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내 상대적 열등생...명문 관료 집안 출신
외무·방위대신 맡으며 실질적 내각 지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CEONEWS=최재혁 기자] 대한민국과 일본의 셔틀 외교가 6년 만에 재개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서로 더 가까워질 것을 약속하고, 서로 도울 일이 뭔지를 파악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이러한 윤 대통령의 판단에 폭발적인 불만을 터트렸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될 듯하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할 인물은 일본을 이끄는 기시다 총리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집안 내 상대적 열등생...명문 관료 집안 출신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95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출생했으며, 본적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히지야마초다. 

기시다 총리의 가문은 히로시마를 기반으로 3대째 정치가를 배출해온 명문이다. 할아버지 마사키(正記)는 만주에서 백화점 경영, 부동산 사업 등으로 큰 부를 쌓아 이를 기반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는 통상산업성 관료, 정치인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통산성 관료였던 아버지가 뉴욕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관계로 뉴욕에 거주하며 공립학교에 다녔다.

귀국 후 치요다구립 나가타초 초등학교의 3학년에 편입, 치요다구립 고지마치 중학교를 거쳐서 카이세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쿄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삼수까지 했지만 결국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기시다 총리의 집안에는 관료가 많았고 이들 전원이 도쿄대학 출신이다.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통상산업성 관료, 중의원), 삼촌 기시다 슌스케(대장성 관료, 히로시마은행 회장), 고모부 미야자와 히로시(자치성 관료, 참의원), 고종사촌 미야자와 요이치(대장성 관료, 참의원)에 더해, 매제인 기무라 요시히데(재무성 관료)와 가베 데쓰오(재무성 관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기시다 총리는 열등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삼수 출신에 와세다 출신이라 애초에 일류 관청엔 들어가기 힘들었다. 당시 와세다나 게이오의 졸업생은 대부분 기업에 들어갔고 관료가 된 인원은 별로 없다. 기시다 역시 도쿄대에 진학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걷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걷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고이즈미·아베 강력 신임받아

기시다 총리의 정치 인생 첫 출발은 1987년 아버지인 중의원 기시다 후미타케의 비서였다. 

이후 1992년 아버지가 65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이듬해인 1993년 치러진 제40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아버지의 지역구인 (구) 히로시마현 제1구에서 자유민주당 공인으로 출마했고, 첫 당선되었다. 또한 아버지와 같은 굉지회 소속이 됐다.

1996년 펼쳐진 제41회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소선거구제 개편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소선거구 히로시마현 제1구에서 출마했고 이후 모든 선거에서 당선됐다.

제1차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문부과학성 부대신에 임명됐고, 제1차 아베 신조 개조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에 임명되어 계속 입각했다. 

아울러 소비자 행정 추진 담당 대신, 우주 개발 담당 장관에도 임명되고 한때는 최대 6개의 장관 자리를 겸임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1구에서 민주당의 스게카와 히로시를 꺾고 선출됐다.

2011년 9월 자민당 총재 다니가키 사다카즈에 의해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하여 2012년 9월까지 역임했다.

2012년 10월 정계 은퇴를 표명한 고가 마코토로부터 굉지회 회장직을 계승,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파벌 통칭이 기시다파로 바뀌었다. 그 해 12월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 1구에서 7선거했고 선출됐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더불어 핵심 내각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의 시작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외무상을 맡았으며 2017년 8월 3일 개각 및 당직개편에서는 핵심당직인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으로 전보됐다.

아베가 밀어주는 포스트 아베의 대표주자로 2017년 들어 이시바 시게루를 제치고 사실상 차기 자민당 총재로 유력시 되는 상황이었다. 

