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펼쳐진 영화제 레드카펫
박찬욱, 부산에 ‘친절한 금자씨’ 들고 찾아와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사진=부산국제영화제)

[CEONEWS=최재혁 기자] 5,200만 시민의 국가에서 천만 관객 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할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는 나라는 손에 꼽는다. 미국, 서유럽, 인도, 일본 등의 나라는 명작과 명감독을 무수히 쏟아내고, 이들을 평가할 영화제를 개최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영화제가 있다. 'BIFF' 불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에 첫 개막작을 선보인 뒤 2021년 지금까지 26회째 운영 중이다. 세계 굴지의 영화제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어느새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형준 부산시장(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형준 부산시장(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의 대표 상품으로 떠오른 '부산국제영화제'

부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등 재래시장 분위기와 '롯데 자이언츠'로 대표되는 열정적인 부산 시민의 야구 사랑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지만, 현대적인 도시 분위기가 떠오르는 서울과 굉장히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재래시장과 야구단은 서울에 더 많다. 그렇다면 부산이 서울과 비길 수 있는, 더 우월한 건 뭐가 있을까?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다.

당연히 영화관이나 관객은 부산보다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1980년부터 부산 영화인들이 힘을 합쳐 다양한 소극장을 열고, 지방 최초로 단편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무수한 노력을 펼쳤다.

그리고 1996년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했다. 영화제를 기획했던 1990년 당시에는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를 하냐"는 영화인들의 비아냥이 가득했지만, 막상 개최하자마자 대한민국은 물론 외국 손님이 대거 참석하는 등 전국적인 대흥행을 일으켰다. 

최고의 영화제로 떠오른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창기 시절 비화가 있다. 영화제가 개최된 남포동 일대는 영화 마지막 상영이 끝나는 12시 즈음이면 식당 문을 모두 닫아 갈 곳이 없어진다. 영화의 여운이 남아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운 외국 손님과 평론가들은 함께 모여,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밤새 술을 마셨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명물이 된 '스트리트 파티'에서는 홍콩 왕가위 감독이 폭탄주를 만든 후 벽에 휴지를 던져 붙이고, 술 먹다 보니 옆자리에 칸 영화제의 집행 위원장이 앉아있고, 해운대 포차에서 장동건과 일본 유명 배우 ‘오다기리 조’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제가 끝나는 10시에 모두 숙소로 돌아가, 스트리트 파티를 즐길 수 없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흥행에 힘입어 남포동 극장가는 활기를 띠게 되고, 거리 곳곳에 세계 유명 영화인들의 핸드 프린팅이 부조되는 등 부산은 영화의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기자회견 중인 최민식 배우(사진=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기자회견 중인 최민식 배우(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콘텐츠 & 필름 마켓 현장 모습(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콘텐츠 & 필름 마켓 현장 모습(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 찾은 최민식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웠다"

"바다의 도시 부산,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밤. 환상적인 야외극장, 팬데믹을 뚫고 모여주신 관객 여러분. 오늘 밤 유일한 문제는 제 영화 ‘행복의 나라로’입니다. 부디 운이 좋길 바랍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행복의 나라로’의 임상수 감독의 인사말로 '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만에 레드카펫을 밟는 영화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올드보이로 유명한 최민식 배우는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웠다. 이제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모든 분이)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위드(with) 코로나'를 외치며 시작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영상산업의 변화 속에,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TT) 시리즈물을 상영하는 '온 스크린'이 신설됐다. 

지난해엔 개·폐막식과 부대행사 없이 영화 상영만 했으나 올해는 '축제' 분위기가 조성됐다. 올해 공식 상영작은 70개국 223편이며 '커뮤니티 비프' 상영작은 63편이다. 지난해는 작품당 1회 상영에 그쳤으나 올해는 예년 수준인 2~3회로 늘렸다. 신설한 '동네방네 비프'를 통해 14개 마을 공동체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단, 코로나 방역에 맞춰 전체 좌석의 50%만 운영한다. 개·폐막작의 경우 입장 시 예방접종을 2차까지 완료하거나 개·폐막일 기준 72시간 이내 PCR 음성 확인 증명서 또는 문자를 제시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포스터(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포스터(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출품작 '언프레임드' 포스터(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출품작 '언프레임드' 포스터(사진=부산국제영화제)

직접 찾은 부산국제영화제

기자는 미리 영화제에 등록 후, 지난 8일 금요일부터 10일 일요일까지 부산에 있었다. 8일 아침 9시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약간 쌀쌀한 인천의 바람과 달리,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부산의 햇빛과 짭조름한 바람이 여름처럼 느껴졌다.

우선 기자증 발급을 위해 영화의전당으로 향했다. 해운대 센텀시티에 위치해, 김해공항에서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걸렸다. 김포에서 부산까지 1시간밖에 안 걸렸는데, 김해공항에서 해운대까지 비슷한 시간이 소요됐다.

센텀시티역에 도착하니 커다란 건물 세 개가 눈을 휘어잡았다. 앞쪽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이 자리 잡고, 그 뒤에 영화의전당이 형님들 뒤에 서 커다란 덩치를 몰래 숨기고 있다. 영화의전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외국인 관계자와 스태프 몇 명이 지나다닐 뿐, 거리가 텅 비어있어 영화제 분위기가 실감 나지 않았다.

마침내 영화의전당에 도착했다. 기자증이 있어야 좌석을 예매할 수 있어, 기자증 발급이 우선이었다. 관계자석으로 가는 도중 스태프가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안심콜 전화하셨어요?" 기자는 당황해서 "안심콜이 뭐죠? 미리 해와야 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알고 보니 '코로나 안심콜 출입 신청'이었고, 기자는 대부분 QR코드로 입장했기에 잘 몰랐다.

