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클래식에 친숙해지길"

.지브리 스튜디오 로고(사진=지브리 스튜디오)
.지브리 스튜디오 로고(사진=지브리 스튜디오)

[CEONEWS=최재혁 기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본의 제작사는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가 아닐까. 세계적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필두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이웃집 토토로(1988)’, ‘모모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영화가 즐비하다.

지브리의 영화는 영상미, 연출, 이야기와 함께 작품에 찰떡궁합인 OST로 유명하다. ‘이웃집 토토로’, ‘인생의 회전목마’, ‘언제나 몇 번이라도’는 이름은 몰라도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곡일 정도다. 지브리 OST의 인기는 개봉한 지 수십 년이 흘러도 아직 팬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을 정도다.

음악은 듣는 행위로만 과거의 순간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지브리 OST를 들으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며, 영화를 보는 그때의 ‘나’까지 함께 찾아온다. 왠지 모를 안식과 당시 느꼈던 황홀함, 과거의 포근함을 느끼던 내 모습과 정겹던 풍경까지. 음악은 과거를 맞이해준다.

국내 지브리 팬들은 OST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일본을 포함한 세계에서 간혹가다 열린 연주 콘서트와 ‘디지털’ 음원을 듣는 것뿐이다. 이때 서울에서 클래식과 지브리 OST의 결합 소식을 알렸다.

지브리나잇 콘서트 공연 모습(사진=최재혁 기자)

서울 충정로 부근에 있는 ‘에스파스클래식’에서 클래식을 통한 지브리 OST 콘서트인 ‘지브리나잇 콘서트’가 열렸다. 서울대 음대 출신 뮤지션이 아름다운 선율을 전한다. 

약 1시간 전후로 열리는 공연은 1부가 넘어가는 잠깐의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쉼 없이 달린다. 게다가 서울대 음대 출신이자, 인디애나주립대까지 총 15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춘 뮤지션의 공연이라 ‘디지털 음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뮤지션의 기획대로 변주되는 음악에 몸을 맡기면 나도 모르게 과거로 소환되고 있었다.

지브리 OST의 특징은 발랄하면서 몽환적이고, 황홀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가득하다. 이처럼 그날의 내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음악을, 세 뮤지션은 완벽히 소화해냈다. ‘이웃집 토토로’ 같이 밝은 곡은 신나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고, ‘인생의 회전목마’는 몽환 속에 빠져들게 했다.

지브리나잇 콘서트 공연 모습(사진=최재혁 기자)

또 하이라이트는 영화 ‘가쿠지로의 여름(2022)’의 메인 OST인 ‘Summer’의 피아노 독주였다. 다소 단조로운 반주라 피아노 입문자에게 추천되는 곡이지만, 피아니스트 손에 곡이 들어가자 수준이 달라졌다. 이는 마치 시중에 파는 라면도 내가 만드는 것과 5성 호텔급 주방장이 만드는 차이가 아닐까? 곡을 감상하는 내내 곡의 ‘파동’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 마치 파도에 휩쓸리는 듯했다.

평소 접하기 힘든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매력에도 빠졌다. 특히 바이올린이 조금씩 몸을 일으킬 때마다 음의 높낮이가 쉴 새 없이 변하는데, 자꾸만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이에 기자는 이토록 신비롭고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지브리나잇 콘서트’의 뮤지션 삼인방을 만났다.

김진록 비올리스트, 배필호 피아니스트,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 대화 모습(사진=에스파스클래식)

Q. 어떻게 ‘지브리나잇 콘서트’를 시작하게 됐나요?

김진록 비올리스트: 현재 제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느 날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가 학원의 공간이 여유로운 편이니까 연주회 극장으로 쓰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줬어요. 마침 클래식 업계에 살롱 콘서트가 유행이기도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클래식 공연을 선보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대중에게 클래식은 생소하게 다가가잖아요? 게다가 노래도 아는 노래를 듣는 게 훨씬 와닿잖아요. 솔직히 연주하는 저희도 클래식이 너무 좋지만, 청중에게 생소함보다 와닿을 수 있는 친근함을 주자는 생각으로 대중성 있는 지브리 OST를 기획하게 됐어요. 또 클래식 악기를 접할 기회도 함께 드리고 싶었어요.

배필호 피아니스트: 전문 연주자로서 평생 클래식을 공부하고 연주해왔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서 감동적이고 포근한 지브리 OST를 알게 됐어요. OST를 지인, 주변 이웃분들과 함께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열려서 너무 행복하고 기뻐요.

