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최재혁 기자] '등급'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사용처를 알면 뭔가 어색하다. 등급의 뜻은 '높고 낮음을 여러 층으로 나눈 단계'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서로의 높고 낮음을 나누는 것이다.

등급을 나눔으로써 긍정적인 반응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소득분위를 나누어 가난한 자에게는 더 많은 지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내가 너보다 높은지를 파악하기 위해, 남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등급이 나뉜다.

'일등급'이라는 단어도 상당히 어색하고 웃기다. 학창시절 내내 우리를 괴롭히던 '등급'은 사회에서도 물건, 식품에 사용된다. '우리 우유는 일등급 우유'라는 광고 문구가 있을 정도니, 사람들이 일등급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연극 일등급 인간 커튼콜(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일등급 인간 커튼콜(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일등급 인간'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가족을 이야기했다. 하나뿐인 딸이 사회에 나가 떵떵거릴 수 있도록, 부모는 '일등급 뇌'를 사들인다. 이 과정에서 아빠는 대장을 팔고, 딸은 자신의 뇌를 팔게 된다. 딸의 뇌로 구매한 '미스트'를 아빠가 "좋다"며 뿌리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 그릇된 수단이 용인된다고 했던가. 그러나 목적이 올바르지 않다면, 목적이 올바른지 알 수 없다면 그릇된 수단이 용인될 것인가. 딸이 더 좋은 뇌를 이식받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결국 '뼈'를 제외하고 모든 걸 판 아빠, 몸을 내줘서라도 딸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엄마의 아이러니가 본 연극의 중심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딸이 올바르게 성장할리 만무하다. 뇌가 일등급으로 향할수록 자신에게 우호적인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무시하며, 끝내 등쳐먹을 생각뿐이다. 끝내 자아분열이 일어나며 끝없는 욕망의 끝은 '파멸'인 것을 드러낸다.

본 연극에서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아이러니와 대한민국의 끝없는 학벌주의를 비꼬기 위해서다. 우리는 무언가를 팔아 좋은 걸 사려고 하지만, 가장 올바른 길은 스스로의 수양뿐이다. 쉽고 안락해보이는 길만을 찾다가는 내 길이 어딘지 모르고 꼬이기 마련이다.

연극 일등급 인간 커튼콜(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일등급 인간 커튼콜(사진=최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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