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했던 ‘7남매’ 중 장남
역대 최장수 총리...사이다 발언 눈길 끌어

이낙연 전 총리(사진=연합뉴스)
이낙연 전 총리(사진=연합뉴스)

[CEONEWS=최재혁 기자] 1년간의 미국 체류 중이던 이낙연 전 총리는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귀국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와 치른 대선 경선에서 패배 후 숨을 고른 뒤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 것이다. 야권에서 거의 유일한 차기 대선 후보인 이재명 대표에 맞설 대항마 ‘이낙연’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난 정권의 유령 ‘이낙연’이 될 것인가. 그의 정치 행보가 주목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7남매’ 중 장남

이낙연 전 총리는 1952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가 총명함을 알아보고 가난한 부모님을 설득하여 중학교부터 광주로 보냈다.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농사일과 채소장사를 하며 뒷바라지를 했고, 광주북성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45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하숙비를 못 내 친구네, 선배네 자취방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당시 키가 170cm 후반인데 몸무게가 50kg밖에 안 됐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대학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 31개월 카투사로 복무, 만기 전역했고, 전역 후 가정 형편상 사법시험을 공부할 처지가 되지 않아 바로 한국투자신탁에 취업했다가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했다.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2000년 정계로 진출할 때까지 21년간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동아일보에서는 정치부 기자로, 이후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을 지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던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알게 되어 친분을 쌓게 되었고, 결국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5선 대변인’...소신파 정치인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대변인을 맡았다. 그러나 2003년 범 친노계 정치인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발의자 명단에는 올랐지만,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졌으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원내대표로 선출된 그는,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장성군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선서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로 민주당이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당선되는 등 고향인 전라남도 영광군 쪽 지역구에서 4선 의원을 했다. 민주당에서 5번이나 대변인을 맡아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제37대 전라남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100원 택시’와 ‘찾아가는 영화관’ 서비스 등 이색 공약을 내걸어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역대 최장수 총리...사이다 발언 눈길 끌어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일했다.

국무총리에 내정된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통합'을 위해 호남을 배려하고 온건 비문 계열에 가까운 인사인 이낙연을 등용해서 화합형 인사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대부분이었다.

발탁 당시만 해도 '호남에 대한 배려'로 임명된 인사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취임 이후에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국무총리로서 거침 없는 행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인 바로 '사이다 답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의 주장을 존중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사이다 답변을 내놓으며 야당의 파상공세를 되받아치는 여유와 경륜을 보여주면서 '품격 있는 수비수'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국민, 그리고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와 부단히 소통할 것”이라고 취임식에서 했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그리고 과잉 의전 논란으로 빈축을 샀던 전임 총리와 달리 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과의 소통과 함께 언론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고, 라디오 프로그램, TV 뉴스 생방송 등 형식을 가리지 않고 출연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현안을 직접 설명하는 총리로 남았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책임 총리'를 공언한 만큼, 기존의 '대독 총리', '의전 총리'를 넘어 각종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중량감 있는 목소리를 냈다. 

오랜 기자 생활과 풍부한 정치 경력과 행정 운영 경험이 어우러져 각 현안의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내각에 강한 '그립'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 역시 정례 독대를 통해 이 총리에게 힘을 싣기도 했다.

이에 이낙연 전 총리는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수식어와 ‘역대 최고의 총리’라는 평가도 가득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에 탑승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에 탑승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차기 대권 주자였지만, 결국 좌절

국무총리 퇴임 후 2021년 연초의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와 2021년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평가받았다.

2018년 초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에서 13%로 이재명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했으며 2019년 6월 리얼미터의 차기대권 지지도 조사에서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을 1.2% 앞서 다른 범여권 예비주자들에게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등 점차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치가 뚜렷했다. 

2020년 4월 뉴스1이 엠브레인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30%를 돌파하며 1위 자리를 더욱 확실히 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대의원 투표(45%)와 권리당원 투표(40%), 국민 여론조사(10%), 당원 여론조사(5%) 합산을 통해 당 대표를 선출하며 2020년 8월 29일, 이낙연 후보는 60.77%의 득표로 신임 당대표에 선출되며 이 전 총리의 대권행까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10월 10일 당 경선 2위가 확정되고, 1위의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결선투표가 진행되지 않고 끝나며 대선후보직이 좌절됐다.

이 전 총리의 가장 아쉬운 점은 ‘확실한 지지층’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같이 일명 ‘콘크리트 지지층’이 없다 보니, 당선까지 확실한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이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뛰어난 장악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이재명 대표를 꼽았다는 전문가들의 당시 의견이다.

이낙연 전 총리는 귀국한 직후 "저의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과연 그의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귀추가 주목된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