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 머물다

[CEONEWS=김관수 기자] 여행에서 하루 이상 머문다면 숙소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안동에는 대규모의 브랜드 호텔이나 리조트는 없지만 국내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대 규모와 최고 수준의 고택체험이 가능한 숙소들이 있다. 최근에는 인스타 감성의 취향저격 고택체험 숙소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안동여행자들은 행복한 숙소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도시 어디를 가도 헤리티지’라고 말할 수 있는 안동은 길과 마을을 거닐고, 그 속에 숨은 정신을 엿보고, 전통놀이와 체험을 즐기고, 로컬의 맛을 탐하는 멋스러운 여정들이 있는 여행지다. 이렇듯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택들이 있는 안동이기에 하루쯤 고택체험을 해보는 상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 고택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확실한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고택 3곳을 소개한다.   

하회마을 감나무집

군불 떼는 옛정이 있는 초가집
하회마을을 한 바퀴 걷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바로 마을을 떠나지만, 찐 하회마을의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해가 지며 검붉게 물드는 지붕 위로 밥 짓는 연기가 퍼지는 전원 풍경과 관광객이 없는 고요한 아침이 하회마을 여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다. 이런 순간들을 오롯이 체감하려면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 정답이다. 

하회마을 초입을 지나 하회교회 방향 골목길로 들어서면 바로 감나무집이다. 대문 앞 복숭아밭에는 4월이면 벚꽃보다 더 핑크핑크한 복숭아꽃이 심쿵한 풍경을 자아낸다. 지붕 위에 이엉을 두텁게 얹은 초가 앞마당에 앉아 감나무집만의 멍의 세계에 빠질 수 있다. 담장 너머 머리를 내밀고 있는 부용대, 마을 주산인 화산에 폭 안긴 농촌마을, 밤 마당에서의 불멍, 늦가을 마당에 열린 감을 바라보는 감멍도 가능하다. 어둑해진 저녁이면 감나무집 마당에 손님들이 둘러앉는다. 바비큐도 하고 안동의 술과 음식을 즐기며 도란도란 하루여행을 마무리한다. 이따금 마을사람들이 찾아와 하회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작지만 감미로운 문화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옛 시골집의 온정이 느껴지는 시간들이다. 

감나무집에는 초가 2채에 4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2023년 초 새롭게 단장한 객실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모두 구비해서 손님들이 보다 편안하게 고택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객실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최소 2인에서 최대 6인까지 머물 수 있으며, 겨울이면 구들을 떼는 방도 있고 벽에는 황토를 두텁게 발랐다. 방 안에는 침대가 아닌 이부자리가 준비되어 있고 에어컨과 TV, 일부 생활용품 외에는 요즘 물건을 거의 찾을 수 없다. 호텔이나 펜션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옛 문화를 체험하고 어른들은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으로 충분하다. 눈을 뜬 아침 초가지붕 위에서 들리는 새 소리, 코끝이 시원해지는 상쾌한 강바람, 구름과 안개가 만들어 내는 그림 같은 풍경이 기다리는 감나무집. 하회마을에 왔다면 이런 숙소가 정답 아닐까?

임연재종택

수백 년 전 도서관에서의 고택 북스테이
이제는 드물어진 조선 전기 반가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임연재종택은 성균관대사성 등을 지낸 임연재 배삼익 선생을 불천위로 모시고 있는 종택이다. 또한 흥해 배씨 중 안동에 처음 뿌리를 내린 백죽당 배상지 가문의 종가로 백죽고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집의 역사는 임진왜란 이전인 155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배삼익의 부친이 이 집을 건립했고, 본래 월곡면 도목리에 터를 잡았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안동 지성들의 전당인 국립 안동대학교와 안동향교가 함께 있는 마을, 때문에 왠지 학구열이 넘칠 것 같은 송천이 임연재가 새롭게 자리 잡은 마을이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임연재종택은 고택체험과 별도로 사설 도서관 ‘백죽고택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임연재 배삼익이 활동하던 16세기부터 이 집은 책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전용 공간에 보관하고 사람들에게 대출을 했던 오늘날 도서관의 기능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의 종손은 이 기록을 모티브 삼아 임연재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작은도서관을 열고 누구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꾸몄다. 도서관은 고택체험을 하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이면 언제나 이용 가능하고, 하루 묵어가는 고택체험은 하루에 단 한 팀만 신청을 받고 있다. 

