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중요성을 멋지게 풀어내며 훈훈한 웃음 안겨

영화 '장르만 로맨스' 포스터(사진=NEW)

[CEONEWS=최재혁 기자]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 정통 로맨스 시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가 등장한 이후로 서서히 저물었다. 가뜩이나 복잡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 진지하고 무거운 로맨스보다, 가볍고 즐거운 로코가 훨씬 편하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벌써 15여 년 동안 극장가의 자리를 차지한 로코도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다. 왈가닥 주인공 위주의 영화에서, 다양한 인물 간의 갈등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 그리고 '로맨스'를 최대한 지우며 일상 속에 숨겨진 '사랑'을 코믹하게 풀어내는 영화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와중에 영화 '장르만 로맨스(감독 조은지)'는 대놓고 장르만 로맨스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 영화는 로맨스 장르인가, 장르만 로맨스인가? 과연 어떤 영화일까?

글이 써지지 않는 현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 장면(사진=NEW)
글이 써지지 않는 현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 장면(사진=NEW)

유진 "저는 타인과의 관계에 별 관심 없어요"

베스트셀러 작가 '김현(류승룡)'은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로 꼽히지만, 7년 전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 30년 지기 출판사 사장 '순모(김희원)'도 현이 펜을 들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해 현이 글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위스로 여행을 보내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본인은 오죽할까? 현은 낚시도 해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등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그때 한 남자가 초인종을 누른다.

'유진(무진성)'은 현의 열렬한 팬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선물해준 책이 바로 '현의 책'이었고, 현의 글을 읽으며 따뜻하고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유진은 존경하는 현을 생각하며 자신도 작가의 길을 걸어간다.

현을 만나기 위해 유진은 직접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글 못 쓰고 계시죠? 그거 부담돼서 그래요. 전에 쓴 글보다 더 못 쓸까 봐"라며 정곡을 찌른다. 현은 허허 웃으며 대답을 피하지만, 속이 영 쓰려 대화를 나눌 겸 함께 술 한잔을 기울인다.

처음 만났지만 의외로 말이 잘 통하는 현과 유진은 작품에 대해 논한다. "저는 타인과의 관계에 별 관심 없어요"라고 유진이 말하자, 현은 "관계는 작품의 필수 요소고, 관계의 갈등은 가장 흥미로운 요소야. 글 쓰는 사람이 관계에 관심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라며 혼낸다. 이윽고 유진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현을 바라보며 "...사랑해요..."라는 외마디를 남긴 채 술에 취해 쓰러진다. 그 뒤로 현의 얼빠진 표정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현은 식탁 위에 '유진'이라는 소설 원고를 발견하지만, '사랑한다'는 유진의 말이 섬뜩해 구석에 내팽개친다.

이제 막 시작된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학 교수로도 활동 중인 현은 자신의 강의실에서 유진을 발견한다. "우리 학교 학생이었냐?"는 현의 질문에 "저 선생님(현) 수업 들으려고, 휴학도 했어요"라며 애정을 뿜어낸다. 하지만 현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유진이 너무나 버겁다.

이후 현이 의도적으로 유진을 피하며 인연이 끝날 듯했지만, 원고 '유진'을 발견한 순모가 "너무 좋은 글이야. 꼭 장편으로 만들어서 출판하자!"라며 호들갑을 떤다. "해봤자, 아직 등단도 못 한 애송이의 습작이 잘 나가 봤자 얼마나 잘났겠어"라는 현은 유진을 읽고 싶은 고뇌에 빠진다.

다가오는 유진을 거부하는 현(사진=NEW)
다가오는 유진을 거부하는 현(사진=NEW)

색은 섞여도 본질은 남아있다

순모의 협박에 굴복한 현은 결국 자존심을 팔기로 한다. 유진에게 찾아가 조심스레 "공동 집필로 해보면 어떨까?" 묻자, 유진은 곧바로 "네"라고 응답한다. 현은 유진이 찝찝하지만, 작품을 위해 유진의 집에서 원고 마감까지 한시적 동거를 시작한다.

'유진'의 내용은 늙은 남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이는 바로 현을 사랑하는 유진의 이야기며, 유진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다. 유진의 빼어난 글솜씨에 작품을 시작했지만, 관계에 대한 거부감에 "사랑한다는 말이 누구에겐 큰 상처고, 범죄일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유진은 "제가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께 뭘 원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제 사랑이 문제일 수 있죠?"라며 의견 논쟁을 벌인다.

사랑이 둘의 사이를 멀게 했지만, 현은 노력하는 유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열며 무사히 원고를 끝마치게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7년 만에 복귀작 소식에 여론은 뜨거워지며 돈 벌 일만 남은 현과 유진에게 풍파가 몰아닥친다. 유진을 짝사랑하며 현과 앙숙 관계인 작가가 "현과 유진은 스승과 제자, 동거 관계 즉 서로 사랑하는 사이며 ‘유진’의 내용 또한 둘의 사랑 이야기"라며 언론에 폭로한다.

유진의 커밍아웃을 지키기 위해 현은 출판·광고 위약금을 물 생각까지 하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뉴스에 익숙한 얼굴이 등장해 "제가 선생님(현)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선생님과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다. 또 공동 집필에 아무런 대가가 없었다"며 유진은 현을 보호한다.

커밍아웃 후 모든 사람과 연락이 끊긴 유진. '사랑'한다는 말에 유진의 진심을 오해했던 현은 자신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출판기념회에서 "몇 가지의 색이 섞여 다른 색이 된다고 하더라도 색의 본질은 남아있다. 나는 색의 본질을 보고 싶다"고 말하며, 유진의 커밍아웃을 응원했다. 이후 현은 해외여행 중 약속하지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유진과 재회한다. 반가이 인사하며 "사랑해요"라는 유진의 말에 현이 무척 당황스러워하며 영화는 끝난다.

'관계'는 영화의 중심 메시지로, 앞서 말한 현과 유진을 포함해 모든 등장인물이 얽히고설켜 갈등과 봉합이 이어진다. 현과 유진의 첫 만남은 호의였지만 고백으로 갈등이 벌어지고, 유진의 능력과 따뜻한 마음을 인정하며 갈등을 봉합했지만, 다시 동료 작가와 갈등이 생긴다. 끝없는 관계의 갈등과 봉합 속에서 유진과 현은 서로를 알아가고 진심으로 소통하게 됐다.

갈등은 대부분 오해에서 생긴다. 유진의 사랑 고백이 너무 무서웠던 현이지만, 알고 보니 존경심과 애정이 합쳐진 사랑 표현이었다. 또 유진을 향한 사회의 비틀린 시선은 그의 진심을 모른 채 오해가 연속된다. 오해하지 않고, 또 오해를 풀기 위해선 상대를 향한 편견이 없어야 하고 목적 없는 순수한 궁금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진실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우선이다.

현과 유진의 이야기는 세대, 젠더 등 관계의 갈등으로 범벅된 우리 사회에,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장르만 로맨스'는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유진과 현의 브로맨스를 선보이며 관계의 갈등을 멋지게 풀어내는 (브)로맨스 코미디였다. 명품 연기파 배우 류승룡과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 무진성이 함께한 '장르만 로맨스'는 지난 17일 전국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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