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에 맞춰 자유로운 만남 후 일상을 기록
높은 가격보다 구하기 어려운 상품 선호하고, 현실적인 목표 위해 허리띠 졸라매

사회 트렌드(사진=픽사베이)

[CEONEWS=최재혁 기자] 매년 연말이 되면 다음 해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과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누군가는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누군가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쫓아다닌다. 트렌드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유행을 말하니, 결국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 뜨면 변하는 트렌드를 모든 사회인이 매번 맞춰갈 수 없기에, CEONEWS가 직접 2022년 트렌드를 정리해봤다.

임혜숙 과기정통부장관이 나노코리아 2021 개막식에 참석했다(사진=산업부)

나노 사회, 자신의 취향에 맞춰 자유로운 만남과 헤어짐 추구

코로나19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해 사회 활동이 줄어들고, 개인 취향이 강조되는 MZ 세대가 주를 이루며 '공동체 사회'에서 '개인 사회'로 변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조각조각 모래알처럼 흩어지며 옆집 이웃조차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고립된 섬이 되어간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가 극소단위로 분화됐다는 의미에서 '나노 사회(Nano Society)'라고 부른다.

나노 사회 현상은 산업화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찾아오며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최근 경향성이 매우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트렌드 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변모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 광고(사진=가연)

"코로나19로 친구를 못 만나서 아쉽지만, 회식이 줄어서 너무 기뻐요"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일상에 너무나 많은 제약이 생겼지만,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늘어난 것을 반기는 이들도 무척 많았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 1,549명에게 '코로나 통금'에 대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48.1%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특히 30대 직장인의 51.8%가 만족한다고 답하며 바뀐 트렌드를 증명했다.

사회가 개인으로 흩어진 나노 사회의 특징은 2가지로 나뉜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후 자유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인 가구의 수는 664만 3,354가구로 전체 가구의 31.7%나 차지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약 1/3이나 되는 가구가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난도 작가는 저서 '트렌드코리아 2022(김난도 외, 미래의 창)'에서 "가족 공동체가 지닌 결속력이 약해지고, 가정이 수행하던 역할은 외주화되면서 구성원 각자가 홀로 살아가는 개체가 됐다"며 "오순도순 함께 먹던 집밥의 자리는 편의점 음식과 간편식으로 대체되는 등 가장 작은 사회인 가족 공동체가 흩어지면서 개인화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수한 개인으로 찢어졌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연결되길 바란다.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느냐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제약 아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고 집중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어려워지자, 결혼 정보 업체나 소개팅 앱 등을 활용한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속에 원하는 앱을 깔고 필요에 따라 켜고 끄듯, 얇고 넓게 자유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추구하며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지금까지 어떤 목적성으로 집단을 이루고 살던 개인은 흩어지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 자유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추구하는 '나노 사회'가 찾아온 것이다.

데이트 어플 틴더 모습(사진=틴더)
네이버블챌 홍보문(사진=네이버)

일상으로의 초대

집단에서 개인으로 트렌드가 변하자,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기록을,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과 삶이라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근 기록과 블로그가 급부상하고 있다. 생활의 변화를 관측하는 생활변화관측소는 '기록하다'라는 키워드 언급량을 조사한 결과 2017년 상반기 4,000건 대에서 2021년 상반기 7,000건 대까지 약 80% 상승했다. 또 '기록하다+블로그'도 2019년 1,000건 대에서 2021년 상반기에 벌써 3,000건 대가 넘어섰다.

한때 '블로거지(블로그+거지)'라는 말까지 생기면서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블로그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다시 읽어보는 일기장이자 일상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일기와 일상의 공유는 '열심히'에서 '꾸준히'로 바뀐 트렌드를 증명했다. 현재 세대를 이끄는 MZ 세대는 한 건에 모든 힘을 실어서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콘텐츠보다, 지속해서 무언가를 꾸준히 한 후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의미를 생성한다. 

바뀐 트렌드를 예측한 네이버는 '네이버 블로그 오늘 일기 챌린저(이하 네이버블챌)' 이벤트를 열어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매일 한 게시글에 단 한 줄이라도 블로그에 남기면, 3일 연속 네이버 포인트 1,000원, 10일 연속이면 5,000원 더, 14일 동안 작성하면 추가로 1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라 동기부여는 충분했다.