Q. 바이올린의 선율을 이토록 가까이서 들은 게 처음인데, 너무 매력적이에요.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 만 4세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클래식 공부에 매진하니 다른 장르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적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지브리 OST를 접하게 됐는데 처음 경험하는 세계라 너무나 다채롭게 느껴졌어요. 대중에게 친근하고 듣기 편하고 좋은 지브리 OST를 클래식 연주한다면, 클래식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분이 클래식 연주를 떠올릴 때 “듣는 사람이나 듣는 거 아냐?”라며 왠지 모를 두려움에 한 발 짝 물러서곤 하잖아요. 사실 클래식이 어려운 게 아니라, 단지 접할 기회가 부족했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연으로 청중이 “아, 바이올린은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구나”라고 생각하며, 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될 기회라고 생각해서 무척 뿌듯해요. (웃음)

또 지브리 OST를 클래식 악기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높은 음역을 구사하는 바이올린 소리기 때문에 풍부한 표현을 느끼실 것 같아요.

클래식이 생소한 대중에게 지브리 OST로 친근함을 선사하고자 하는 세 뮤지션은, 신기하게도 ‘지브리 OST’가 생소했다고 전했다. 대중과 뮤지션의 친근함과 생소함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지만, 상대를 위한 마음은 같지 않았을까.

김진록 비올리스트 대화 모습(사진=에스파스클래식)
김진록 비올리스트 대화 모습(사진=에스파스클래식)

Q. 세 분의 인연이 궁금해요.

김진록 비올리스트: 저희 셋은 대학교 동기고요. 대학원도 함께 나왔고, 알고 보니 셋 다 유학길을 떠났었는데 그곳이 인디애나주립대였죠.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배필호 피아니스트는 알지 못했는데, 모두 인디애나에서 만났죠. 이후, 마치 짜 맞춰진 듯이 각자 귀국길에 오르며 서울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랑은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와서 15년 지기에, 배필호 피아니스트와도 오랜 인연을 쌓고 있어요.

Q. 앞으로 콘서트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김진록 비올리스트: 우선 콘서트를 언제까지 할 거라는 건 없어요. 무한이에요, 될 때까지 (모두 웃음) 앞으로 콘서트는 계속할 생각이고요. 지브리 OST 공연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디즈니 OST 혹은 영화 OST 등 대중에게 친근한 클래식 공연을 들려드릴 거에요. 

당연히 연주하는 저희의 의견보다 청중이 원하는 공연 방향성을 충분히 청취한 후에 지브리든, 디즈니든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이에요.

현재 격주로 주말마다 공연이 진행되고 있어요. 앞으로 길면 3주에 한 번씩 진행될 수 있지만, 한 달에 최대 2번 이웃분들이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공연을 개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홍보가 미숙할 수 있지만, 찾아와주신 분들이 주변에 소개해주고 SNS 등에 홍보해주면서 알음알음 오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회차가 진행될 때마다 자리가 채워지고 있는데, 들으신 분들이 “클래식에 새롭게 눈을 떴다” 등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또 지브리 OST뿐만이 아니라 정통 클래식 공연도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많이 찾아주셔서 클래식과 더 친밀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김진록 비올리스트, 배필호 피아니스트,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 대화 모습(사진=에스파스클래식)
김진록 비올리스트, 배필호 피아니스트,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 대화 모습(사진=에스파스클래식)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 아무래도 코로나19 영향으로 많은 분이 움츠려있는 상황인데다, 3월이 유행의 정점이라고 하잖아요. 밖에 나가기 무섭고, 사람이 많은 곳을 찾기 어려워하는 상황인데 클래식 공연은 조용히 감상하는 곳이라 위험이 덜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코로나19로 닫혀있는 듯한 현재 사회에서 외출이 걱정되시겠지만, 잠깐의 용기를 내서 ‘음악 한번 듣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라도 찾아와주셔서, 멋진 클래식 음악을 너무 즐겁게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배필호 피아니스트: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로 벌써 2년 넘게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데다가, 우크라이나 사태 등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어요. 이때 저와 같은 음악가들이 연주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힘과 용기를 드리고, 위안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보람이 없어요.

저를 포함한 뮤지션 모두가 정말 열심히 연습하며 갈고 닦은 만큼, 많이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저희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까 많이 찾아와주셔서 공연 소식과 근황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식 연주자의 꿈이 다소 소박해 보였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접하고, 클래식 악기에 관심을 가지며, 클래식이 그렇게 어려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우리가 매일 듣는 음악과 노래는 쉬워서 듣는 걸까, 자주 접해서 듣게 되는 걸까? 어렵게 여겨지는 클래식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려있을 뿐이다.

오늘은 클래식과 친하지 않은 나지만, 내일은 클래식과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 친숙한 지브리 OST를 클래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지브리나잇 콘서트’는 격주 주말, 충정로 부근 ‘에스파스클래식’에서 만나볼 수 있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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