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향한 이해·공감 불러 일으켜

[CEONEWS=최재혁 기자] 당신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가? 만약 당신의 눈, 귀, 코가 서서히 사라지고, 손과 발 등 감각이 시나브로 사라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감각과 신체 기능에 감사함을 느끼는가? 아마 대부분 주어진 능력과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상실을 경험할 때만 소중함을 느낄 것이다.

사랑 찾아, 자유 찾아 감옥 탈출

난치병인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어 시력과 기동성을 잃은 ‘야코’는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어야 하며, 정해진 시간에 요양 보호사가 찾아온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야코는 볼 수 없고, 걸을 수도 없기에 타인의 힘 없이 집 밖을 나서기 무척 어렵다. 나갈 수 없고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모습을 보면 ‘감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타인에게는 안락한 휴식 공간인 집이, 야코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다.

그런데도 의지를 잃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연인 ‘시르파’ 덕분이다. 하루 중 대부분을 시르파와 통화하며 시간을 보낼 정도로 야코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걸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야코와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시르파이기에 둘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다는 사실이 둘의 유일한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날처럼 전화 데이트를 이어가는 둘은, 야코가 실명되기 전까지 영화광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나누고 있었다. 특히 공포물 장인 ‘존 카펜터’ 감독을 매우 사랑하는 야코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얘기에 신나서 떠들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여성이 그렇듯 공포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든다. 시르파는 영화 ‘타이타닉’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밝히는데, 야코는 “그 영화는 돈만 많이 쓴 평범한 작품”이라고 비난하며 전화를 끊는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전화를 기다리는 야코는 시간이 흘러도 벨 소리가 울리지 않자 몸을 부르르 떨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전화만 기다린다. 평소보다 몇 시간이 흘러 연락이 닿은 시르파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볼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야코는 자신의 몸이 너무나 원망스럽지만, 금세 이겨내며 그를 찾아가기로 한다. 

감옥을 탈출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한 대장정이 시작된다.

타인에 빼앗겨도, 타인에 기대야 하는

다행히 야코의 대장정에는 도우미가 존재한다. 장애인 전용 택시를 통해 무사히 기차역까지 갈 수 있고, 친절한 정류장 직원이 야코의 탑승을 돕는다. 원래라면 야코의 동행 보호자가 옆에 따라다니며 도왔겠지만, 워낙에 급작스러운 야코의 ‘탈옥’이라 누구도 돕기 어려운 상황이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그렇듯 야코에게 선의를 베푼다. 하지만 약자를 지켜보며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틈을 노리는 비겁한 사람도 존재한다. 마치 버팔로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주위를 배회하는 하이에나 떼처럼,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를 기다려 소매치기를 시행한다. 

뜬 눈으로 물품을 빼앗긴 야코는 당황스럽고 참혹한 심정일 법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예측이나 한 듯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미 소매치기는 저 멀리 도망간 듯하지만, 무사히 기차에 탑승한다.

시력을 잃었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아니다. 뿌옇고 흐릿하게 물체의 형상을 볼 수 있는 야코는 자신 앞에 한 남자가 앉은 것을 확인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며 자신의 하차를 도와달라고 하자, 거뜬히 요구를 들어준다.

그러나 선량하다고 느낀 그 남자는 알고 보니 소매치기범이었다. 야코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죽기 싫으면 조용히 있어라”라며 이상한 폐공장으로 몰아세운다. 그곳에서 야코의 금품을 훔치고, 통장 비밀번호를 강요하며 전 재산을 갈취한다.

볼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야코에게 납치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다. 손 쓸 수 없고 어쩔 도리도 없는 야코에게 할 수 있는 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공허한 외침뿐이다. 타인의 자비가 없으면 그는 죽고, 자비를 베풀면 살아남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야코는 “내 모든 걸 줄 테니 핸드폰만 돌려주시고, 나를 폐공장 밖으로 데려다주세요. 내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라며 협상안을 제안한다. 야코에게 많은 돈을 빼앗을 수 없고, 자칫 잘못하면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느낀 소매치기범은 그를 발길질하며 도망간다.

넘어진 야코는 핸드폰까지 함께 떨어지며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타인의 힘으로 밖에 나올 수 있었고, 타인의 힘으로 기차역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타인의 힘으로 자신의 돈을 갈취했으며, 타인의 힘으로 넘어져 죽어가는 상황이다. 

이때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손짓과 작은 신음을 내며 구조 요청을 하는데, 표정은 미묘하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저 개가 나를 도우러 오는 개인지, 나를 물어 죽이러 오는 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극도의 공포감이 조성된다. 야코에게 개는 물론, 모든 다가오는 인간에 두려움을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선량한 사람이 그에게 나타났고, 무사히 야코를 일으켜 세우며 세르파에게 데려다줬다. 마침내 만난 둘은 감격에 젖어 서로를 힘차게 끌어안는다.

야코에게는 그야말로 ‘타인은 지옥’이면서도 ‘타인 덕분에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작은 호의와 작은 무신경함, 작은 힐난이 그들에게 얼마나 크게 돌아갈지 영화는 뚜렷하고 세세하게 담았다. 이에 무서운 장면 하나 없는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며, 장애인의 시선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장애인을 향한 이해와 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3월 10일 목요일부터 전국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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