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연극' 장점 극대화한 연출...뛰어난 연기 공포 더해

[CEONEWS=최재혁 기자] 가끔 어지럽고 머리가 너무 아파 기억을 잃을 때가 있다. 보통은 알코올을 진득하게 들이켤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이 소거된 상태라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나를 구성한다. 지나온 세월이 없었다면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내가 나인 이유는 기억과 추억이 온전히 남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연극 ‘조각’은 자꾸만 기억을 잃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심미성 기억상실증’ 환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연극 조각 공연 모습(사진=조각)
연극 조각 공연 모습(사진=조각)

왜 이리 으슬으슬하지?

은행 강도 ‘희태’와 ‘순철’은 도둑질에 완벽히 성공해내며 큰돈을 손에 넣는다. 그들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빈집에 들어가는데, 방금 다녀온 은행의 은행원 ‘영희’가 몰래 따라붙어 골치를 썩인다. 

우선 영희를 감금하고 도주 계획을 세우는 희태는 약간 모자란(?) 순철이를 답답해하며 망을 보라고 지시한다. 이때 갑작스레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지며 암흑 상태에 빠진다. 워낙 오랫동안 빈집이라 정전쯤은 자주 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두꺼비집을 찾던 희태는 누군가와 부딪힌다. 

왠지 모를 으스스함에 떠는 와중 다시 빛이 들어오는데, 희태의 눈앞에 있는 건 머리를 쭉 늘어트리고, 온통 검정으로 치장한 여자였다. 희태의 목을 조여오는 여자의 손길에 그는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다 갑작스레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연극 조각 공연 모습(사진=조각)
연극 조각 공연 모습(사진=조각)

집 안은 다시 불이 꺼지고 희태의 기겁하는 소리와 함께 재차 빛이 들어온다. 침대에서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킨 희태는, 자신이 쓰러질 때만 해도 마룻바닥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이상함을 느낀다. 순철과 영희는 “무슨 꿈을 꾸길래 그렇게 힘들어해?”라며 영문 모를 표정을 짓다, 미묘한 살인 미소를 보인다.

압도적 공포 분위기...잘 짜인 각본

연극 ‘조각’은 대학로 연극 중에서 ‘공포’라는 꽤 특이한 장르를 선점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로 연극이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시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소극장으로 운영되는 특징과 암전 시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특징을 생각하면 연극과 공포의 결합은 무척 안성맞춤이다. 

조각은 공포를 적절히 잘 분배하며 확실하게 이용했다. 공연장 입구부터 으스스한 그림과 사진, 소품을 배치하며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공포’에 흠뻑 빠져들었다. 애초에 공포물을 많이 무서워하는 기자는 벌벌 떨며 입장했고, 공포의 스릴을 즐기는 여자친구는 당당하게 웃어넘겼다.

연극 조각 공연 모습(사진=조각)
연극 조각 공연 모습(사진=조각)

공연장 좌석도 타 공연과 달리 특별했다. 개별적인 객석으로 이루어진 대부분 연극과 차별점을 둔 조각은, 다인석 등받이 의자를 사용하며 옆 사람과의 숨결과 살결이 닿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암전 시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감각 정보로 인해 공포가 극대화될 수 있었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는데, 초장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뽑아갈 생각이었는지 무척이나 휘몰아친다. 다행히 기자는 무서움이 많지만, 연극에서 제공하는 공포의 스릴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뭐가 그리 무서운지 기자의 왼팔에 매달려 벌벌 떨고 있었다. 다른 객석을 둘러보니 무서워하는 관객이 무척이나 많았다. 

연출과 더불어 극의 공포를 더 하는 배우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모든 배우가 각자 맡은 역할에 완벽히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특히 눈에 띈 건 희태 역을 맡은 ‘이준송’ 배우였다.

희태가 극 중 공포를 경험하는 당사자이다 보니 넘어지고, 화내고, 소리치고, 울먹이며 감정선이 무척 심하게 널뛰는데도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게다가 넘어지는 장면이 대충 세어봐도 6번이 넘을 정도로 몸을 내던지는 살신성인 연기를 펼쳤다. 극이 흐를수록 희태에게 ‘지옥도’가 주어지며 이 배우의 오른쪽 눈이 충혈되고, 손바닥은 빨갛게 부어오르며, 양 팔뚝의 핏줄이 두드러질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아마 그의 연기는 기자의 머릿속에 오래 남을 듯하다.

연극 조각 커튼콜 후 포즈 취하는 배우들(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조각 커튼콜 후 포즈 취하는 배우들(사진=최재혁 기자)

대학로에는 수많은 연극이 있지만, 연극 ‘조각’은 그 속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며 밝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듯하다. 이들의 압도적인 공포는 매일 대학로 ‘댕로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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