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감독’ 단편으로 데뷔
‘잔고: 분노의 적자’ 백승기의 발칙한 패러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CEONEWS=최재혁 기자]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7월 7일,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 개막식을 개최했다. 3년 만에 갖는 전면 대면 개막식으로,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인 설경구, 폐막작 ‘뉴 노멀’ 주인공 등을 비롯한 국내외 게스트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선도해왔던 작곡가 김형석의 ‘노느니특공대엔터테인먼트’가 창조한 버추얼 그룹 ‘사공이호(SAGONG_EE_HO)’가 등장해 축하공연을 갖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현장(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현장(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올해 BIFAN은 또 영화제 최초로 ‘시리즈 영화상’을 신설, ‘오징어 게임’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왜 우리는 오징어 게임을 영화라 부르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시대에는 오징어 게임처럼 OTT 시리즈나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들도 영화로 재정의 해야 한다”고 제정 및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김동연 경기도지사, 조용익 부천시장, 정지영 조직위원장이 자리를 빛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김동연 경기도 지사가 축하인사를 보내고 있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김동연 경기도 지사가 축하인사를 보내고 있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영화의 화두는 ‘상상’과 ‘언어’라고 생각한다”면서 “더욱더 많은 지원을 통해 경기도에서 우리 영화와 웹툰, 또 모든 문화예술이 큰 부흥을 일으키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용익 BIFAN 명예조직위원장이자 부천시장은 “일상 복귀와 축제의 부활을 선언하면서 다시 한 번 큰 도약을 하고자 한다”며 “세계적인 장르영화제로서의 국제적인 위상을 키워나가겠다”며 “부천이 명실상부한 영화 인재 발굴과 문화예술교육의 도시가 되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지영 조직위원장도 배우 고 강수연을 추모한 뒤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회복을 뛰어넘어 진화하는 영화제를 준비했다”면서 “관객 여러분의 기대 이상으로 보답하겠다”고 알렸다. 

제26회 BIFAN은 7월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까지 오프·온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총 49개국 268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산업 프로그램(B.I.G)과 XR전시회(Beyond Reality) 및 ‘괴담 캠퍼스’도 운용하고, 포럼 ‘영화의 미래-팬데믹 이후 영화와 영화제’ 등도 함께 진행하며 다양성을 갖췄다. 7월 8~9일에는 대규모 시민 축제 ‘7월의 할로윈’을, 9~10일에는 국내 굴지의 EMA 소속 뮤지션 12팀이 참가하는 대형 기획공연 ‘스트레인지 스테이지’에서 부천의 색깔을 마음껏 드러냈다.

문근영 감독이 답변 중이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문근영 감독이 답변 중이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문근영 감독’ 단편으로 데뷔

‘국민 여동생’이자, 어느덧 20년 차 경력의 배우 문근영이 감독으로 돌아왔다. 

문 감독은 자신이 이끄는 창작집단 ‘바치’와 함께 단편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를 한 번에 상영했다. 3편 모두 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각본은 홀로 쓰거나 출연배우의 이야기를 함께 각색했다.

그의 이야기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모두 무언극으로 이뤄졌는데, 굳이 대사를 듣지 않더라도 행동과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충분히 설명됐다. 또 빛의 활용도 무척 눈에 띄었는데 각각의 영화에서 빛이 상징하는 바가 모두 다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석한 관람객이 GV를 기다리고 있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석한 관람객이 GV를 기다리고 있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바로 배우 ‘정평’과 함께 작업한 현재진행형이다. 무대 위에 선 배우는 조명 아래에서 신들린 듯 연기를 펼치고, 이내 무대를 벗어나려 하자 조명이 그를 구속한다. 다른 부위는 어떻게 빠져나왔지만, 오른 다리만큼은 갇혀버렸고,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조명은 배우에게서 눈을 뗄 생각을 안 한다.

감옥 같던 스포트라이트는 번쩍하고 사라지더니 무대를 이곳저곳 비추기 시작한다.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도망가려던 배우는 갑자기 태세를 바꾸며 빛을 쫓아다닌다. 마침내 빛과 배우가 만나자 재차 신들린 연기를 펼치고, 극을 끝낸 배우는 좌절과 슬픔에 빠져 오열한다. 현재진행형은 배우 정평의 이야기로, 코로나19로 인해 점차 사라지는 무대로 인해 ‘연기할 곳’마저 없어질 것만 같은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GV에 답변 중인 문근영 감독과 정평 배우(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GV에 답변 중인 문근영 감독과 정평 배우(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에 기자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문근영 감독의 입장이 궁금해 “현재진행형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배우를 구속하고,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애원하기도 하고,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슬픔과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연기 경력 20년 차 배우인 문근영과 새내기 감독 문근영에게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의미일 것 같다”고 물었다.

문 감독은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스포트라이트가 사실 무섭다”며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게 좋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앞에서 조명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적당한 스포트라이트가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말미에 “뭐든지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고 밝혔다.

