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1호’ 삼표산업...수사만?
‘현대재해법’ 악명, 떨칠 수 있나?

동국제강 포항공장 산재 사망사고 현장 찾은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사진=강은미 의원실)
동국제강 포항공장 산재 사망사고 현장 찾은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사진=강은미 의원실)

[CEONEWS=최재혁 기자]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됐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지난 2021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올해 1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중대재해법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를 시작으로 입법이 논의됐었다. 기업들은 강화된 처벌로 인해서인지 더더욱 몸을 사리는 듯했지만, 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당 사례가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

2015년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제1호 삼표산업(사진=삼표산업)
2015년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제1호 삼표산업(사진=삼표산업)

‘1호’ 삼표산업...처벌은?

지난 1월 채석작업 도중 토사가 쏟아져 작업자 3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고가 벌어진 레미콘 제조 기업 삼표산업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현장 관리소장 1명과 삼표산업 법인을 입건하고, 곧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1호 수사에 착수했다. 

1월 29일 채석작업에 열중이던 천공기 기사 2명과 굴착기 기사 1명은 약 30만㎥의 토사가 쏟아져 숨지고 말았다. 2명의 천공기 기사 중 한 명은 입사한 지 겨우 6개월 된 28살 청년 노동자였고, 함께 작업하던 천공기 기사는 2021년 12월에 입사해, 겨우 두 달 만에 사망하게 된 52살 노동자였다. 굴착기 기사도 55살 지입차주였다.

삼표산업에서 벌어진 사고는 이번 한 번이 아니었다. 2021년 6월 포천사업소에서 비산방지망을 작업하던 노동자는 갑작스레 떨어진 바위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도 작업 전 위험 요소를 없애고 시작했어야 했다는 점에서 양주 사고와 유사하다.

삼표산업은 포천 사고 이후로 방호망 설치와 위험물 방지 조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면 법 위반으로 판단될 수 있다.

삼표산업의 삼표그룹은 이미 사망사고가 두 차례나 났던 삼표산업을 제외하고 2020년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산재로 두 명이 숨지고, 그 전년도에는 삼표피앤씨에서도 산재로 숨지는 등 계열사 전반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후 9일 만에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가 검찰에 입건됐다. 그룹의 대표이사가 입건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지만, 삼표산업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기에 쟁점의 요지가 남아있다.

삼표산업의 지분 대부분을 지주사 삼표가 갖는 구조긴 하지만, 삼표그룹 등 오너 일가가 삼표산업에 대해서 실질적인 권한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처벌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그룹 압수수색까지 본격적으로 들어갔지만, 중대재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수 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자리걸음에 멈춰있는 중이다. 이후 두 달여간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의 출입구는 봉쇄됐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현대건설 정수현 당시 사장이 2015년 건설현장에서 안전 위해요소를 점검하고 있다(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 정수현 당시 사장이 2015년 건설현장에서 안전 위해요소를 점검하고 있다(사진=현대건설)

중대재해기업...‘현대재해법’?

2021년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참사와 올해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건설 현장 외벽 붕괴 등 대형 사고가 연이어 벌어진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이 중대재해법에 적용될지 의문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시점은 27일이었지만, 시행 이후에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외적 상황에 관한 규정은커녕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해설서에도 이런 상황은 안내되지 않았다. 결국 HDC는 법망을 간신히 피해갔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전 회장(사진=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전 회장(사진=HDC현대산업개발)

그러나 같은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건설에서도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 16일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60대 노동자 A 씨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A 씨는 채광이나 환기를 위해 쓰이는 개구부 인근에서 발을 헛디뎌 3m 밑으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사망한 노동자는 협력업체 소속의 지게차 신호수로, 사고 지점에서 지시를 받은 작업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즉 현대건설은 확실한 안전 조치를 취해놨다는 뜻이다.

금속노조가 지난 5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원인 규명과 요구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노조 노동안전보건실 제공)
금속노조가 지난 5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원인 규명과 요구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노조 노동안전보건실 제공)

또 같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에서 40대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자동차 소속 40대 B 씨는 지난 3월 31일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던 중 트럭의 운전석 부분을 기울이고 작업하던 중 프레임 사이에 끼인 후 크게 다쳐 숨졌다. 