문제는 트렌드에 너무나 부합했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3일 동안 약 56만 명이 참가해, 너무 많은 참여자가 몰리자 시작한 지 3일 만에 이벤트를 종료했다. 만약 이 56만 명이 14일 동안 일기를 썼다면 네이버는 89억 6,000만 원을 지급해야 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네이버블챌 조기종료 안내문(사진=네이버)

코로나19 이후 키워드는 '여행', '친구', '모임'에서 '일상', '혼자', '집'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밖에서 여럿이 시끄럽게 소비되던 것이 집에서, 혼자 단조롭게 소비된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연결된 사람들끼리 기록을 남기고, 타인의 기록을 보고, 반응하며 다시 그 반응에 다시 반응하며 동지애를 느낀다.

에르메스 핸드백 광고(사진=에르메스)

높은 가격보다, 구하기 어려운 한정품 선호

2010년대만 해도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 예를 들어 '에르메스'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다니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힐긋힐긋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한정 판매로 인해 구하기 어렵지만, 가방 하나에 보통 직장인의 월급 1.5~2배나 되는 가격에 몸서리쳐진다. '명품'의 상징이 '브랜드 가격'이 되는 시대였다.

사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비싸고 유명한 명품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은 지금도 인기 브랜드지만, 전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요즘은 무작정 비싼 가격의 '브랜드'가 아닌, 구매하기 어려운 '상품'의 가치가 과시와 차별화의 요소가 되고 있다.

최근 맘카페에서 가장 핫한 상품은 의외로 '스타벅스 굿즈'다. 얼마나 치열한지 '스타벅스 굿즈 얻기 노하우'라는 게시글이 올라올 정도다. 기획상품인 굿즈는 한정판으로 출시되기 때문에, 매번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그동안 높은 가격이라는 보이는 이미지로 자신의 지위를 표시하고자 했던 소비자들은, 한정판이라는 새로운 표식을 찾아냈다. 이전에는 가격을 기준으로 고가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재력이 타인과 나를 차별하는 기준이지만, 이젠 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누가 '득템(원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능력)'하느냐가 너와 나를 구별 짓는 수단이 되고 있다.

소비자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또 과정 자체를 SNS에 올리며 자랑하는 경우가 반복되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득템한 상품을 다른 소비자에게 되파는 '리셀테크(리셀+재테크)'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일수록 웃돈이 제품 가격의 2배에 달하는 경우가 있어 많은 물건을 독점하는 전문 업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도 한정판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한정된 물량만을 판매해 소비자를 굶주리게 만든다는 의미의 '헝거 마케팅(hunger marketing)'을 사용하며, 소비자를 길들이고 있다.

스타벅스 체리블라썸 굿즈(사진=스타벅스)
스타벅스 체리블라썸 굿즈(사진=스타벅스)

1억 모으기 프로젝트

"형, 저는 30살까지 1억 원 모으는 게 목표에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친한 동생이 대뜸 계획이라며 한 말이다.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지 결국 돈에 대해 떠들게 된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내 집 마련 등 어느덧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나이가 됐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30살 1억이라고 유튜브에 검색한 결과(사진=CEONEWS)
30살 1억이라고 유튜브에 검색한 결과(사진=CEONEWS)

'30살까지 1억 원 모으기 프로젝트'는 화젯거리인 계획이다. 당장 유튜브에 '30살'을 검색해보면 '30살에 1억 원'을 모으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무수히 튀어나온다. 실제로 소셜 빅데이터상으로 '1억 원 모으기'에 대해 어느 연령대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지 살펴본 결과 20대 커뮤니티에서 2017년 1분기 대비, 2021년 2분기에 약 7배의 증가세를 보였다. 열심히 벌어 1억 원을 모으고자 하는 20대의 열망이 이만큼 강렬하다.

목표가 1억 원인 이유는 뭘까? 1억 원은 당연히 큰돈이지만, 비현실적인 금액이 아니다. 5억, 20억 원을 모으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1억 원은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면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20대에게 1억은 기본적으로 자산 증식을 목적으로 한 ‘시드 머니’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측면도 있다.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지 않았고, 진로를 탐색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여윳돈을 갖고 버틸 금액으로 1억 원을 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기자는 친한 동생에게 "어떻게 모을 건데?"라고 물으니 "밥은 시리얼이나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옷을 포함한 패션에 돈 안 쓰고, 오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랑 오후에는 배달 알바하면 한 달에 50만 원은 저축할 수 있겠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 대화는 20대가 소비를 바라보는 시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욜로(YOLO)' 성향에 혀를 끌끌 찼지만, 한때의 현상이었을 뿐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20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트렌드를 정리하다 보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집단이 해체되고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됨은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전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것만 같다. 지나간 트렌드가 그리워짐은 단순한 아쉬움일까, 내가 나이 들었기 때문일까?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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