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속사정 들으며, 공감 불러 일으켜

2호선세입자_포스터(사진=레드앤블루)
2호선세입자_포스터(사진=레드앤블루)

[CEONEWS=최재혁 기자] 당신은 오늘 회사까지 무얼 타고 갔는가. 자차? 걷기? 버스? 지하철? 집이 인천인 기자는 서울까지 출근하기 위해 ‘신도림역’에서 환승한다. 인구 밀집도로 그 유명한 신도림역은 인천과 경기 남부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시민들로 붐비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신도림역 안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면?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2호선 세입자(?)

어릴 때부터 전철을 운행하는 게 꿈인 ‘이호선’은 오랜 공부 끝에 인턴에 붙는다. 하지만 호선의 여자친구는 정규직도 아닌 이유를 들며, 호선의 한계를 설정 지으며 결별을 선언한다. 시무룩한 호선은 술에 잔뜩 취해 전철 차고지인 ‘신도림역’까지 가게 됐는데, 껌껌한 암흑 속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란 호선은 급하게 몸을 숨긴다. 이윽고 옆 칸에서 4명의 남녀가 등장하고, 자연스레 제집 안방인 듯 할 일을 한다. 정신없는 호선은 가방을 놓고 와 다시 찾으러 가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이곳에서 사는 것만 같다. 

지하철역에서 사는 노숙자는 알아도, 지하철 내부에서 사는 노숙자는 처음이다. 이런 엄청난 정보가 기회라고 여긴 호선은 곧장 역장에게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역장은 본사에 알려지면 목숨이 위험하다며, 내막을 잘 파헤쳐보라고 조언한다.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호선은 그들에게 나가 달라고 협박 아닌 권유를 내밀지만, 이미 기 싸움에서 지고 들어간다. 그들은 ‘월세’까지 내면서 살고 있다며, 우리를 쫓아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한다. 방법을 짜낸 호선은 그들과 함께 살며 내막을 파헤치기로 한다.

2호선 신도림역에 사는 세입자 4명은 각각 구의, 역삼, 방배, 성내다. 뭔가 익숙하기도 한 이름은 2호선을 지나는 역들로, 본인들이 마지막에 탄 역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할아버지 구의, 중년 남성 역삼, 중년 여성 방배, 젊은 여성 성내까지. 한데 모으면 가족 구성원처럼 보일 정도다.

호선은 외지인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여자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역삼에게 알려주고, 구의의 꿈을 들어주고, 방배에게 월세를 내며 가까스로 구성에 들어간다. 여기서 ‘호선 상담소’를 오픈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당신이 빛나기 위한 '그림자'

신도림역 차고지에서 사는 그들은 ‘지하 밑의 그림자’와 같다. 해가 뜨는 밝은 낮에는 지하철을 돌며 물건을 팔고, 산에 가서 약초를 캐온다. 운행이 끝나는 밤이 되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자기 시간’을 갖는다. 사회인에게 밝은 낮이 자신들의 시간이라면, 이들에게는 어두운 밤에 본격적으로 자유가 찾아온다.

우리는 누구나 땅밑을 바라보고 살기보다는, 저 높은 태양의 밝은 빛을 따라가길 원한다. 나보다 못난 사람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실패’한 그들이 하찮게만 보인다.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2호선세입자_공연(사진=레드앤블루)

호선의 눈에는 그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우선 역삼은 힘든 생활을 겪다 우연히 방배를 만나게 되는데,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 ‘지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방배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의 손을 피해서 지하로 들어왔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본인을 때려, 최악의 남자가 술 마시는 사람일 정도다.

구의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아 이곳까지 찾아오게 됐다. 자식을 한 몸 바쳐 키워냈지만, 막상 연로해지자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아 직접 집을 나왔다. 이후 옛 주소로 찾아갔더니, 자식들은 이미 이사 간 지 오래다.

성내는 전 남자친구를 잊지 못했다. 정말 사랑하던 남자친구가 본인으로 인해 지하철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성내는 매일 밤 ‘잠실새내역’으로 나가 남자친구를 기다린다. 성내는 잠실새내역의 옛 이름으로, 그가 죽기 전까지 성내였다.

이처럼 지하 밑 그림자들의 삶이지만, 당연히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걱정과 근심 그리고 나름의 행복이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정도의 한계가 다를 뿐이다.

연극 ‘2호선 세입자’는 이처럼 사회의 약자를 조명하며 우리네 사람들을 비교하고 판단하길 거부한다. 현재 일부 지하철역에서는 ‘전국장애인연합회’의 시위로 운행에 차질이 일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거칠고 투박해서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나, 그들의 불만과 요구는 잘못되지 않았다. 2호선에 사는 세입자가 바란 건 안전한 ‘보금자리’와 차별하지 않는 ‘세상’이지 않을까. 

이처럼 코믹 서스펜스에 사회적 약자를 조명한 연극 ‘2호선 세입자’는 매일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2호선세입자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재혁 기자)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