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극동 ㈜자람엔수엔지니어링 철도사업지원총괄사장
반극동 ㈜자람엔수엔지니어링 철도사업지원총괄사장

내 고향 울진에는 철도가 없어 기차를 못 보고 자랐다. 기차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다. 전세버스로 설악산을 가는고데 북평(현재 동해)역 근처에서 기차를 만났다. 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승객은 또 다른 수학여행단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관광버스였다. 이번엔 포항, 경주를 거쳐 서울을 가는 코스였다. 

그런데 천안을 지나 수원에 못 미쳐 우리가 탄 버스는 앞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나서 나도 앞니 두 대가 부러졌다. 다음 날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 대공원을 갈 예정이었는데 그때도 난 그 지하철을 타보지 못하고 을지로 어느 병원에 남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철도대학을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철도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울진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가려면 영동선 분천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가는 게 제일 편했다. 버스를 타고 분천에 도착하여 열차를 타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역전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 식사를 한 손님들께 방 한 칸을 제공하며 기차를 기다리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어른과 아이 남녀 구분 없이 적게는 대여섯, 많게는 열 명이 넘게 한방에서 새우잠을 자다 보면 주인이 열차 시간에 맞춰 깨워 주었다. 내려올 때도 똑같았다. 그런 야간열차 추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철도대학 시절엔 기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비일비재해하여 주말이나 방학 때면 친구들과 부산, 강릉, 여수, 목포, 등으로 기차여행을 다녔다. 산으로, 바닷가로, 기차 안에서 다른 여행 일행과 여인들과도 만나 즐거움을 더하곤 했다. 그때 만남이 이어져 결혼까지 한 친구도 있다. 어느 날 혼자 부산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추억을 잊을 수 없다. 

객차 맨 끝 의자 뒤에 서서 가는데 내 옆에 예쁜 아가씨가 오지 않는가? 열차가 한참 달리는데 그녀는 책을 펴서 읽고 있었다. 곁눈질해 보니 책장 넘기는 속도가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용기를 내어 한마디 참견했다. 

“眼光이 紙背를 徹함이네요?” 아 그런데 “빨리 넘기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함이요”하는 게 아닌가? 이게 당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양주동의 수필 ‘면학의 서’에 나오는 글인데 그 한마디로 우린 통했고 그 먼 부산 여행길을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이게 나의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다. 그 후 발령받고 태백선 증산역(현 민둥산역)에 근무할 때 예미역 근처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내가 근무하는 관내에 어느 한 사무실에서 경리업무를 했는데 첫 대면에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가장 어려웠던 대목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엄청 유식해 보였고 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경부고속철도건설이 한창일 때인 2002년에 경부고속철도 운용 요원으로 선발되어 TGV를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 SNCF에 연수를 갔다. 그때 아내는 애들과 함께 따라와 가족 모두가 기차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국경을 넘는 먼 여정엔 야간열차를 탔는데 이층으로 마주 보는 구조여서 4명 한 가족이 한 칸에 탈 수 있었다. 그때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번갈아 손짓과 발짓으로 승무원과 소통했던 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여행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여행이 내 생에 가족과 함께 한 가장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파리의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 벽에 붙은 광고엔 남녀 한 쌍이 목걸이를 함께 차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구슬 17개가 숫자를 넣어 표시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현지인 통역사에게 물었더니 그 광고가 ‘지하철(17개 노선)을 많이 타라’는 광고라 했다. “사랑은 지하철로” “지하철로 사랑하세요” 뭐 그런 식이었다. 그 이야길 듣고 보니 참 파리지앵다운 발상으로 낭만과 운치가 있어 보였다. 그 광고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철도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기차를 타면 젊은 청춘남녀는 연인의 사랑 속삭임 장소로, 가족은 끈끈한 가족 사랑의 결속 공간으로, 어린이는 소풍 가는 추억의 여행길로, 모두가 가장 가슴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저장의 공간이 된다. 

그런 공간이 바로 기차이고 철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함께 이동하여 연결이 되는 곳, 그래서 철도는 연결이고 소통이고 사랑이다. 기차를 타면 공간이 지배에 의해 소통이란 매개체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기차가 소통이고 그 소통의 통로가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2002년 프랑스 SNCF 연수길 그때 그 파리 지하철 광고가 떠오른다. ‘사랑은 지하철로’ ‘철도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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