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개성·완벽한 연출 갖춘 8작품 소개

제43회 서울연극제 통합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제43회 서울연극제 통합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CEONEWS=최재혁 기자] 1977에 시작한 서울연극제는 43년의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 현대 연극의 흐름과 방향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공연 예술 축제로 알려져 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연극은 ‘로맨스 코미디’ 장르가 대부분이라면, 서울연극제는 장르의 다양성을 충분히 갖췄다. 여기에 서울연극협회에서 고르고 골라 선정한 8작품은 모두 독특한 개성과 완벽한 연출을 소지해,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반쪼가리 자작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반쪼가리 자작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잔혹동화·동춘 서커스 넘나든 ‘반쪼가리 자작’

옛 조상들은 저잣거리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며 웃고 즐겼다. 평소에는 쳐다볼 수도 없는 저 '윗님들'의 대단한 이야기부터, 서민들의 그렇고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당시의 '배우'인 왈패들은 마음껏 선보였다. 삶이 팍팍한 조상에게 공연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이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은 이탈로 칼비노의 원작 소설을 극으로 표현했다. 전쟁에 참가한 청년 '메다르도 자작'이 불의의 사고로 반쪽으로 나뉜 기형적인 서사를 가졌다.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져 살아남은 메다르도는 각각 선과 악을 대표하며 인간의 이중성을 선보인다.

​자칫하면 어두울 수 있는 연극의 주제와 이야기는 어수룩하고 남루한 '광대'를 통해 진행된다. 젊고 늙은 남자와 여자 광대는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인형극까지 선보이며 메다르도의 슬픔과 광기,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마치 옛 조상들이 광대를 통해서 웃고 즐기듯이 말이다.

​여기에 각 광대가 번갈아가며 메다르도를 연기하고, 서로 속삭이거나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며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특히 선한 메다르도가 등장해 '태평성대'가 열리는 줄 알았지만, 도축업자에게 살생을 금하라는 등 이루어질 수 없는 꼰대와 같은 말만 토해내는 상황 자체를 즐겁게 만든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 커튼콜 후 막간 공연이 진행 중이다(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반쪼가리 자작 커튼콜 후 막간 공연이 진행 중이다(사진=최재혁 기자)

 

마냥 웃긴 극이라면 많은 사랑을 얻을 수 없다. 2017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연극 '반쪼가리 자작'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자랑한다. 그중 김선권 배우는 역할 때문인지 민머리 스타일을 취했는데, 악한 메다르도를 연기할 때 무대가 아닌 '현실'처럼 느껴진 장엄한 모습을 펼쳤다. 게다가 위엄 있는 목소리와 광기 서린 눈빛과 웃음은 그야말로 '폭군' 그 자체였다.

​대체로 즐거운 분위기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내용 자체의 어두움 덕에 '잔혹동화'같은 연출도 이어진다. 그야말로 잔혹동화와 동춘서커스를 넘나드는 연극 '반쪼가리 자작'이다.

​메시지 또한 잊지 않은 반쪼가리 자작은 결국 선과 악이 합쳐졌음에도 '태평성대'를 이루지 못함을 전한다. 이 세상은 뛰어난 한 인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유기적 세상임을 밝힌다. 영웅이 태어나기 위해 수많은 피가 바쳐졌음을 기억하며 연극은 마무리 된다.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사진=서울연극협회)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사진=서울연극협회)

노 페인 노 게인...‘타자기 치는 남자’

아픔은 인간을 더욱 성장시킨다.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이라는 말처럼 뭔가를 얻으려면 고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원하는 걸 쉽게 얻지 않았다. 4·19 김주열의 아픔, 5·18 광주의 눈물, 6월 항쟁의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통을 통해 민주화를 얻었다. 이와 함께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고통과 아픔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작문학원을 운영하는 '문식'은 깊은 달빛을 안주 삼아 술을 한 잔 하려는데, 눈앞에 웬 사람이 있어 깜짝 놀라 주저앉는다. 그 사람은 바로 '경구'로, 30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맞춤법을 잘 몰라 찾아온 것이다. 다소 당황스러운 문식은 "얼마든지 드리겠다"는 경구의 말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가입서를 작성하는 도중 직업란에 '공무원'을 발견한 문식이 되묻자, 경구는 자신이 종로경찰서 반공팀에 속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갔던 문식은 금세 쫙 찢어진 눈초리로 경구를 노려보며 대뜸 '숙제'를 주겠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이면 덥석 복종하는 경구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등 고전문학 5권을 받게 된다. "2주 안에 다 읽고 독후감도 써오세요"라는 문식의 말에 겁먹은 경구는 "...넵!"이라며 억지로 웃어본다. 아무래도 문식은 경구를 떨쳐내기로 한 것 같다.

