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CEO 추모-회장님! 그립습니다] LG그룹 3대 회장 화담 구본무 편

LG는 고 화담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19년 5월 20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고 밝혔다. (사진=LG그룹)
LG는 고 화담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19년 5월 20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고 밝혔다. (사진=LG그룹)

 

 

[CEONEWS=박세영 기자]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논어(論語)ㆍ위정(爲政)〉는 말씀은 언제나 신선한 향기가 있다. CEONEWS는 연중기획으로 ‘레전드 CEO 추모-회장님! 그립습니다’ 시리즈를 내보낸다. 1세대 창업주 등의 업적을 되돌아보고 그들의 기일에 맞춰 삶을 역추적해 싣고 생생한 기업가 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기업가 정신에서도 온고지신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화담(和談) 구본무 LG그룹 3대 회장을 만나보기로 한다. 그의 기일은 5월 20일이다. 2018년 별세했으니 올해 5주기다. 레전드 CEO 추모 시리즈 ‘회장님! 그립습니다’ 기획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할 거라면 차라리 2등을 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의 특권으로 기존의 틀을 넘어 세상을 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구본무 회장은 LG그룹 회장에 오르기 전인 1990년 프로야구 LG트윈스 창단과 함께 구단주에 올랐다. 그는 MBC 청룡을 인수해 야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스포츠계에서는 구 회장을 ‘야구마니아’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선수들의 연봉 상한선을 없애고 여자야구를 후원하는 등 야구 발전에 공헌했다. 구 회장은 경영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고 한국 야구 발전에도 남다른 족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본무 LG 회장은 2006년 신년사를 통해 “고객의 감성을 사로잡는 디자인을 통해 LG가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디자인경영이 경영의 새 이정표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국가든 기업이든 최고결정권자의 선택은 중요한 의미를 띈다. 대통령의 선언 하나가 한 나라의 새로운 추진 방향이 되듯 한 기업에서 최고경영자의 특별한 좌표 설정도 그 못지않다. 기업의 실권자로서의 무한책임과 절대적 권한을 생각하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본무 회장의 디자인경영 선언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구 회장은 2006년 4월 4일 LG전자의 디자인 싱크탱크인 서울 역삼동의 디자인경영센터(현재는 양재동)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휴대폰, LCD TV, PDP TV, 모니터 등 디스플레이 제품의 두께, 버튼 조작감 등 세세한 부분과 냉장고, 세탁기 등의 내부 공간까지 일일이 살피며 디자인의 의미를 캐물어 관련 직원들을 진땀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발 중인 휴대폰 신제품의 디자인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며 무엇보다 고객 입장에서 더 사용하기 편리하고 고객의 감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디자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며칠 후 논현동 LG화학 인테리어 디자인센터를 방문해 화학제품 분야의 디자인 현장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고객의 감성을 사로잡고 사용 편의성을 극대화시킨 디자인이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해오던 개별 제품 위주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고객의 생활공간 전반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총체적인 디자인에 힘을 쏟아달라.”고 당부했다고 알려졌다. 구 회장의 발언 속에서 두드러지는 표현이 있다. ‘고객의 감성’과 ‘생활공간 전반에 새로운 가치 제공’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런 개념은 현대적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콘셉트가 되기도 하지만 이후 LG 제품 디자인에서 구체적인 주제로 발전하게 된다. 구 회장이 직접 도면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소비자 중심으로 사고하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 자신부터 디자인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는 점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대목이다.

디자인을 받쳐주는 기술 분야에 대한 독려가 뒤따랐다. 구 회장은 2006년 3월 말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서 “연구원들의 R&D 활동에 고객을 향한 혼을 담아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며 제품 개발에 있어서 디자인과 기술력이 쌍두마차가 될 것을 강조했다.

이후 2006년 6월 15일에는 김쌍수 부회장과 사업본부별 최고경영자(CEO), 전체 디자이너들이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 모인 가운데 공식적인 ‘다지인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디자인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Design First'라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Design First'란 지금까지 주로 기술에 맞췄던 디자인에서 탈피해 개발 초기부터 디자인을 최우선하면서 상품기획과 설계,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을 일컫는다.

LG는 이를 위해 ‘감동과 신뢰를 디자인 한다’를 목표로 콘셉트, 스타일, 사용성(Interface), 마무리(Finishing)를 4대 디자인 핵심 역량으로 선정했다. LG 디자인경영의 큰 방향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LG는 국내 최초로 산업 디자이너를 정식 채용하고 조직 내에 디자인과를 둔 기업이었다.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인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할 때 디자이너를 뽑아 참여시켰다. 1960년에는 별도로 디자인과를 신설했다. 그 후 1970년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독립 디자인 부서를 설립했고, 이어 1983년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 1995년 LG전자 디자인종합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해 왔다. 2002년 설립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전신인 셈이다.

또 해외에서도 1991년 아일랜드 디자인센터를 시작으로 1995년 미국, 일본 디자인센터, 1998년 중국 디자인센터, 2002년 이탈리아, 인도 등지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해 디자인의 글로벌화를 다져왔다.

구 회장은 디자인경영 선포를 통해 LG의 잠자던 디자인 감각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LG는 디자인경영의 활성화를 위해 디자인 조직의 변화를 추진했다. LG전자는 제품 개발 초기단계부터 디자인을 주축으로 상품기획, 설계, 마케팅 등 관련 부서가 협업팀을 구성해 운영하도록 했다. ‘선 디자인, 후 기술 개발’의 채택이 눈에 띈다. 이전의 방식인 기술에 맞춘 디자인에서 탈피해 디자이너가 먼저 콘셉트를 도출한 후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즉 고객이 원하는 가치에 먼저 집중해 수시로 바뀌는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언제든 적극 대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는 제품 개발 방식의 개념을 뒤집은 LG 디자인경영의 핵심 사안 중 하나다.