내각이나 당직에 기시다파가 포진해있다. 기시다와 같이 차기주자로 불리우는 이시바 시게루나 노다 세이코는 아베 총리와 매우 심한 대립각을 세우지만 기시다 후미오와 기시다파 의원들은 아베 정권과 아베 총리에 매우 협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만 위 두 인물에 비해 대중의 지지가 부족한건 약점. 그러나 의원내각제와 자유민주당 일당우위제가 결합된 일본의 정당정치에서는 대중의 지지보다 자유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므로, 자신의 파벌을 기본으로 한 상태에서 호소다파의 지지까지 끌어모을 경우 상당히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외무·방위대신 맡으며 실질적 내각 지휘

선거 후에 출범한 제2차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입각하면서 제2차 아베 개조 내각에서 유임했다. 2014년 12월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8선거 후에 제3차 아베 내각에서도 연임 자민당 총재 선거 후의 2015년 10월에 출범한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에서도 외상을 유임했다.

2016년 4월 현지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장관 회의의 의장을 맡아 다른 G7장관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을 찾은 뒤 원폭 사망자 위령비에 헌화하였다. 그 해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방문했다. 

참의원 선거 후 그 해 8월에 출범한 제3차 아베 제2차 개조 내각에서도 유임한다. 2017년 8월 3일 외무대신에서 물러났다.

2017년 7월 29일에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남수단에 파견된 육상자위대의 교전기록을 은폐한 것이 들통나 자진 사퇴하면서 외무상과 함께 방위상 직책도 임시로 겸직하게 됐다.

이후 오노데라 이쓰노리 중의원이 후임 방위대신으로 임명되면서 겸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2019년 12월 19일 자기 파벌의 모치즈키 요시오 의원이 병사하자 기시다 후미오 정무조사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오랫동안 행동을 같이한 동료 파벌의 사무 총장으로, 저를 지지해 준 정치 동지이자 둘도 없는 존재였다. 슬픈 심정이다. 높은 뜻을 제대로 이어 받아 노력해 공적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0년 8월 28일, 아베 신조가 총리 사임 의사를 밝힌 이후 곧 치러질 총재 선거에 나설 의욕을 보였고, 이후에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따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 이어서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한 두번째 인물이 됐다.

9월에는 책 출판을 가짐으로 총리 포석을 다지는 중이다. 9월 1일에 공식 출마 선언했다. 그리고 2위로 낙선했다.

2021년 상반기 열린 보궐선거에서 자민당 히로시마현연합 회장 자격으로 참의원 히로시마현 재선거 승리를 위해 니시다 히데노리 후보와 함께 적극적으로 유세에 나섰으나, 호헌파 야권 단일후보인 미야구치 하루코에게 접전 끝에 패하면서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패배 이후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뇌물 문제와 관련해 현민들의 분노가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을 위해 전용기로 향하기 앞서 환송 인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을 위해 전용기로 향하기 앞서 환송 인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예상 깨고 100·101대 총리 맡아

2021년 8월 26일, 이전해에 이어 다시 한번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과 올림픽 개최로 민심을 크게 잃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강력한 대항마로 평가받았고, 스가 총리가 9월 3일에 아예 총재직 연임 도전을 공식 포기하면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2021년 9월 29일 이루어진 자민당 총재 선거 투·개표 중 1차 선거에서 전체 764표 중 256표를 얻어 예상을 깨고 255표를 얻은 고노 다로를 제치고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이미 이 시점에 선거 승리가 거의 확정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는 최종 결선 투표에서 257표를 얻어 170표를 얻은 고노 다로를 제치고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었다. 1차 선거 중 당원 투표 결과에 따라 배분된 도도부현 표에서는 참패했지만, 중·참 양원 의원들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1차 투표와 2차 투표 모두 당원 투표에서는 고노가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국회의원들의 투표 결과 때문에 기시다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왔다. 한편 선거 과정에서 아베 신조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돼 그의 상왕 정치라는 의견이 많다,

더불어 2021년 10월 31일 실시된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약 30일만에 10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기시다 총리는 올해 신년사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는 총리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과연 일본이 제국주의로 회귀하며 ‘자국 우선주의’라는 거대한 늪에 빠질 것인지, 대한민국 시민이 두 눈 부릅뜨고 똑똑히 바라보지 않을까.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