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CEO 추모, 회장님! 그립습니다]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 편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사진=코오롱그룹)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사진=코오롱그룹)

 

[CEONEWS=박세영 기자] CEONEWS는 레전드 CEO 추모 ‘회장님! 그립습니다’시리즈 이달의 주인공으로 고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만나본다. 이원만 창업주는 1994년 2월14일 별세. 향년 90세. 올해 29주기다. 1세대 창업주들의 업적을 되돌아보고 그들을 추모하는 것은 당대를 사는 사람들의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 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헤치고 기업을 만들어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 되새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에도 삶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그들이 만든 파란만장한 궤적을 따라가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긍정적인 부분은 징검다리로 부정적인 영향은 반면교사로 흡수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들의 삶 자체가 좋은 좌표가 돼 줄 것이다.

“이원만은 국가의 미래가 부유해지기를 고민했다. 그는 일본에서 ‘조센징’이라고 차별받고, 한국에서 ‘반쪽발이’라고 설움을 주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 하면 된다는 믿음, 조국을 향한 사랑으로 나일론을 수입했고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사람들은 진심이 담긴 그의 이야기에 빠졌고, 솔직담백한 인간성에 마음을 열었다. 그 덕분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이원만은 화학섬유로 ‘수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이익을 내는 사업을 하자’는 그의 정신은 섬유를 비롯한 여러 산업 곳곳에 퍼져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었다.” (박시온 지음 ‘이원만처럼’)

이는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라고 할 만하다. 그의 이력은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세상과 몸으로 부딪히며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을 성취해 나간 것을 생생히 전해준다.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성공법칙을 들자면 첫째, 원하는 것을 향해 땅벌처럼 비상하라! 둘째, ‘당연히’라는 말끝에 물음표를 달아라! 셋째,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성공의 첫걸음이다! 넷째, 신용은 기업가의 생명이다! 다섯째, 비가 와야 무지개도 뜬다! 여섯째, 배짱을 가져라! 일곱째, 유머는 리더들의 공용어다! 등을 꼽을 수 있다.

“혁신은 사소한 의문에서 나온다”

이원만은 코오롱그룹의 창업주로 대한민국에 나일론을 최초로 들여와 '섬유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며 국민의류 생활에 변혁을 일으키고 섬유강국의 신화를 써 내려 간 주역이다. 정부에 수출입국, 공업단지 조성을 건의하고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구로공단과 구미공단 조성을 이끈 '수출한국의 선구자'다.

의문을 혁신 아이디어로 ‘섬유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다

이원만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사업 성공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변화를 가져다줄 아이디어는 거창한 발명이 아닌, 일상 속 사소한 의문에서 온다는 것을 보여준 기업가였다. 경북 영일군의 산림을 관리하는 산림기수보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이어온 청년 이원만은 새로운 세상에서 포부를 펼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1933년 일본 오사카로 떠났다. 신문 배급소의 배달원 일을 시작한 그는 기술을 배워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끈기 하나로 알루미늄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당시 공장 직원들은 모두 ‘하찌마키’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작업을 했다. 머리에 하얗게 쇳가루가 내려앉은 것을 본 그는 “일할 때 머리에 쇳가루가 쌓이지 않게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고민을 거듭한 그는 챙이 달린 모자에 광고 문구를 새겨 작업용으로 제작했다. 1935년 5월 오사카에서 광고용 모자를 생산하는 아사히공예주식회사의 문을 열었다. 제품 생산으로 물론 직접 영업에 뛰어든 그의 노력으로 하루 4만 개의 광고 모자를 만들고 직원 수 1,000명이 넘는 기업으로의 성장시켰다. 작업 모자에 변화를 가져온 아이디어는 점퍼, 작업복 등으로 품목을 확장하며 마침내 사업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1954년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처럼 질긴 재질로 기적의 섬유라 불린 나일론을 수입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일론을 누구보다 먼저 국내에 들여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평소 이 회장이 갖던 의문들이 있었다.

