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서 비대위원까지...기대 불구하고 잇따른 ‘실패’
대선·지선 모두 이겨...향후 어디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사진=국민의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사진=국민의힘)

[CEONEWS=최재혁 기자] 최근 3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박근혜 정권의 탄핵으로 ‘침몰’이 예상된 것과 다르게 무척 빠른 회복력이었다. 그 중심에는 ‘30대’ 젊은 당대표인 이준석이 있다. 그는 젊고 세련된 감각과 탁월한 정치 능력을 선보이며 모든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겨우 2년 만에 무게감이 확연히 달라진 가운데, 그의 임기가 머지않을 듯하자 향후가 귀추 되고 있다.

이준석 당 대표는 5박 6일간의 우크라이나 일정을 마치고 인청공항을 통해 입국을 하였다(사진=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는 5박 6일간의 우크라이나 일정을 마치고 인청공항을 통해 입국을 하였다(사진=국민의힘)

‘반지하’에서 비대위원까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성동구에서 태어나 이후 상계동에서 꾸준히 살았다. 그에 따르면 빌라의 반지하 층에서 거주했다는데, 아버지가 해외로 발령이 나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 1년씩 있었고, 귀국해 정착한 곳은 목동이었다.

이후 서울과학고등학교 13기로 입학해 학생회장을 역임한 후 조기졸업한 이 대표는, 카이스트에 1~2달 정도 등교하다 중퇴했다. 다행히 하버드 대학교 서류전형에 지원해 합격해, 경제학과 컴퓨터과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와 함께 하버드대 한인학생회장으로도 활동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하버드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의 친구인 유승민 당시 국회의원의 인턴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정치의 꿈을 키웠다는 업계의 평도 다수다. 또 이 대표는 재학 당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교내 학생 전용 앱이었기에, 컴퓨터 전공이던 이 대표는 남들보다 몇 년 먼저 페이스북을 접한 사람으로 꼽힌다.

졸업 후에는 이미지브라우저 개발업체인 ‘이노티브’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해 2010년 9월 복무만료 했다.

2011년에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발탁되어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에는 ‘박근혜 키즈’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2011년 당시 20대 중반에 불과한 나이로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된 점이 화제가 됐다.

아주 파격적인 정계 입문이었던 당시에 대해 이 대표는 "정치현장에서 뛰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 정말 좋은 뜻을 가지고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분들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 단박에 큰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또 어떤 불합리한 이득의 영역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고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안을 들여 보면 어떤 노력의 연장선들이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저를 발탁한 사람도 인정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 20대 국회의원 총 선거 포스터(사진=국민의힘)
제 20대 국회의원 총 선거 포스터(사진=국민의힘)

기대 불구하고 잇따른 ‘실패’

이후 총선에서 비례 8~9번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 비상대책위원이던 김종인, 이상돈 등과 같이 비례 불출마를 선언했다. 추후 지역구를 고를 때에도 부모님의 고향인 대구나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출마를 포기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노원구 병 선거구를 선택했다.

2014년에는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을 지냈다. 여러모로 보수 정당의 차세대 젊은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젊은 보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으나, 2015년 1월 김무성, 유승민에 대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정당 내 활동을 쉬고 한동안 방송에 보수 측 섹션으로 활동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당시 후보를 견제할 차세대 보수 정당의 정치인으로 관심을 받았다. 그는 ‘지하철 4/7호선 급행열차 공약’과 ‘최저등급 졸업 도입’ 등의 공약을 내세웠으나 31.3%를 득표하며 2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당시 대선후보였던 안 후보와의 승부에서 성공하면 대박, 실패해도 본전인 식의 지역구였기에 패배하였음에도 인지도가 상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낙선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젊은 보수라는 정치적 상품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의 방송 활동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가장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하물며 이정현 당대표 사퇴를 위한 단식에 참여했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정도다.

이후 이 대표는 ‘박근혜 키즈’라는 프레임을 부수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에도 20대 총선이 지난 뒤까지 한동안 정치 행보를 이어가지 않고 종편 예능 프로에 패널로 출연했다.

당기를 흔드는 이준석 대표(사진=국민의힘)
당기를 흔드는 이준석 대표(사진=국민의힘)

당 대표 ‘이준석’

이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임으로 치러지는 2020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이전부터 방송에 출연해 ‘가덕도 신공항’을 두고 당의 의사 결정 체계가 TK와 PK의 지역 이기주의에 좌우된다고 비판하며 당대표 출마를 비공식적으로 드러냈다.