LG화학은 기존의 자체 디자인센터를 확충해 2006년 서울 논현동에 242㎡(약 800평) 규모의 인테리어 토털 전시장인 ‘LG화학 인테리어 디자인센터’를 개관했다. LG화학에서 생산하는 창호, 바닥재, 벽지 등 각종 인테리어 자재를 전시하고 이곳을 고객의 소리를 듣는 창구로 활용해 제품 디자인에 즉각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별도의 공간에 위치했던 LG화학 디자인연구소를 같은 공간으로 옮겼다.

LG생활건강은 디자인센터 조직을 ‘창조’ 중심으로 바꾸고 고객의 의견을 반영하는 디자인 창출을 목표로 시스템 전환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들의 개발 및 관리 업무를 과감히 축소,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잠재된 고객 니즈를 발굴하는 창조적 활동에만 역량을 집중하도록 업무를 조정했다는 것이다.

구 회장의 디자인 경영에 대한 의지는 LG만의 독특한 ‘LG디자인협의회’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2007년 7월 출범한 LG디자인협의회는 디자인 부문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 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등 3개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연합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미래의 주거공간 디자인 트렌드와 표면소재 디자인을 공동으로 분석 연구해 이를 TV,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 제품과 벽지, 바닥재 등 인테리어 제품, 화장품 등 생활용품 디자인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08년에는 ‘LG디자인 유나이티드 존’이란 특별한 공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시설이며 주거공간과 조화를 이룬 일관된 콘셉트의 디자인을 가전제품과 인테리어 자재, 생활용품 등에 적용해 새로운 주거공간을 시험해 보는 곳이다.

LG는 또 자신만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을 다듬었다. 그룹 차원에서 선정한 4대 디자인 핵심 역량(콘셉트, 스타일, 사용성, 마무리)의 구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시행 방안이다.

‘선 디자인, 후 기술 개발’ 방식을 통해 다른 회사와 차별되는 혁신적 디자인, 제품 품질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편의성과 감성까지 고려한 프리미엄 디자인, 신개념의 제품을 제안하는 미래 선도형 디자인을 창조한다는 시나리오를 그렸다.

상품 기획부터 설계, 마케팅, 나아가 기업의 경영철학과 기업정신을 시각화해 제품의 광고, 홍보, 매장 디스플레이,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활용하기로 했다.

구 회장이 디자인 챙기기에 열심이다 보니 직접 아이디어를 낸 적도 있다. 2006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했을 때 버튼 크기를 크게 하는 등 중장년층 고객의 사용 편의성을 높인 휴대전화 디자인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LG휴대폰 중 스테디셀러가 된 ‘3040폰’인 일명 와인폰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구본무 LG그룹 3대 회장. (사진=LG그룹)
구본무 LG그룹 3대 회장. (사진=LG그룹)

 

구본무 회장은 2008년 3월에 열린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서 “휴대전화 개발할 때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의 손가락 크기까지 모두 고려해 디자인해야 한다.”고 연구원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의 키패트 하나도 R&D 단계부터 고객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큰 방향에서 성공하자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다루려는 구 회장의 의자가 읽혀지는 대목이라 하겠다.

구 회장은 2008년 여름 ‘LG디자인협의회’ 운영 1년의 성과를 직접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LG화학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표면소재 분야에서 개발한 신제품을 LG전자의 냉장고나 에어컨,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용기 등에도 적용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전자와 화학, 화장품 각 분야의 특징을 교차시키는 유례가 없는 디자인 협업을 언급한 것이다. 실제 LG화학이 만든 특수수지, 디스플레이 소재는 전자제품 개발에 활용되고 있으며, 전자의 LED 기술은 화장품 용기의 디자인에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들도 디자인경영 현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2008년 4월 1분기 실적설명회에서 ‘2010년 글로벌 톱3’ 달성을 위한 6대 전략 방향 중 하나로 ‘기술혁신과 디자인 차별화’를 꼽으며 “고객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초콜릿폰, 샤인폰, 아트 디오스 등과 같이 디자인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은 “LG생활건강의 혁신 전략은 바로 디자인이며, 고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창의적 디자인이 핵심 역량이 되도록 할 것”이라며 “다자인의 핵심인 창조적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조직문화를 바꿔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본무 회장은 2009년 5월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LG가 선전하는 이유는 LG만의 차별화된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들이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혁신적인 디자인 역량 확보를 위해 ‘자율과 창의’가 분출되는 살아있는 조직의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제도와 프로세스를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혼을 불어넣어 제품 완성도를 끊임없이 높여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LG의 디자인경영과 관련해 구본무 회장의 행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띈다. 구 회장이 2005~2006년 적자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다른 데서 찾거나 실패한 담당자를 문책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구 회장의 디자인경영 선언은 돋보이는 리더십임에 틀림없다.

이후 LG는 ‘모든 플라워’ 양문형 냉장고, 프리미엄 냉장고 ‘디오스 모노블랙’ 등이 히트를 쳤다. 메뉴 화면을 현지 부족어로 표시하는 TV를 출시하고 중동형 광파오븐을 내놓기도 했다. 드럼세탁기 ‘빅인’은 영국 소비자단체가 발행하는 잡지 ‘휘치’의 2010년 신제품 성능 평가에서 1위로 선정됐다.

참고자료

1. ‘LG 구본무, 미래 변화를 주도하라!’, 김래주 지음, 2010, 이레미디어

 

LG는 고 화담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19년 5월 20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LG그룹)
LG는 고 화담 구본무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2019년 5월 20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가졌다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LG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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