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주목 받은 ‘이창동 특별전’
여행객 향한 배려가 아쉬웠던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전주국제영화제)

[CEONEWS=최재혁 기자] 2년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해제되고, 5월 2일을 기점으로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까지 사라지며 사람들간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 시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23번째를 맞이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국)’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일종의 특혜를 얻게 됐다. 객석 제한이 사라지고, 수많은 관객이 찾아오는 만큼 상영장이 대폭 늘며 진정한 영화 축제로써 자리매김한 ‘전주국’을 다녀왔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사진=최재혁 기자)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사진=최재혁 기자)

‘전주돔’서 열린 호화 개막식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국)’는 지난 28일 목요일에 열린 개막식을 기점으로 성대한 막을 올렸다.

개막식에 참가한 관객만 약 2,300명이고 게스트는 150여명 가까이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 약 6시부터 시작된 레드카펫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는데, 개막작 ‘애프터 양 After Yang’의 ‘저스틴 H. 민 배우’와 특별전이 열린 거장 ‘이창동 감독’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이와 함께 등을 양껏 오픈한 시원한 드레스와 함께 환한 웃음으로 인사한 ‘박하선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개막식은 전주돔이라는 곳에서 열렸는데, 최근 핫플레이스로 뜨겁게 떠오른 ‘객리단길’ 한복판 주차장에 있어 다소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일종의 거대한 하우스처럼 생긴 전주돔이라 더욱 의심이 들었는데, 막상 들어서니 잠실운동장과 같은 웅장함과 사운드에 부정적인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전주국제영화제 관람 티켓이 모두 이창동 감독의 영화다(사진=최재혁 기자)
전주국제영화제 관람 티켓이 모두 이창동 감독의 영화다(사진=최재혁 기자)

‘이창동’과의 대화

올해 전주국은 이창동 감독의 특별전을 진행하며, 그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창동의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시 등 필름으로 촬영된 작품을 ‘리마스터링’하며 새롭게 내던졌다. 이 감독이 직접 관객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주어져, 자연스레 주목을 받게 됐다.

이 감독의 대단한 팬인 기자는 본격적인 영화제가 시작된 금요일 ‘이창동의 영화만 보겠노라’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혹자는 “굳이 영화제까지 가서 옛날 영화를 봐야 하나?”라는 핀잔을 늘어놓지만, 신작이든 구작이든 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기자는 알고 있다. 

또 그의 작품을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감상한지 벌써 몇 년이나 흐른데다, 영화관에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만큼 뜻 깊고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첫 작품은 문소리, 설경구 주연의 ‘오아시스’다. 뇌성마비 환자인 문소리와 사회적 장애인으로 낙인찍힌 설경구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워낙 충격적이고 가슴 따뜻하며 분노도 치솟아 오르는 오아시스를 다시 한 번 감상하니, 두 배우의 열연이 무척 돋보였다. 특히 마음은 따뜻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잘못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설경구의 건들거리는 연기가 무척 돋보였다. 문소리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다음은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인 ‘초록 물고기’였다.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주연으로 목적지도 방향도 정하지 못한 청춘의 이야기를 다뤘다. 오랜만에 그리운 배우들의 젊은 얼굴을 볼 수 있어 기대에 차, 어서 영화가 시작하길 바랐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정진영 배우, 문성근 배우, 이창동 감독이 초록물고기 GV에 나섰다(사진=최재혁 기자)
왼쪽부터 순서대로 정진영 배우, 문성근 배우, 이창동 감독이 초록물고기 GV에 나섰다(사진=최재혁 기자)

그때! 저 멀리서 이창동 감독이 걸어 들어왔다. 문성근 배우와 함께 등장한 그는 관객과 함께 감상하며, 영화가 끝난 후 'GV(관객과의 대화)'까지 진행될 계획이었다. 이미 비슷한 경위로 부산에서 박찬욱 감독을 만난 기자는, 이창동 감독을 만나니 가슴이 벌렁벌렁 거렸다. 벌써부터 ‘질문’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영화를 파고들었다.

초록물고기가 제작되던 때는 IMF가 시작될 시기로, 당시 청년들의 혼란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큰 소용돌이가 쳤다. 이 감독은 이런 청년들의 상황을 더해,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현상만 보이는 청년의 모습을 그렸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GV 시간이 찾아왔다. 이창동 감독은 먼저 말을 꺼내며 “리마스터링이 됐지만, 어떤 문제가 생겨 영화 관람에 차질이 있었다”며 상영 도중 밖으로 나간 이유를 설명했다. 또 “개봉 이후로 초록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라며 “20년이 넘는 시간 만에, 수많은 관객과 감상할 수 있어 뜻 깊게 느껴졌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드디어 질문 시간이 찾아왔다. 질문할 관객을 찾는다는 말에 기자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만큼 귀중한 기회였다. 우선 첫마디로 “감독님,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하자, 이창동 감독은 “감사합니다”라고 꾸벅 인사하며 화답했다.

이어 기자는 “작품 중 막동(한석규)의 미애(심혜진)를 향한 감정과 시선이 계속 달라져요. 오프닝의 분홍색 스카프가 얼굴을 뒤덮었던 첫 만남이 사랑이라면, 조직원이 됐을 때에는 연민의 대상으로 보이고, 마지막 죽음을 맞이했을 때는 미애를 보며 어떠한 에정의 눈길을 보냅니다. 감독님이 의도한 바가 궁금합니다”라고 물었다.