경구는 엄청난 노력파다. 그 어려운 책을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읽어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찾는다. 그러면서 그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똑똑해지고 지혜를 얻을 줄 알았더니, 기존에 알던 것들이 의심이 되고 자꾸만 세상이 어지럽게 느껴지네요"라며 난색을 표한다. 이에 문식은 "어느 경찰이 순수이성비판을 읽기라도 했겠어요"라며 그를 위로한다.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매일 술에 빠져사는 문식은 뭔지 모를 죄책감에 빠져 산다. 글을 쓰다가도 이내 접고 자꾸만 술에 취하기만 한다. 이때 한 손님이 찾아온다. 얼굴 한쪽에 짙은 화상 자국이 있고, 한 쪽 다리를 저는 바로 '형원'이다. 

​형원은 극의 배경인 1980년대 존재했던 '삼청교육대'에서 갖은 고문과 폭행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그는, 누군가의 모함으로 교육대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사람 취급은커녕 동물만도 못하게 살았다. 그 때문에 애국가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고,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이 파멸적인 분노만 소유했다. 단지 그를 모함한 사람에게 복수하려고만 할뿐이다.

​그를 모함한 사람은 바로 문식이다. 문식은 작문학원을 차리기 전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문제아' 한 명만 적어 내라는 '윗선'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형원'을 적어냈다. 적을 때만 해도 고작 '정신교육' 몇 시간 받고 풀려날 줄 알았기에 부담 없이 적었지만, 그가 삼청교육대로 간 소식을 듣자 죄책감에 교직을 내려놨다.

​형원에게는 문제아를 적어내라는 윗선의 지시보다, 자신의 이름을 적은 문식에게 복수의 칼을 갈았다. 학창시절 돈이 없어 도시락 몇 번 훔쳐 먹은 게 다인 그와 달리, 반에는 주변 친구를 괴롭히고 돈을 뜯는 못된 친구가 있었다. 형원과 그 친구는 돈이 없고 많음이라는 차이가 있었고, 문식도 이미 가진 게 없고 어려운 삶을 사는 형원을 적는 게 마음 편했을 것이다.

​문식을 죽이는 게 가장 쉬운 복수라고 여긴 형원은 자신의 깊은 숙원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문식의 시골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부터 노부모까지 손대기 시작한다. "제발 부모님만은 건드리지 말고, 너를 이렇게 만든 나한테만 분노를 풀어"라고 문식이 말하자, 형원은 그를 의자에 묶어 식칼로 위협한다.

​칼날이 자신의 가슴팍으로 들어오려 하자 문식은 찔끔 눈을 감지만, 이내 비명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형원이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내가 죽어가는 걸 똑똑히 지켜보세요. 진짜 지옥이 뭔지 천천히 느껴보라고요"라며 손목을 재차 긋는다. 이때 경구가 등장한다.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는 세 남자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성장 이야기다. 경구는 배움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실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문식은 경구와 형원을 통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형원은 파멸적인 복수를 택한 게 아닌,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 않고 문식을 용서할 수 있게 됐다.

​성장은 고통을 양분으로 피어난다. 세 남자는 고통 속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많이 힘들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잣대로 세상을 보다 포근하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면 됐다.

우투리 가공할만한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우투리 가공할만한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우투리: 가공할 만한’ 재해석한 설화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는 지배계급의 수탈과 탄압에 대한 하층민의 요구이자 바람이다. 태어난 게 죄처럼 느껴질 정도로 신분의 차이와 태생부터 몸에 밴 가난의 냄새는 계급이 없는 곳에서도 위아래가 나뉜다.

연극 '우투리'에는 5개의 도시가 마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처럼 각각의 계급을 상징한다. 4도시 중에서도 빈민가에 해당하는 '짙은 갈색 시멘트'로 지어진 집에서 태어난 '3'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지배구조가 억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체제에 순응하고, 하물며 3의 엄마는 자아를 잃은 채 세탁소에서 주어진 일만 기계처럼 처리할 뿐이다.

단짝 '2'도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활용할 생각을 못한 채, 아버지 빵가게를 물려받아 '주어진 삶'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이를 받아드릴 수 없는 3은 4도시를 떠난다.

​기계를 보는 눈이 뛰어난 3은 '4'를 만나 처음으로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4가 사망하고 3도 교도소에 갇힌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교도소에서 중앙정부 저항군 대장 '1'과 '5'를 만나, 자신이 머물 곳을 찾는다. 그러나 1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저항군을 이용할 뿐이지, 진정한 자유의 해방을 목표하지 않는다.

