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은 마음에서 만들어낸 착각
눈 호강하는 배우의 환상적인 연기력

[CEONEWS=최재혁 기자] 연극 '운빨로맨스'는 네이버 인기 웹툰 원작으로, 점과 운명을 맹신하는 여자와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 믿는 남자의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연극이다. 본 연극은 웹툰과 드라마 성공에 이어, 2017년 1월 초연 이후 최단기 15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학로 대표 로맨틱코미디 연극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중단된 후 지난 5월, 약 1년 만에 공연을 재개했다. 

연극 운빨로맨스 장면(사진=운빨로맨스)
연극 운빨로맨스 장면(사진=운빨로맨스)

"왜 나만!" 자꾸 따라오는 머피의 법칙

하는 일마다 옴팡지게 재수 없는 '점보늬'는 어릴 적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데다, 하나뿐인 동생도 식물인간 상태다. 게다가 자신과 친하게 지내기만 하면 온갖 나쁜 일이 생겨 하나둘 떠나간다. 보늬는 이 상황이 자신의 '운빨'에 크나큰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며, 영적인 힘에 의지하고자 한다.

동네방네 소문난 점집은 물론이고 저 멀리 용하다는 곳까지 찾아가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늬는, 마침내 용한 무당에게 "호랑이띠 남자와 하룻밤을 지내면 모든 액운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천기누설을 듣는다. 드디어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까무러치는 보늬는 주변에 호랑이띠는커녕 남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제택후'는 악착같이 돈을 안 쓰고 모아, 40대 초반 나이에 건물 한 채를 구매한 나름(?) 재력가다. 비록 낡고 허름한 건물이지만, 꼬박꼬박 월세를 받아 쌓여갈 자신의 계좌를 생각하면 매 순간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러나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자꾸만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다. 404호 세입자 점보늬는 월세를 3개월이나 미납한 '악성 세입자'다.

보늬에게 밀린 월세를 받으러 노크하는 택후는 갑자기 소금 세례를 받는다. "안 사요!"라며 소금을 무진장 뿌려댄다. 다음 기회를 노린 택후는 우연히 카페에서 보늬를 만난다. 단지 보늬에게 말만 걸었을 뿐인데, 손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보늬는 뭐가 불안한지 자꾸만 소금을 뿌린다. 

만사 제쳐두고 호랑이 남자를 찾던 보늬는 뜻밖의 사실을 깨닫는다. 알고 보니 '악덕 집주인' 택후가 호랑이띠 남자인 것이다. 어떻게든 꼬셔서 하룻밤을 지내고자 하지만 '첫사랑'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택후는 넘어오지 않는다. 결국 보늬는 좌절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택후는 점·무당을 맹신하는 보늬에게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단지 재수가, 운이 없을 뿐인데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뿐인데 다른 곳에 의지하려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런 택후에게 보늬는 "저도 처음엔 그냥 재수 없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무당의 말이) 한두 번씩 맞기 시작하면 믿을 수밖에 없어요"라며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연극 운빨로맨스 장면(사진=운빨로맨스)
연극 운빨로맨스 장면(사진=운빨로맨스)

든든한 버팀목에 기대어

보늬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 택후는 직간접적으로 그를 돕는다. 아무 호랑이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려는 보늬를 막고, 신앙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다.

흔히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거듭 생기면 "마가 꼈나?", "올해가 아홉수라 그런가?"라며 이유를 찾곤 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양자론'을 들이대며 "모든 일은 우연히 발생한다"라며 이유를 찾지 말라고 한다. 

말이 쉽지, 우연히 발생한다는 말을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믿더라도 내게 지속해서 나쁜 일이 생기면 '아, 요즘 유난히 재수 없네'라는 생각으로 넘길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대처하기 위해서, 약간이나마 대응이라도 할 수 있다는 위안이라도 필요하다. 그래야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보늬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가족의 사고와 주변 지인들의 떠나감, 변변치 않은 직업에 똥파리 같은 인간은 자꾸만 꼬인다. 이에 보늬는 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악행의 이유를 찾게 되고,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어 신앙에 기대게 된 것이다.

일명 '머피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위 상황은 주변을 둘러봐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난 되는 일이 없어", "어차피 망한 인생 다음 생에는 행복하길 바라자"라며 우울해하고 포기해버린다. 

포기하긴 이르다. 보늬에게 택후가 있듯, 당신에게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당신이 회복하길 바라고,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만을 바란다. 

안 좋은 일이 생기듯,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 하지만 전자가 내게 너무 크게, 아프게 느껴져서 후자가 잊히고 말았을 뿐이다. 힘들 때일수록 좋은 일을 생각하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일어서야 한다. 택후가 보늬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주듯이.

연극 운빨로맨스 장면(사진=운빨로맨스)
연극 운빨로맨스 장면(사진=운빨로맨스)

강렬하고 진중한 연기

기자가 방문한 2월 9일 공연에는 전대현, 이상희 배우가 각각 '제택후'와 '점보늬' 역할을 맡았다. 전 배우는 이전에 관람한 연극 '쉬어 매드니스'에서도 만났던 터라 무척 반가웠고, 처음 만난 이 배우도 마치 토끼와 같은 똘똘한 얼굴에 힘 있는 연기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점보늬의 이상희 배우는 맡은 역할이 워낙 슬프고 우울한 연기가 많아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점쟁이를 만나러 간 등장 신부터 슬픈 얼굴을 하며 얼굴이 사르르 미세하게 떨리는 연기를 선보여, 출중한 연기력으로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택후의 전대현 배우도 특유의 진중한 듯 까불거리는 역할이 찰떡처럼 알맞아 매 순간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작품 후반부 크게 소리 지르며 우는 장면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반전에 울음을 멈추고 활짝 웃는 모습이 천생 연기자였다.

연극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제4의 벽'을 허무는 게 아닐까. 하지만 때론 장점이 독이 될 때가 있다. 관객과 소통하는 건 좋지만, 자꾸 말을 섞다 보면 극의 몰입도를 헤친다. 연극 운빨로맨스는 제4의 벽을 최대한 존중하며 극에 집중하는 모습이 상당히 깔끔하고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배우의 진중한 연기를 몰입해서 관람할 수 있다.

이토록 진중하고 때론 코믹한 웃음을 안겨주는 연극 '운빨로맨스'는 매일 대학로 컬처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운빨로맨스 커튼콜 모습(사진=최재혁 기자)
운빨로맨스 커튼콜 모습(사진=최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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