“왜 나일론을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나?” 그는 국내에서 직접 나일론사를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 1957년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3년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로 나일론 제작에 성공했다. 그는 농업과 공업의 갈림길에서 논쟁이 이어지던 1960년대에 ‘농공병진’(農工竝進)을 내세우며 공업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역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 “어째서 해보지도 않고 공업을 포기하려 하는가?” 한국을 수출국가로 만든다는 신념으로 노력을 거듭한 그는 1963년 서울 구로동에 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구미 산업단지 조성을 반대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설득해 공단 설립도 이끌어냈다. 그는 남다른 생각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섬유산업 및 섬유 수출 시대를 개척, 업계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나무로 만드는 전봇대를 시멘트로 바꾸도록 하고 가정 및 업소에 프로판가스가 도입된 것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또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가발 산업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사업을 할 때는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이 부의 축적이라는 개인적 의미를 넘어 국민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원만 창업주의 경영철학은 사업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가슴에 새겨야할 것이다.

1953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하고 수출하다

이원만은 재일동포에게 불리한 법과 관행을 넘기 위해 일본에 사는 한국 사업가들을 위한 단체를 조직했다. 1949년 ‘재일 한인 경제동우회’를 만들어 부회장에 취임하고 재일 경제인들의 뿌리는 결국 고국임을 강조하며 끈끈한 결속을 이끌어냈다. 이원만은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고통받는 조국을 위해 알루미늄 식기와 의류를 구호품으로 보냈다. 재일동포 신용조합을 만들어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등 조국과 재일 사업가들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전쟁 후 나라를 재건하고 복구하고자 이원만이 주목한 것은 ‘나일론’이었다. 1953년 조국으로 돌아와 개명상사를 설립하고 나일론을 수입 판매했다. 이원만은 나일론 원사를 가공해 부드럽게 한 ‘스트레치 나일론사’ 수입으로 외화유출이 심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1957년 4월 ‘한국나이롱주식회사(코오롱의 전신)’를 설립하여 대구 신천동 일대에 공장을 지은 이원만은 몇 번의 실패를 딛고 1959년 1월 스트레치 나일론사 생산에 성공해 1963년 4월에는 국내 최초로 스트레치 나일론을 수출했다. 이후 일본 도레이 사로부터 나일론 제조기술을 이전 받아 1963년 8월 서울 구로공단에 나일론 원사공장을 준공하고 1964년 1월 ‘나일론6’ 원사를 생산해 상품명을 ‘코오롱(KOLON)’으로 지었다. 코오롱이 대한민국의 합성섬유 시대를 연 것이다

뚝심으로 구로공단과 구미공단 조성을 주도하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아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와의 긴밀한 회의를 통해 나라의 부강을 위한 방안들을 고민했다. 1962년 한국경제인협회 이사로 경제간담회에 참석한 이원만 회장은 박정희 의장에게 공업을 통한 경제발전이 필요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원만은 다시 박정희 의장의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공업단지 조성을 건의한다. 이후 1963년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구로공단과 구미공단 조성을 주도했다.

이원만은 나일론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합성섬유 ‘폴리에스텔’ 생산에도 관심을 가진다. 폴리에스테르는 나일론에 비해 신축성은 떨어지지만 내구성이 좋아 겉옷이나 침구류, 커튼 등에 많이 사용되는 섬유이다. 풍부한 용수와 노동력, 편리한 교통 등 좋은 조건을 가진 구미를 생산기지로 선택한 이원만은 1971년 3월 ‘한국폴리에스텔’ 구미공장을 준공한다. 이를 시작으로 구미는 제일모직, 제일합섬, 동국방직, 한국도시바, 금성사, 대우전자, 삼성전자 등으로 꾸려진 거대한 공단으로 성장했고 수출 대한민국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참고자료

1. 이원만처럼-나일론에서 쏘아올린 섬유 강국의 신화, 박시온 지음, FKI미디어, 2013

2. 전경련 디지털기업인박물관

나일론 원단 (사진=코오롱그룹)
나일론 원단 (사진=코오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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