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CEO 추모-회장님! 그립습니다] 대상그룹 창업주 인곡 임대홍 편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겸 초대회장. (사진=대상)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겸 초대회장. (사진=대상)

 

[CEONEWS=최재혁 기자] ‘국산 조미료의 아버지’이자 ‘은둔의 경영인’으로 알려진 인곡(仁谷)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겸 초대회장은 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임 창업주는 사교적인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사무실문을 열어봐야 퇴근했는지 확인될 정도로 식품 연구에 몰두한 ‘실험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임 창업주는 2016년 4월 5일 별세. 가족장으로 치렀으며 고인의 뜻에 따라 조문을 받지 않았고 조화도 모두 돌려보냈다고 한다. 올해 7주기다. 순수 국산기술 조미료를 처음 개발한 한국 식품업계의 큰 별인 임 창업주는 평생을 연구에 매달린 근면함과 특유의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로 기업인의 귀감이 됐다. 기업인의 모범을 보여준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임 창업주는 1920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학과를 졸업한 후 1942년 고창군청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모피가공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25세 나이에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정읍에서 피혁공장을 열었고, 2년 후 부산에서 대림상공을 설립했다.

제주도에서 피혁을 가공해 내륙으로 내다 팔면서 사업이 성장했으나 1948년 제주도에서 4·3사건이 일어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그는 부산, 마산, 청주, 서울 등지에서 피혁사업을 벌이며 재기했고, 6·25 전쟁 이후 무역업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임 창업주가 조미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때였다고 한다. 무역업을 하면서 일본을 오가던 그는 일본의 각종 상품이 한국시장에 밀려들어 오는 현실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일제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국내 시장을 점령하는 것을 보고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미료 공장에 취직해서 1년간 조미료 특급비밀 제조공정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돌아왔다.

그는 1956년 1월 한국 최초의 조미료 공장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그해 6월 미원을 공식상표로 등록하고 본격적인 조미료 사업을 시작했으며, 1962년 회사이름을 미원으로 변경했다. 미원은 1960년대 초반 CJ제일제당의 미풍과 회사 운명을 걸고 치열한 선두다툼을 했으며, 이후 대상의 '진국다시'가 CJ제일제당의 '다시다'와 맞붙는 등 양사의 경쟁은 이어졌다. 국민 조미료 미원은 음식에 미원을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는 입소문을 타고 국산 조미료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1가구 1미원 바람을 일으킨 미원은 1990년대 MSG 유해 논란 광고로 20년간 시련을 겪었다. 이후 식약처를 비롯한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이 MSG의 안전성을 인정하면서 명성을 회복했다. 미원은 1970년대부터는 인도네시아, 일본, 홍콩 등 해외 진출을 본격화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조미료 외에도 각종 장류와 냉동식품, 육가공식품 등을 생산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임 창업주는 1987년 그룹회장을 장남인 임창욱 회장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제품 개발과 연구는 놓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실에 머물렀다.

국산조미료에 대한 헌신 및 열정과 함께 그는 남다른 근면함과 검소함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세상에 나서는 외부활동 대신 평생을 조용히 자신의 공간에서 실험과 연구에 매달렸다. 출장을 가도 숙박료가 비싼 호텔을 찾지 않고 모텔이나 여관에만 묵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 가서도 도시락을 이용하고 직접 옷을 빨아서 입을 정도로 절약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임대홍 창업주가 생전에 신었던 마지막 구두. (사진=대상)
임대홍 창업주가 생전에 신었던 마지막 구두. (사진=대상)

 

지방을 오갈 때도 운임이 가장 비싼 새마을호를 타지 않았으며 서울 시내에서도 자동차보다는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다. 부인인 고 박하경 여사가 아침마다 출근하는 임 창업주에게 토큰 두 개를 챙겨줬다고 한다. 임원들이 벤츠 승용차를 선물했지만 시승도 하지 않고 환불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하루에 한 끼는 꼭 라면을 먹었으며, 구두도 한 번에 두 켤레 이상 가져본 적이 없으며, 양복도 한 벌을 10년 이상 입은 단벌 신사였으며, 골프장에 한 번 가본 뒤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는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임 창업주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연구노트. (사진=대상)
임 창업주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연구노트. (사진=대상)

 

서울 신설동 대상그룹 본사가 1973년 준공 후 별세할 때까지 한 번도 외관을 바꾸지 않은 점도 임 창업주의 검소함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71년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공헌에는 앞장서 왔다. 대상문화재단 설립이후 46년간 1만5200명에게 162억원을 지원했다.

임 창업주의 검소한 성품은 장례 이후 유품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임 창업주가 생전에 신었던 마지막 구두는 고인이 노점에서 직접 구입해 14년 동안 신은 것이다. 그의 연구노트와 신문스크랩에는 임 창업주의 열정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대상(주)은 2022년 12월 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2년 지속가능경영유공 정부 포상’ 시상식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사진=대상)
대상(주)은 2022년 12월 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2년 지속가능경영유공 정부 포상’ 시상식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사진=대상)

 

대상그룹은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미국 LA에 대규모 김치 공장을 완공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고 2022년 3월 29일 밝혔다. (사진=대상)
대상그룹은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미국 LA에 대규모 김치 공장을 완공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고 2022년 3월 29일 밝혔다. (사진=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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