험난한 과정을 뚫고 관계자석에 도착한 기자는 힘겨운 목소리로 "기자증 발급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드디어 영화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벽에 가로막혔다. "신분증과 PCR 검사표 보여주시겠어요?"라는 스태프의 질문에 좌절했다. 알고 보니 기자증 발급을 위해선 10월 4일 이후로 받은 PCR 검사표가 필요했다.

결국 첫날 계획한 3편의 영화를 모두 포기했다. 급하게 영화의전당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다음날 오후 1시 이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 이미 대부분 영화가 매진된 탓에 게스트 좌석이 아니면 영화는 꿈도 꾸지 못한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기껏 부산까지 내려와 발만 동동 구르며 영화도 못 보는 아쉬움에도 살아날 구멍이 있었다. 미리 신청해둔 '부산국제영화제 온라인 스크리닝'을 통해 개인 PC로 몇몇 영화를 볼 수는 있다. 당장 피시방에 찾아가 온라인 스크리닝 페이지를 열었다. 다행히 보고 싶었던 영화가 꽤 많아, 식었던 마음이 어느새 뜨거워졌다.

우선 먼저 볼 영화는 '더 아일랜드'(감독 안카 다미안)로 월드 시네마 부문에 출품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다. 이미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명성을 크게 얻은 '안카 다미안' 감독의 작품이라 많은 관객의 관심이 쏠린 작품이다. 피시방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첫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꽤 비참했지만, 환경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았다.

피시방 구석 자리에 앉아 조용히 헤드셋을 끼며 영화를 영접할 준비를 끝마쳤다. 막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감상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헤드셋을 통해 영어가 들리는데, 내 눈을 통해 들어오는 자막도 영어다. '이게 무슨 영문이지?' 싶어 영화제 홍보팀에 전화해 문의했다. "스크리닝 홈페이지는 저희가 빌려서 사용하는 거라서 다른 조치가 어렵고요. 스크리닝이 애초에 외국 기자분들 상대로 준비하는 거라 자막은 영어만 가능합니다"라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 

결국 기자가 볼 수 있는 영화는 한국 영화뿐이다. 아, 물론 한국 영화도 굉장히 좋은 영화가 많지만, 계획한 영화들 대부분이 외국 영화라 아쉬울 따름이다. 다급히 영화 소개, 평을 번갈아 보며 재밌을 만한 한국 영화를 찾았고, 장편 '철선'(감독 김지곤), '그 겨울, 나는'(감독 오성호), '뒤틀린 집'(감독 강동헌), '새해전야'(감독 홍지영), '언프레임드'(감독 최희서, 손석구, 박정민, 이제훈), 단편 '개미무덤'(감독 이솔희), '둔내면 임곡로'(감독 천시형)를 봤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영화의전당(사진=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영화의전당(사진=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친절한 금자씨' 장면(사진=영화 '친절한 금자씨')
영화 '친절한 금자씨' 장면(사진=영화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과의 대화

이후 무사히 코로나 음성 결과표를 가지고 기자증 배지를 발급받았지만, 이미 세워둔 계획은 다 일그러졌다. 대부분 좌석이 매진된 차에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친절한 금자씨'가 커뮤니티 비프에서 상영한다길래 바로 예매했다.

커뮤니티 비프는 '관객이 정하는 영화 상영'이라는 특수한 프로그램으로, 관객 프로그래머가 선정한 영화를 색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또 게스트를 초청해 영화에 대한 토크도 마련된다. 친절한 금자씨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토대로 주인공 금자의 '광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토크쇼 게스트로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과 허경 철학박사가 등장했다. 박찬욱 감독이 등장하자마자 객석이 술렁거렸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올드보이'를 꼽는 기자에겐 박찬욱 감독이 우상이나 다름없다. 그와 만남이 너무나 꿈만 같았다.

"감독이 젊었으니 영화도 참 젊다"며 토크를 시작한 박찬욱 감독은 금자의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에 대한 비화를 설명했다. "한창 힘든 90년대 후반에 친구가 내 꼴을 보고 설교하는데, 듣다 듣다 못 참아서 그 대사를 했다"며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라 나도 놀랐는데, 그 기억이 잊히지 않아서 대사로 썼다"고 일화를 전했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자 마지막으로 관객 질문을 받았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기자는 손을 번쩍 들며 박 감독에게 질문했다. 우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영화 너무 재밌게 잘 봤다"는 인사를 전했고, 박 감독은 자리에서 꾸벅 인사했다. 이어 "메타포로 '법구경'이 등장하는데 금자의 복수와 역설적인 의미로 느껴진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 부탁한다"고 말했다.

5초 정도 골똘히 고민한 박 감독은 "법구경은 여성 간첩이 사용한 물건인데 그 자체가 역설"이라며 "전도사가 금자를 찾아와 회유하는 장면이 있는데, 금자가 귀엽게 '저 이제 절 다녀요'라며 거절하는 장면이 좋아서 법구경을 장면에 집어넣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과 약 5분 정도 대화를 이어가는데 성실한 태도로 답변해주니 무척 고마워, 기자는 전보다 더 박 감독의 팬이 됐다.

처음으로 참석하는 부산국제영화제다 보니 많은 준비를 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런데도 즐길 만큼 즐겼으며, 박 감독과 대화하는 뜻밖의 행운을 쟁취했다. 부산의 열기는 뜨거웠다. 날씨도 무척 더웠지만, 금요일에 텅텅 빈 영화의전당 거리가 주말에는 영화인으로 가득 차며 북적였다. 아직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불타는 마음에 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감염에 대한 위협이 사라져, 내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온전히 즐기고 싶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5일 폐막작 '매염방'(감독 렁록만) 상영을 끝으로 열흘 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토크하는 박찬욱 감독 모습(사진=부산국제영화제)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