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해자지, 가해자가 아니다

[CEONEWS=최재혁 기자]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이 모인 영화가 있다. 그 감독은 무려 영화 '관상'으로 900만 관객을 돌파한 한재림이다. 명품 감독과 배우의 만남인 영화 '비상선언'은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으며, 대한민국 재난 영화 장르의 한 획을 긋고자 한다.

​전반부 휘어잡는 '임시완'

언급한대로 비상선언의 배우진은 어느 영화에 갖다놔도 주연을 거머쥘 배우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돋보인 배우가 '임시완'이라고 했을 때, 많은 이가 귀를 의심할 것이다. 

​임시완이 연기한 '류진석'은 영화의 출발을 알리는 캐릭터다. 광기에 휩싸인 그는 등장 초기부터 과격한 행동과 욕설로 순간을 사로 잡는다. 자신의 계획대로 무작위의 비행기에 생화학 테러를 준비 중인 그는, 비행사 직원에게 괴팍하게 웃으며 "비행기에 사람이 얼마나 탔어요?"라고 묻는다. 직원이 개인정보를 핑계로 대답을 거부하자 그는 포기하듯 뒤돌아서는데, 잊은 거라도 있듯 급하게 돌아서며 "실실 웃지 마세요. 걸레 같은 년"이라고 욕설을 내뱉는다.

​그의 광기어린 연기는 지속된다. 극중 '박재혁(이병헌)'의 딸이 진석이 몸에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을 발견하자, 끝까지 따라붙으며 추궁한다. 딸이 재혁에게 귓속말하며 어떤 내용을 전달하자, 급작스레 그들의 목적지인 하와이 행을 선택한다. 어차피 무차별 테러였지만, 그의 선택은 그저 기준이 없다.

​진석은 또, 테러가 발발하자마자 비행기에 탑승한 시민에게 제압된다. 그러나 아무도 진석이 발포한 물질이 무엇인지, 해결방안을 모르기에 정부 당국은 그와 통화하며 '요구가 무엇이든 들어줄 것'을 설명한다. 이에 진석은 "내가 바라는 건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인원이 죽는 것"이라며 "한 명, 한 명이 쥐새끼마냥 고통스럽게 죽는 걸 보고싶다"며 순수한 광기를 드러냈다.

​진석의 광기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를 연상케 한다. 잭 니콜슨은 시종일관 미친듯이 웃으며 냉철하게 자신의 계획을 진행해나간다. 또, 계획을 사전에 알려, 배트맨과 고담 시민의 뇌리에 순수한 공포를 심는다. 진석 또한 계획을 사전에 알리고,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무섭고 악랄하다.

​비상선언의 전반부는 그런 진석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재난 영화'라는 장르에 큰 탄력을 부여받는다. 진석을 중심으로 등장한 재혁, '인호(송강호)', '숙희(전도연)'는 튼튼히 뒤를 받쳤다.

​어디서 감염될 지 모르는 '극도의 공포'

​예상치 못한 '재난'이 중심이었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기내의 피해자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육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에 대해 많은 관객이 비상선언의 후반부를 '신파'라고 욕하지만, 꼭 그럴 것만은 아닌 듯하다.

비상선언의 재난 이유는 '생화학 테러'다. 급속도로 전파되는 데다, 치사율 또한 극도로 높은 바이러스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연상케한다. 누구나 느끼듯이 벌써 우리와 2년 넘게 동거 중인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아우르며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나눈다.

​영화에서는 피부에 보이는 '수포'로 감염 여부를 나눈다. 비감염자는 자신도 걸릴세라 수포가 보이는 타인을 한 곳에 격리시킨다. 재혁의 딸은 아토피로 피부가 울긋불긋한데, 이를 알지 못하는 한 승객은 부녀를 감염자로 몰아세운다. 이내 억울함을 성토하며 핏대를 세우는 재혁이지만, 딸은 이마저도 걱정되는지 "그냥 가자"며 울고 떼를 쓴다.

​그러나 높은 전염성으로 인해 승객과 승무원, 기장까지 모두 감염됐다. 비행기 안은 너도나도 할 거 없이 감염자가 됐다. 영화에서 처음 감염자가 나타났을 당시, 코로나19가 우리 곁으로 다가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확진자를 전염병 그 자체로 보거나 '가해자'로 인식했다. 지금은 우리 모두 걸렸거나, 가족과 친지가 확진됐기에 우리의 인식이 보다 편해졌다. 영화를 보며 코로나19를 대하던 사회의 얼굴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또, 영화에서 감염자가 득실한 비행기가 가까운 곳에 정박하려 하자, 그들은 모두 다가오는 것조차 거절했다. 처음엔 미국, 그리고 일본이 대한민국의 감염자를 거절했다. 일본은 나리타 공항으로 돌진하는 비행기에 위협사격까지 가하며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전달했다.

​타국의 감염자이기에, 자국민이 우선되야 하는 그들의 입장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당황스러운 건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판단에 있다. 정부는 확실한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감염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비행기를 하늘 아래로 내릴 생각을 멈춘다. 시민도 감염 비행기의 착륙 여부에 찬반 투표를 부치고, 직접 공항에서 항거했다.

​상황만 보면 위기에 처한 자국민을 거절하는 정부가 옳은 지 강하게 의문이 든다. 그러나 상황을 보다 비관적으로 보면, 비행기의 감염자가 공항에서 타인에게 옮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감염이 '코로나19'처럼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망한다. 그러기에 영화에서 미국과 일본이 착륙은커녕 영해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거절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영화는 결말로 향할수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기장이 사망하자 조종석을 책임진 '부기장(김남길)'까지 감염돼, 사리 판단이 불가하다. 이에 재혁이 비행기를 책임지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큰 장애를 겪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곧 착륙해 치료받을 것으로 생각하던 기내의 감염자들은 사회에서 본인들을 거절하는 걸 깨닫게 된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용기를 낸 한 시민은 "우리라도 감염자가 땅을 밟는 건 불안했을 것이다"라며 "만약 우리로 인해 가족이 감염된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착륙하지 말자"고 선언한다. 이에 대부분의 감염자가 찬성하며 착륙을 포기한다. 

목숨을 포기한다는 뜻밖의 결정이라 놀랍지만, 잠시 영화에서 빠져나와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서서히 확진자가 늘어가자 많은 시민이 "나는 확진돼도 건강하니까 괜찮은데, 나로 인해서 우리 가족과 친구가 병에 걸려 큰 일이 생길까 두렵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영화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죽을지언정 가족이 나로 인해 죽는 걸 어떻게 지켜보겠는가.

​이때 영웅이 출현한다. 인호는 백신의 효과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입증시킨다. 스스로 병균을 투여해 백신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인이 비행기에 타있으니 행동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그의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난세에는 언제나 영웅이 등장한다고 했던가. 인호는 영웅처럼 자신의 몸을 희생해 타인을 구했다. 분명 우리도 2년 동안 영웅을 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영화와 같은 '슈퍼 히어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현실에는 '현실판 영웅'이 있다. 수많은 확진자를 간호하고, 치료하고, 그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질세라 보급에 차질이 없도록 한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덕분에'라는 말로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극중 인호처럼 자신의 몸을 희생해 타인을 구했다. 단지, 영화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는 '체험'의 마술이다. 영화 비상선언은 재난을 통해 위기를 겪은 이들이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과정을 그리며, 우리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도 코로나19로 비상선언한 이후로 어떻게든 삶을 이겨나가며 끝내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오지 않았는가. 

​앞으로 우리의 날들이 영화처럼 밝은 빛이 앞길을 조명하길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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