이후 한 포럼에서 강연 도중 전, 현직 의원들 앞에서 당대표에 진심을 갖고 도전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2030 이슈에 특화된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며 “당대표가 되면 주요 당직을 공개경쟁으로 선발하고 국회의원이나 기초의원 후보자들은 의정활동에 필요한 자질들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고 일정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공천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발표된 당대표 선거 여론조사에서 여러 다선 중진 의원들과 유력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꺾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나경원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후 조사에서는 전 연령대에서 우세하며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원내 경험이 없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는 것이 말이 되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 대표는 이를 두고 “그럴 거면 원내 경험은 고사하고 정치 경험 자체가 전무한 윤석열은 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냐”며 일갈했다.

마침내 2021년 6월 11일, 국민의힘 초대 당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는 44%를 득표해 당선됐다.

이로써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선출직 공직자 경험이 없는 최연소 원내 교섭단체 대표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가의전서열 7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 역시 최연소 기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당 대표와 당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초대하여 오찬을 함께 하였다(사진=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당 대표와 당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초대하여 오찬을 함께 하였다(사진=국민의힘)

대선·지선 모두 이겨...향후 어디로?

이 대표는 지난 3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먼저 지난 3월 9일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가 이재명 당시 후보를 0.7% 차이로 꺾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대표는 정치 인생 10년 동안 이렇게까지 당황해한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개표 중반까지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해하다, 결국 3월 10일 새벽 4시경 윤 후보가 승리를 확정짓자 그때야 표정이 폈다. 

이로써 최연소 집권 여당 대표가 됐으며,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모든 선거구에 국민의힘 계열 정치인이 당선되며 대선 승리에 전승 재보궐 선거를 이끈 당 대표가 됐다.

이 대표는 선거 직후인 3월 10일 낮에 윤석열과 도시락 회동을 가진 뒤 바로 광주로 내려가 오후 6시 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광주 남구 백운교차로에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손 팻말을 들고 퇴근길 시민에게 인사했다. 이 대표는 “광주 시민 여러분이 윤 당선인에게 소중한 한 표를 모아줘서 저희가 당선됐다”며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보수정당 대통령으로서는 역대 최고의 표를 얻게 됐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후 열린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며 이 대표의 어깨에는 날개가 달렸다.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12:5, 재보궐 5:2 등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호남권에서도 후보들이 모두 선거비용 보전이 가능한 15% 이상 득표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이 대표는 저번 대선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선거 전략을 통해 국민의힘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업계의 평이 지배적이다. ▲지민완박 ▲경기도망지사 ▲이재명 김포국제공항 이전 공약 논란의 비판 ▲윤형선의 25년vs이재명의 25일 등 다양한 이슈를 선점해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를 견제했다. 

게다가 선거 막판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윤석열 선거개입 탄핵 발언에 즉각적인 기자회견으로 맞대응하여 보수 지지층 결집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호남 지지율 15% 이상 획득 및 전남, 전북, 광주 광역비례대표를 각각 1석씩 획득, 기초자치단체 비례대표에서는 전주, 익산, 군산, 순천에서 각각 1석씩 획득하며 당대표 취임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서진 정책의 성과로 나타냈다.

특히나 경기도에서 비이준석계로 노선을 굳힌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 김용남 수원시장 후보, 구혁모 화성시장 후보 모두가 낙선하고, 접전 지역에서 이 대표의 유세를 요청한 후보들은 상당수가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써 이 대표는 2021년 재보궐선거, 20대 대선, 8회 지선 승리에 모두 기여한 정치인이 됐고, 대선과 지선을 연달아 승리한 당대표라는 굵직한 타이틀을 얻게 됐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했음에도 정당혁신·공천혁신에 고삐를 더 당기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최재형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당대표에 오르자마자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 이 대표의 성과는 무척 눈부셨다. 기존 국민의힘 지지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2·30대 남성을 끌고 온 것과 함께 젊은 감각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에게는 당대표를 넘어선 무언가가 보인다. 자신은 당대표 재선에 나설지, 그동안 노크해왔던 노원구 병에 출마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의 무게감은 이전과 다르다. 향후 그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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