신격호의 두 아들, 신동주와 신동빈도 경영권 다툼으로 소비자들에게 험한 꼴을 보였다. 형제지간에도 이러한데 사촌지간은 어떨까?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

롯데농심’, 앙숙의 역사

장남 신격호와 3남 신춘호는 8살 터울이다. 일본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신격호는 바로 밑의 동생인 신철호를 내세워 1958년 국내에 롯데화학공업을 설립해 롯데껌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동생 신철호가 공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되면서 롯데화학공업은 해산되고 만다.

바로 밑의 동생 신철호와 사이가 비틀어지자 신격호는 둘째 동생 신춘호를 사업에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자신이 반대하는 라면사업을 동생 신춘호가 고집을 피우고, 끝내 신춘호가 1965년 롯데공업을 설립해 라면사업에 진출하자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신격호는 동생이 설립한 롯데공업 상호에서 롯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신춘호가 회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면서 둘 사이의 앙금은 심해졌다.

그래도 초기에는 서로가 생산하는 품목을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농심이 1971년 새우깡을 출시하면서 제과 사업에 뛰어들어 제과가 주력사업인 롯데를 자극했고, 롯데도 2010년에 롯데쇼핑이 PB상품인 롯데라면을 출시해 라면시장에서 농심과 경쟁 관계가 되면서 둘은 되돌릴 수 없는 앙숙이 되고 만다.

롯데라면은 팔도에서 생산해 판매는 롯데쇼핑에서 담당했고, 롯데 계열사에 한해서 판매하긴 하지만 백화점, 마트, 슈퍼, 편의점, 인터넷쇼핑몰 등등 유통업종에선 거의 모든 분야에 진출해있다. 그런가 하면 농심은 새우깡으로 시작해 최근의 먹태깡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며 대한민국 스낵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다.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라’, 자식들의 선택은?

신격호와 신동빈 부자
신격호와 신동빈 부자

 

신격호와 신춘호는 죽을 때까지 원수지간보다 못한 형제였다. 신격호와 신춘호 형제는 그들의 선친 제사도 따로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 범 롯데가의 왕회장이자 장남인 신격호가 죽었을 때도 동생 신춘호는 빈소를 찾지 않았다.

그랬던 신춘호가 2021년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이 가족 간에 우애하라였다. 자신과 형 신격호 간의 불화가 천추의 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언이 있기 전에도 그런 뜻을 내비쳤는지는 모르지만, 신격호가 죽었을 때 본인 신춘호는 문상을 가지 않아도 아들 신동원은 빈소를 찾아 삼촌 신격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리고 신격호의 두 아들, 신동주와 신동빈도 작은 삼촌 신춘호가 죽었을 때 일본에 체류 중이었는데 코로나19로 조문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란히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신춘호와 신동원 부자
신춘호와 신동원 부자

사촌이 논을 사도 배 아프지 않는 관계가 되길

신격호의 둘째 아들로 현재 롯데그룹 회장인 신동빈은 1955년생이고, 신춘호의 아들로 현재 농심그룹의 회장인 신동원은 1958년생이다. 나이는 3살 차이다. 롯데 신동빈은 2011년부터 한국 롯데그룹 회장을 맡았고, 신격호가 죽은 2017년부터는 일본을 포함한 전체 롯데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농심 신동원은 2021년 아버지가 죽으면서부터 농심그룹 회장을 맡았다.

롯데그룹과 농심그룹은 회사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718,046억원으로 대한민국 재계 서열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농심그룹은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31,291억원으로 롯데그룹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사업적으로 사촌지간에 경쟁을 한다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다행히 신동빈과 신동원은 아버지들과는 달리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목 모임을 함께 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적으로도 지난해 4월 잠실 롯데월드몰에 비건 레스토랑 베지가든을 오픈한 것도 사촌지간에는 앙금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아버지들 시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격호와 신춘호는 우리나라 식품산업을 만들어 낸 1세대다. 그들이 사업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사업 외적으로는 좋지 못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이제 아버지가 남겨 놓은 그늘을 걷어낼 책무가 그들의 자식들에게 있다. 두 사람에게서 사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청출어람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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