멀리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우뚝 솟은 갈라산 문필봉을 바라보고,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책방에 앉아 독서를 하고 정원과 연못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임연재에 머물고 싶은 첫 번째 이유라면, 500년 가까운 세월이 믿겨지지 않는 깔끔함은 두 번째 이유로 꼽고 싶다. 최대한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온 종손의 노력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손님이 불편함 없이 머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고 깔끔하게 챙겨놓은 세심함도 가득하다. 객실에는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다. 또한 문화재를 소중히 보존하고자 하는 종손의 마음으로 바비큐도 금지하지만, 임연재종택에는 하룻밤 머물다 가고 싶은 이유가 더 많다. 

언제부턴가 북스테이를 하는 곳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수백 년 전의 도서관 바로 그곳에서 하는 북스테이는 유일하지 않을까? 독서하는 당신을 위한 고택 북스테이로 추천한다.

경함정

고택에 스며든 예술가 부부의 손길
안동시 임하면 금소마을은 오래 전부터 예천 임씨와 울진 임씨들이 함께 모여 살아온 집성촌이다. 예로부터 마을의 안산인 비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앞에 흐르는 물길이 마치 비단폭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워서 ‘금수’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골목 안 흙담을 따라 흐르는 수로가 안동의 여느 전통마을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을의 샘터에서 나오는 약수는 안동시내와 여러 음식점에서도 길어오는 건강한 식수로 소문이 자자하다. 

또한 이 마을은 오래 전부터 유명한 대마 재배지였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안동포짜기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안동포짜기 마을보존회는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나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이제는 만들 수도 없고, 찾기도 어려운 도구들을 수소문해서 모으기도 하고, 안동포 짜기 기술을 전승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안동이 국내 첫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되며 금소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함정은 금소마을 안쪽에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다. 퇴계의 정신인 ‘공경의 경을 가슴에 품다’라는 뜻을 새긴 경함정은 금속패물 대한민국 전통기능전승자 임방호, 박찬희 부부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꾸민 고택체험 공간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부부의 예술적 감성은 툇마루 위 산들바람에 펄럭이는 쪽빛 천에서부터 발현된다. 200년 고택의 실내공간은 어느 현대미술 작가의 프라이빗한 갤러리를 보는 것 같다. 방 2칸, 마루 한 칸을 채운 것은 8할이 금소마을과 금속공예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금소마을이 만든 자연의 산물들이 고택의 빈티지한 분위기와 한 몸이 되어 고풍스럽고 우아한 멋을 더한다. 금속공예작가들의 면모는 작고 세밀한 것들에서 빛을 낸다. 경첩 하나, 문고리 하나, 조명 하나까지 반짝 빛을 내는 것들이 있다면 부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욕실은 자쿠지로 트렌디한 멋을 냈다. 발을 담그는 그 순간만큼은 고택이 아닌 고급 리조트 체험이 된다. 오직 한 팀 독채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편하게 마음껏 이용 가능하다. 부부는 자신들의 예술혼을 손님들과 나누기도 한다. 와편을 하나하나 쌓아 직접 만든 공간 쇠노리에서 은반지와 은팔찌를 만들 수 있다. 직접 만든 은반지를 하나씩 끼워주는 체험. 외지인 뜸하던 안동 시골마을에 연인들의 비밀스러운 보금자리가 제대로 생긴 것 같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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