영화 잔고 분노의 적자 스틸샷(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잔고 분노의 적자 스틸샷(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잔고: 분노의 적자’ 백승기의 발칙한 패러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하면 떠오르는 감독이 몇 있다. 관객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이상해도 괜찮아’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영화제이기에, 다소 발칙한 감독의 작품이 등장한다. 이에 많은 관객이 다소 독특한 코미디 장르의 ‘백승기 감독’을 주목한다.

백 감독의 이번 신작은 ‘잔고: 분노의 적자’로, 영화팬이라면 느꼈다시피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전작 ‘인천스텔라’부터 시작된 명작 패러디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새로운 웃음을 전달하고 있다.

‘웰메이드’를 표방하는 백 감독이기에 그의 영화 제작 배경은 항상 기대에 차있다. 우선 서부극 장르인 장고이기에, 백 감독은 사막이 있는 곳을 찾았다. 다행히 인천의 섬 대청도에 훌륭한 사막지대가 있어 촬영 장소의 선택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인천에서 촬영하기에, ‘인천의 아들’이라 불리기까지 한다.

서부극에는 말이 빠질 수 없다. 실제로 말 타는 장면을 찍기 위해 말을 공수하려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하고 타 드라마 촬영 중 말이 사고로 죽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덕분에 짜낸 아이디어는 ‘말 인형’으로, 바지처럼 입는 말이다. ‘중요 부위(?)’에 말 머리가 있어, 걸을 때마다 말 머리가 흔들리는 게 무척 인상적이다.

타란티노의 장고는 당연히 영어로 제작됐기에, 백 감독은 언어의 차이에서 웃음을 주고자 했다. 백승기의 잔고도 모두 영어로 대사를 하지만, 신기하게도 자막을 읽지 않았는데 대사가 들린다. 

잔고 분노의 적자 GV 시간에 백승기 감독이 답변하고 있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잔고 분노의 적자 GV 시간에 백승기 감독이 답변하고 있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러나 이번 영화는 백승기 감독이 마냥 웃기자고 찍은 작품이 아니다. 기자는 백 감독에게 “타란티노의 장고는 클라이막스에 화려한 폭발 장면이 있는데, (한정적인 제작비 탓에)결말에 대한 고심이 많을 것 같다”고 물었다.

백승기 감독은 “애초에 화려한 액션과 카타르시스 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를 제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배우, 제작진을 포함한 주변인과 함께 영화를 찍고 싶었다”며 “다 찍은 영화를 모두 함께 보면 얼마나 기쁠까”라며 말을 마쳤다. 

그의 말을 듣자 잭 블랙 주연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떠올랐다. 영화를 찍기는커녕 3명 이상 모일 수도 없던 지난 2년 동안, 영화를 찍어 함께 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화에 참여한 사람이 모여 영화를 본다는 자체가 축복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슬로건(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슬로건(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쉬운 체계·미숙한 진행

벌써 26번째를 맞은 BIFAN이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우선 국제영화제인 만큼 가장 중요한 ‘언어의 벽’을 해결하지 못한 작품이 있다. 영화 ‘스픽 노 이블’의 경우에는 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사회자, 전문 통역사와 함께 영화 감독과 작가가 등장했다. 영화가 상당히 많은 질문거리를 이끌어냈기에, 관객의 손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러나 진행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통역사는 자원봉사자인지, 전문가인지 알 수 없지만 작은 목소리에다 번역의 어려움을 느꼈다. 때문에 관객과 영화감독 모두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알 수 없었다. 영화 커뮤니티의 한 관객은 “통역사 때문에 답답해서 GV 도중 나왔다”고 전할 정도였다.

통역의 어려움은 모두가 공감할 듯하다. 단시간에 말을 기억했다 전달해야 하는 과정은 쉬운 게 아니다. 단순히 통역의 문제가 아닌, 전문 통역사를 구하지 못한 영화제측에 잘못이 있는 듯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신철 위원장이 답변 중이다(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축제 진행에도 번거로움은 있었다. GV가 진행된 이후에는 관객이 평소와 같이 영화관 앞쪽이 아닌 뒤쪽으로 나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GV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와 뒤섞이지 않게 배려한 이유인데, 스픽 노 이블이 끝난 이후에는 영화제 측에서 “앞으로 나가주세요”. “뒤로 나가주세요”라는 내용이 함께 전달돼 관객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했다.

또 거의 모든 영화가 상영이 끝나자마자 영화제 측에서는 “다음 작품을 위해 빠른 퇴장을 부탁드립니다”고 외쳤다. 물론 단기간에 많은 영화가 상영되기에 시간이 촉박할테지만, 이제 막 퇴장을 시작하는데 빠르게 나가라는 건 관객을 조르는 듯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인 만큼, 전 세계가 주목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미숙한 진행과 아쉬운 체계는 관람객에게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분명 세계적으로 떨칠 정도이기에, 국제영화제도 그에 맞는 품격을 갖추기를 바란다. 

그러나 BIFAN의 미래는 밝다. 슬로건 ‘이상해도 괜찮아’는 사회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재 가치관과 부합한다. 또 ‘이상함’을 표방하지만, 부천의 영화는 사실 ‘이상하지만 괜찮은’ 영화에 적합하다. 앞으로도 부천의 영화는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함이 특색이 되고, 특색이 강점이 되어 더 많은 인기를 끌지 않을까. 부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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