연극 우투리 가공할만한에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우투리 가공할만한에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우투리는 하층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상징'과 같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삶에서 나를 구원해줄 건 신 혹은 영웅이다. 이에 3은 자신이 직접 '영웅' 우투리가 되기 위해 날개죽지에 날개 흉터를 그리며 설화를 재현해낸다. 단지 자신과 같은 시민들이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되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인다면, 이토록 힘들 이유가 없다. 정부를 무너뜨리면 대다수의 시민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 3은, 자신이 만든 무기가 시민 스스로를 헤치는 걸 목격한다. 3이 만든 총과 폭약 아래로는 짙은 피비린내와 전쟁으로 굶주린 노인과 아이들뿐이다.

​이러한 3과 주변인의 고통과 깨달음을 '연극'만의 입체적인 연출로 관객에게 깊은 영감을 안겼다. 기존의 연극 연출은 배우가 대사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우투리는 배우가 돌아가면서 내레이션을 맡는다. 자칫하면 흐름을 끊고, 제4의 벽이 허물어지는 문제를 소지하는 내레이션은 소설과 같은 '문학적 표현'으로 관객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돕는다.

​게다가 행위예술적인 몸동작을 선보이는데, 3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마다 다른 배우들이 '무용수'와 같은 춤을 선보인다. 또 극중 4가 간질을 일으킬 때마다 아름다운 춤으로 표현해, 더욱 안타까움을 더한 작품이다.

자본2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자본2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조세도피처 다룬 ‘자본 2: 어디에나 어디에도’

전 세계 10%의 인구가 자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벌고 모았기에 자본의 차이가 이토록 심한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들만의 은밀한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당신에게 언론은 어떤 의미인가. 뻔 한 내용을 퍼나르고, 가십거리에 주목하는 '광고'에 먹고 사는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딱히 변명할 말은 없다.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돈'에 집착하지 않고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뛰는 기자도 무수히 많다는 점만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토비아스 형제'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기자 그 자체인 듯하다.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며, 조세도피처로 불리는 그들의 세금 탈루를 추적한다. 워낙 유명한 그들이라 가는 곳마다 벌벌 떠는 기업인을 만날 수 있는데, 어느 날 '존 도우'라는 사람에게 막대한 양과 질의 정보가 찾아온다. 그 정보는 멀게는 한 나라의 국왕부터 연예계 슈퍼스타까지, 세계를 내로라하는 유명인의 세금 탈루가 담겨있다. 

조세도피처의 중심에는 로펌 '모저 폰타나 다이너스티'가 함께 한다. 막대한 돈만 소유했다면 그 사람의 인성이 잘못됐든, 범죄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산을 관리한다.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기업 속의 기업을 낳은 후, 실소유주를 극비리에 숨겨 재산을 은닉해준다. 토비아스 형제와 함께하는 전 세계의 기자는 모저 폰타나 다이너스티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며, 그들의 은닉 재산을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연극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자본 2: 어디에나 어디에도'는 토비아스 형제와 존 도우의 만남부터 모저 폰타나의 몰락까지 한 구성에 담았다. 중간에는 시리아의 난민이 겪은 참상을 낱낱이 보여주며 조세도피처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나게 연출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연출된 연극은 다소 집중도가 떨어졌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 안에 담으려고 한데다, 시리아의 난민 등에서 불러오는 고통을 관객에게 공감시키기 위해 보여줄 게 너무나 많았다. 또 연극 특유의 연기, 연출 방식이 다큐멘터리와 만나니 무척 과장된 듯해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 포스터(사진=서울연극협회)

​여성국극...‘베로나의 두 신사’

왠지 '셰익스피어'하면 내용이 어려울 것만 같으면서, 이해는 쉬운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그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어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중 비극과 희극, 어디에도 위치하지 않는 '베로나의 두 신사'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을 다루며 전반적인 인간사를 다룬다. 극단 여행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창극을 베이스로 한 '여성국극'을 펼치며, 코믹한 무대를 준비했다.

마치 왈패가 한데 모여 춤추고 노래하듯이, 10명의 배우는 각자 맡은 역할을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최대한 멋있게 연기하며 캐릭터를 돋보이게 한다. 게다가 대부분 남성 캐릭터임에도 연기하는 모든 배우가 여성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성별이 바뀌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를 펼치는데다, 극이 흐를수록 다른 점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즐거운 분위기의 공연이 흘렀다.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 커튼콜 모습(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 커튼콜 모습(사진=최재혁 기자)

서울연극제를 즐기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아직 연극이 죽지 않았구나’로, 연극제 내내 수많은 관객이 객석을 가득 매웠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300석이 넘는 객석이 가득 차는데 연극을 사랑하는 기자의 마음이 무척 뿌듯했다. 아마 서울연극제의 작품성을 인정하기에 나온 결과가 아닐까? 벌써 43회 째 진행 중인데, 서울연극제를 처음 들어본 당신! 내년에는 서울연극제에 참석해 뛰어난 작품성과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얻어보는 건 어떨까?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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