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신음하는 세입자...살인까지 이어져?

연극 오백에 삼십 커튼콜(사진=최재혁 기자)
연극 오백에 삼십 커튼콜(사진=최재혁 기자)

[CEONEWS=최재혁 기자] 2·30대 중에 주거 고민에 빠지지 않은 청년이 몇이나 될까.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서, 치솟는 전세금을 맞춰줄 수 없어서, 내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어려워서 결국 저렴하고 좁은 집을 택한다. 어찌어찌 형편에 맞춰 들어간 집세는 점점 오르는데, 내 아르바이트 비와 월급은 제자리에 멈춰 서있다. 자꾸만 돈을 내놓으라는 집주인의 횡포에 점점 참기가 힘들어진다. 청년의 삶은 고달프다.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 모습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 모습

가난한 게 죄는 아니잖아?

돼지빌라에 사는 떡볶이 상인 ‘허덕’은 삶에 허덕이는 중이다. 베트남에서 만난 배우자 ‘흐엉’과 함께 열심히 장사하고 있지만, 동네 꼬마와 같은 빌라에 사는 돈 없는 주민들이 가끔씩 찾아올 뿐이다. 흐엉의 배는 점점 불러와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아이에게 먹일 분유값 조차 남지 않았다. 

하루에 한 시간씩 나름 열심히(?) 고시 공부하며 미래의 판사, 검사를 준비하는 ‘배변’은 밥 먹을 돈이 없어 허덕의 떡볶이를 몰래 얻어먹고 지낸다. 한 푼도 아까운 흐엉의 눈살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지금 당장 아무것도 없는 배변은 공짜 떡볶이가 아니면 배를 채울 수 없다. 게다가 빌라의 관리비를 걷고, 계단 청소를 해주며 월세를 무려 ‘3만 원’이나 깎을 정도로 한 푼을 아끼며 살아간다.

많은 남성의 눈을 사로잡는 ‘미쓰 조’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매일 밤에 나가 일을 하며, 복장도 야시시한 게 직업이 궁금할 정도다. 또 매일 시켜먹는 중국집에서 항상 2개의 식사를 주문하는 걸 보면 혼자 사는 게 아닌 것 같다. 비밀을 항상 품고 사는 미쓰 조는 고운 외모와 다르게 험한 입을 소유한 덕에, 흐엉에게 한국의 다양한 욕을 전수하고 있다.

지하에 사는 폐지 줍는 할머니 역시 허덕의 떡볶이로 하루를 살아간다. 보기와 다르게 ‘썸남’도 있는 할머니지만,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 공짜로 떡볶이를 갈취한다. 흐엉에게는 배변과 할머니는 무전취식하는 나쁜 사람이고, 한국말을 알려주고 떡볶이도 많이 사주는 미쓰 조만 좋은 사람이다.

옥탑방에도 한 청년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주민들은 만난 지 너무나 오래돼 얼굴도 까먹을 지경이다.

모든 주민이 삶에 허덕이며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 밝은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서로간의 끈끈한 우정을 쌓고 있다. 이때 건물주가 등장해 밀린 집세를 달라며 윽박지르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월세가 없는 허덕과 흐엉은 “열심히 돈 벌어올테니 며칠만 기다려주세요”라며 집주인의 자비를 구한다. 그러나 돈이 세상의 전부인 집주인에게는 마땅치 않다. 그는 “돈도 없는 게 어디서 애를 싸지르냐. 그러니 베트남 여자나 데려와서 사는 거 아니냐”며 귀를 의심케하는 폭언을 터트렸다. 

돼지빌라의 모든 주민은 합세해서 분노하는 허덕을 말리고, 집주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사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집주인의 권력은 강력했다. “불만 있으면 모두 이 건물에서 떠나라”고 말한 그는 “무릎 꿇으면 한 번은 봐줄게”라며 굴복을 요구했다. 그릇된 요구지만 흐엉 뱃 속의 아기를 생각한 허덕이 무릎을 꿇고 만다. 이를 지켜본 집주인은 “그럼 그렇지. 네까짓 게 나한테 별 수 있겠어? 꼴에 베트콩 여자랑 사는 주제에”라며 다시 한번 흐엉을 까내리며 퇴장한다.

다른 건 다 참아도 흐엉과 뱃 속의 아기를 건드리는 일은 참을 수 없었던 허덕은 망치를 들고 집주인을 따라간다.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 모습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 모습

누가 집주인 죽였을까?

다음날 집주인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형사는 집주인의 행적을 쫓다 돼지빌라 주민과 마주한다. 뭔가 숨기는 게 많은 듯한 주민의 모습에 하나하나 심문하며 퍼즐을 맞춰나간다.

동기만 보자면 살인 용의자로 허덕이 유력하지만, 미쓰 조와 배변도 집주인을 살해할만한 충분한 동기를 소지했다. 미쓰 조의 직업을 들이밀며 큰 다툼이 있었고, 배변을 꼬시려다 실패한 집주인은 그와 몸싸움이 있었다. 모두가 범인일 수 있기에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졌던 돼지빌라 주민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극 ‘오백에 삼십’은 코믹 추리극이다. 로맨스코미디 장르가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로 연극계에서는 특별한 장르로 여겨진다. 추리는 관객의 집중도를 급격히 높여준다. 특히 ‘살인사건’이라는 중차대한 일에 감정을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형사처럼 증거와 정황을 종합해 범인을 지목하고 있다.

기자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범행이기에, 아무래도 큰 다툼이 있었던 허덕이 범인 아닐까 추리했다. 비록 “저는 사람은커녕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허덕은 말했지만, 사람이 욱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마냥 추리만 하면 긴장감이 무척 유발돼, 손과 발이 저릿하고 기 빨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에 연극 출연진들은 시종일관 관객을 웃기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행동을 지으며 긴장을 풀어준다. 특히 집주인으로 출연한 배윤정 배우의 능청스럽고 통통 튀는 표정 연기는, 웃찾사 시절 개그맨 김신영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처럼 코믹 추리극으로 관객을 웃기며 반전의 충격을 선사할 연극 ‘오백에 삼십’은 매일 대학로 ‘아트포레스트’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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