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박세영 기자]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이 있다. 그날 저녁이 딱 그랬다.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젠 쉬어야지’ 하는 순간 어디선가 꾸르륵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뭐지?” 하는 새 물이 거실로 진격해 왔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실 기술부서에 전화할 생각이 미쳤고, 관리기사가 오더니 외부 수도관을 얼른 잠그고 들어온다. 그러고선 멍하니 쳐다만 본다. 경황이 없었으나 가족 누군가 “새 양말을 드릴 테니 물이 왜 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순식간에 거실의 절반이 물에 점령됐다. 거의 물바다가 된 것이다.

가장의 위기 대응 능력이 빠르게 또 숨 가쁘게 진행됐다. 마른걸레를 찾아 바닥의 물을 닦고 세숫대야에 걸레를 짜며 물을 줄여나간다. 순발력에 감탄할 새도 없이 다른 가족이 따라서 걸레질을 해댔다. 아이들도 스스로 양동이를 찾아들고 뒤에서 더 이상 번지는 걸 막으며 알아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넘치는 물이 잦아들자 “원인은 지금 알 수 없으니 내일 외부업체가 와서 진단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며 관리 기사는 떠났다. “밤에 혹시 또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하라며 아파트 전체에 방송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남기고. 땀방울과 물방울이 혼연일체가 된 가족 모두 애쓴 덕분에 겨우 물기를 없앴다. 신문을 펼쳐 습기를 제거하자는 아들의 또 다른 제안에 가족 모두 신문을 널어놓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낮에 딸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볼까 하다가 더 급한 일에 밀려 영화 보기를 그만둔 날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중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4월 25일 현재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집계로 누적 관객 수가 495만명을 넘었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우연히 재난을 불러일으키는 문을 열어버린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터지는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판타지적 일상을 다루면서 무료한 삶을 잊게 해 주는 영상미와 이에 호응하는 OST가 멋지다고 알려져 있다.

신카이 감독의 국내 팬덤 중 하나인 딸의 설명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이나 전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재난을 다루고 평범한 삶을 살던 남녀가 특별한 사건을 만나 특별한 인연이 된다는 이야기를 즐겨 다룬다고 한다. 이 영화 이외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신카이 감독의 ‘재난 3부작’으로 불리는 이유다. 더러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지를 발휘하고 협력을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딸은 이 감독의 영화를 통해 인간승리 즉 역경을 이기는 인간의 잠재력과 능력 또는 세상을 품는 마음을 느낀다고 한다.

뜬금없이 웬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이야기냐고 반문할 것이다. 아파트에서 물난리라니! 평생 처음 당하는 일이다. 그 황당함이란? 재난에 상식적이며 현명한 판단을 하기란 어렵다.

4월 16일 저녁 TV 영상에선 강릉산불 이재민이 체육관에서 텐트를 치고 집단으로 생활하는 장면이 나왔다. 얼마나 황망하고 경황이 없었을까. 다행히 강릉산불 피해복구를 위해 아산사회복지재단,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성금을 내놨다. 신속한 복구에 마음을 보태고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지상정이다.

재난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발생했다면 정확한 상황 판단, 신속한 진단, 적확한 대책으로 발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최상임을 경험했다.

지금 젊은 세대가 ‘스즈메의 문단속’에 빠져드는 것도 그들의 내면엔 기성세대와 함께 위기에 대응하고 싶은 욕구의 우회적 표출임에 틀림없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파편화한 성향이 강하다고 넘겨짚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위기일 땐 함께 해결하려는 공동체적인 사명감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재난을 기성세대와 맞잡고 잘 해결하며 인정받아 공동체의 한 뿌리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강릉산불 이재민 문제도 일선 담당자의 정확한 상황 판단과 지자체 행정부의 신속한 진단 그리고 정부 부처와의 적확한 대책을 요구한다. 이재민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하루속히 돌려줘야 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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