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 배준철 기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가톨릭 미사에서 지난 한 주의 죄를 반성하며 고백할 때 하는 기도문의 시작이다. 모든 죄의 근원을 ‘나’로 규정하고 ‘나’로 인해 발생된 모든 죄의 용서를 빈다. 더불어 죄의 범위 역시 ‘말’과 ‘행위’만이 아닌 ‘생각’까지 지정해, 결과만이 아닌 ‘의도’까지 “간절히 바라며“ 용서를 구한다. 충분한 침묵과 반성의 기도를 하고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에야 ‘자비’를 구할 수 있다.

반면, 미사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우리에겐 만만치 않게 우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용서의 몫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행되어야 할 반성과 고백과 참회가 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자꾸 누군가가 “쟤 탓”만 하고 있으니 몹시도 불쾌하고 불편하고 부끄러운 최근간의 대한민국이다.

그렇다. 반평생을 바라보던 밤하늘에 또다시 별들이 늘어났다.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참으로. 슬프고 슬프며 슬플 일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기 바빴던 1995년 강남의 밤을, 설렘으로 밀레니엄을 코앞에 뒀었던 1999년 화성시의 밤을, 온 국민이 분노하고 통도하던 2014년 진도의 밤을, 유난히 밝았던 별을, 우리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더불어 우리는 TV에 나와 유난히도 남의 탓을 하는 인물들을 꾸준하게 보아왔고 그로인한 환멸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환멸은 마치 한 집안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이로써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는데 자칭 죄 없는 부모가 뛰쳐나와서는 자기네 막내자식만 탓하다가 종국에 가서 그 막내자식만 힘없이 벌을 받는 모습을 봤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하지만 수치스런 과거는 반복될 뿐이고 여지없는 과오 역시 오늘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보자! 처음과 끝을 지킨 이는 죄가 없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리 호소한들 결국 힘없이 내쳐지고 버려지고 벌을 받게 될 것임을 안다.

‘그네들’의 그런 행태를 보게 될 때마다 일명 ‘꼬리 자르기’를 언급하며 몸통을 비난하고는 하지만 그 몸통의 비굴함을 쉽게 잊는 것 역시 ‘우리네’이다.

사건을, 별을, 그 슬픔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추모해야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에 반성과 용서라는 당연하고 정당한 말 대신 ”쟤 탓“을 했던 사람들의 사상 역시 절대 잊으면 안 될 일이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고 이해심이 많고 배려가 넓어 지난 과오를 쉽게 잊어주는 게 미덕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래 편한대로 사슈!”가 필자의 대답이다.

결국 진심으로 머리 한번 조아리지 않은 ‘그네들’은 인심 좋은 ‘우리네들’을 겨우 간식하나에 꼬리를 흔드는 정도의 동물 정도로 여길 테니까.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지켜봐야 하고 지켜봄을 알려야하고 화내야하고 혼을 내야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네들’은 또다시 몇 년 후, 얄팍한 혀 놀림을 시도할 것이고 결국 당신의 가치가 바닥임을 인증하듯이 그 따위 ‘몸통’에게 당신과 당신 가족의 안위를 담보로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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