B 씨의 사고에 대해 현대차 노조는 “품질관리검사에서 양산을 앞둔 신형 트럭의 유압실린더 이상 여부를 검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검수 업무만 담당하던 B 씨가 회사의 부당한 작업지시로 보정작업을 했다”며 “제품 설계자 등도 없이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해 유감이며, 관련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본 사건에 대해 전북경찰청은 국과수와 합동 정밀 감식을 벌인다고 4월 5일 밝혔다. 이형세 전북경찰청장은 "오는 6일 국과수와 합동 감식을 한다"며 "사전 감식을 했고 최종적으로 재차 감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또한 현대차 전주공장에 작업 중지를 명령하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또 현대제철에서 근로자 1명이 작업 중 금속이 녹아있는 용광로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3월 2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 냉연공장에서 50대 노동자 C 씨가 도금 용기에 빠져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제철소는 생산된 철판을 아연으로 도금하는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용기는 사고 당시 고온의 아연이 액체 상태로 담겨 딱 보기에도 위험천만해 보였다.

C 씨는 도금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를 제거하는 작업 도중 중심을 잃고 용기에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2인 1조 작업이 원칙인 상황에서 동료 작업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망한 사건이라 더욱 안타까움을 안겼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사고대책반을 설치해 관계 기관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신속한 사고 수습과 원인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무엇보다 소중한 인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의 중대재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건설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중대재해가 발생해 노동부의 특별감독을 받았고, 현대제철 역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당진공장에서만 최근 5년간 무려 중대재해로 6명이 숨질 정도라, 2021년과 2019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또 현대차그룹에서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산재로 사망자가 176명으로 30대 대기업 중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가 큰 사업을 많이 하다 보니 위험 요소가 많았기에 사고사례를 공유하면서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통제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이 분명히 있는 듯하다”고 다소 아쉬운 대답을 내놨다.

DL이앤씨 안전체험학교에 설치된 화재진압 체험 교육(사진=DL이앤씨)
DL이앤씨 안전체험학교에 설치된 화재진압 체험 교육(사진=DL이앤씨)

대·중·소 가리지 않는 ‘중대재해법’

중대재해법 대상 기업은 대·중·소 기업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등장하고 있다.

먼저 지난 3월 동국제강의 협력업체 직원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철강산업으로 정평이 난 포항에서 벌어진 첫 중대재해법 기업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천장 크레인에 올라타, 작업 중이던 30대 근로자 A 씨가 벨트에 몸이 감기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한 직후 작업 중지를 명령했으며, 사고원인과 함께 중대재해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사항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원청의 책임 적용 여부를 따져서 중대재해법 관련 입건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크레인이 왜 작동했는지, A 씨의 작업 환경에 어떤 안전 문제가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현재 관계 기관과 함께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동국제강 포항공장 전경(사진=동국제강)
동국제강 포항공장 전경(사진=동국제강)

한편, 과천 지식산업센터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50대 노동자 B 씨가 사망했다.

지난 4월 6일 과천지식산업센터 공사장에서 굴착기 신호수인 B 씨가 토사 반출 작업 중인 굴착기 장비 후면과 철골 사이에 껴 안타까운 비극이 벌어졌다.

원청은 DL이앤씨로, 지난 3월에도 ‘GTX-A’ 5공구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사망한 적이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사고를 확인하자마자 즉시 해당 사업장에 작업 중지 조치를 내리며 사고원인을 정확하게 조사 중이다.

충북 진천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도 40대 노동자 C 씨가 기계에 끼여 숨지고 말았다.

지난 4월 5일 충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C 씨가 사출성형기 압축 작업 도중 기계에 끼여 사망하고 만 것이다. C 씨는 사출성형기 내부 이송 기계에 끼여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던 도중, 상황을 모르던 동료가 기계를 작동시키면서 사망하고 만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역시 작업 중지를 조치하며, 중대재해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가장 피해 보는 건 과연 경영인일까?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삶’이자 ‘목숨’이다. 목숨을 대가로 일하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건 억압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축하자는 게 아닐까?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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