이에 이창동 감독은 “따로 한석규 배우에게 어떠한 연기를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 당시 막동의 나이, 특히나 젊은 남성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여자를 볼 때 인물이 아닌 이미지를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첫 만남도 미애를 봤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얼굴을 덮은 분홍색 스카프, 실체가 보이지 않고 형상만 느껴지는 이미지를 본 거죠. 이후에도 미애를 이미지로 여기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저 누군지도 모를 여인을 바라보며 "내가 왜 죽어야 하는 거지?"라며 언뜻 느껴지는 이미지에 질문을 던지는 거죠”라며 기자가 생각한 이유와 거의 흡사한 답변을 들었다.

이후 질문자에게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이자, 칸 영화제 수상작인 ‘버닝’의 대본집과 이 감독의 친필 사인이 전해졌다. 기자에게는 무엇보다 뜻 깊은 선물이라, 즉석에서 엉덩이춤이라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문소리 배우 등이 기자회견에 나섰다(사진=전주국제영화제)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문소리 배우 등이 기자회견에 나섰다(사진=전주국제영화제)

이창동의 ‘영화관’

이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 ‘초록물고기’를 보고난 후, 곧장 ‘시’까지 만났다. 시는 1980년대를 호령한 배우 ‘윤정희’가 본명과 같은 ‘미자’를 연기하며 알츠하이머를 앓은 채 손자의 죄를 감싸는 비극을 연기한다. 미자는 영화 내내 현상만을 좇는 이들과 달리, 본질에 다가가며 ‘본다’라는 행동을 1차원적이 아닌, 더 깊은 곳까지 다가간다.

가만 보면 이 감독의 영화는 모두 현상이 아닌 본질을 마주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이 따라갈 수밖에 없어 자극에 무척 취약하다. 이 감독은 GV 시간에 “최근 영화계 주류가 자극만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불러올 뿐이다”라며 “보여지는 것만 느끼게 하는 영화가 아닌, 본 것 너머를 마주할 수 있도록 찍어야 한다”고 자신의 영화관을 설명했다.

그중 영화 ‘시’는 이창동의 본질에 다가가는 듯하다. 문학과 현실의 만남, 시와 영화의 조화는 국어 교사였던, 소설가였던 그의 인생과 마주한다. 또 현상이 아닌 본질을 따라가듯, 시는 읽고 듣는 것만이 아닌 나만의 주관에 따라 그 뜻과 내용이 달라진다. 본질은 누구도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내가 본질에 대해 내린 판단이 곧 나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초록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시’가 상영된 이후 GV가 열렸다. 워낙 열띤 질문 열기로 인해 질문을 던지지 못했지만, 이창동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번은 이 감독이 자신의 영화론에 대해 설명했는데 “영화의 평은 누구나 다르다. 남들은 다 재밌다고 하는 영화도 내겐 재미없을 수도 있다. 좋고 재밌는 영화는 내게 좋고 재밌는 영화다. 그러니 남들의 평에 휘둘리지 말고 내 ‘주관’에 따라 영화를 보길 바란다”라며 대중의 흐름에 휩쓸리지 마라는 생각을 전했다.

이창동 감독이 개막작 레드카펫에 나섰다(사진=전주국제영화제)

또 영화 촬영 기법에 대해 한 관객이 질문하자 그는 “3막이든 뭐든 기법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어떻게 영화로 담아내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영화를 찍게 된다면 기법과 기술에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만큼 표현이 됐는지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작품 제작기간이 긴 이유가 시나리오 작업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 아닌지 묻자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오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써낸 시나리오의 한 문장, 한 단어를 곱씹으며 ‘반드시 들어가야 할 문장’인지, ‘더 알맞은 문장’이 없을지 고민하느라 오래 걸린다고 느끼실 수 있는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3편 연속 봄과 동시에, 그의 영화 이론과 사상을 들으니 이보다 만족스러운 시간이 없었다.

개막식 전경(사진=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전경(사진=전주국제영화제)

아쉬움도 남는 '전주국'

전주국제영화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열린 만큼 수많은 게스트와 관객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그러나 인기를 끌어낸 만큼 아쉬운 점도 보여 씁쓸함이 느껴졌다.

우선 온라인 예매가 인터넷 사이트와 자체 앱으로 이루어졌다. 앱은 전주국에서 야심차게 내민 것으로 보이지만, 예매 말고는 사용처가 딱히 없는 듯했다. 앱으로 영화제 정보를 보기에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또 국제영화제인 만큼 전주 이외의 곳에서 수많은 관객이 찾아왔다. 하루 이틀을 머무는 관객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최소 3일을 머물며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고 갈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기 위해 가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때 기자에게 문제가 생긴다. 숙소에 짐을 맡기거나 자가용을 소유한 관객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뚜벅이 관객에게는 크나큰 짐을 들고 영화를 감상할 수 없다. 

문제는 곧장 느껴졌다.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 내, 여기저기 큰 짐을 들고 온 관객으로 인해 발밑이 붕 뜰 때가 많았다. 짐 때문에 잠시 화장실을 가려는 관객도 불편함을 겪는 듯했다. 이에 많은 관객이 여기저기 짐을 맡길 장소를 찾아보지만, 전주국 측에서는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인력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자원봉사자인지 직원인지 모를 ‘전주국’을 상징하는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무수한 관계자들은 거리마다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인력이 과하게 투입 됐다고 느낄 정도로 길거리에 가만히 서있는 등 아쉬움이 느껴졌다. 만약 남는 공간에 관객의 짐을 잠깐이라도 맡아주기라도 했다면, 모두가 편한 관람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남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로 맞은 영화제답게 즐거움이 더 컸다. 내년에도 반갑게 맞이했으면 좋겠다. 아듀! 전주국!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