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나라 이종기 대표, 사진=최종원 기자)

[CEONEWS=최종원 기자]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 하려뇨"

조선시대, 시조의 대가로 평가받는 이정보(李鼎輔, 1693 ~ 1766)의 시조이다.

옛 사람들의 술 문화에 빠지지 않는 자연과 풍류를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예전에는 문 밖에만 나서면 산과 들, 시냇물 같은 정감 어린 자연이 있었지만 지금은 창문 밖에는 아파트와 건물들 밖에 보이지 않으니 우리의 술문화 속에 자연을 끌어들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통에 기반하지만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각 지방별로 술을 빚는 도가들이 900 여 곳 이상이 된다고 하니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다양하고 개성 있는 술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 술 역사의 산증인, 문경의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

서울대학교 농화학과 75학번인 이종기 대표는 오비맥주, 씨그램,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을 지내면서 패스포트, 썸씽스페셜, 윈저 시리즈와 골든블루 등 국내 위스키들이 이대표의 손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으니 자타공인 국내 양조 및 증류의 1인자가 틀림없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문경에서 오미자와 사과를 원료로 한 술을 만들고 있을까? 1990년 스코틀랜드에 양조학 석사과정으로 2년간 유학을 갔을 때, 지도교수가 각자 자국의 대표적인 술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인삼주'를 갖고 갔는데 교수께서 일본의 사케와 위스키는 훌륭하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한국의 약재를 이용한 술 같은데, 이 술은 조미료 맛이 지배적이다"라는 혹평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소주이 인공감미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종기 대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우리 술을 꼭 만들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오미자의 주산지인 문경에 터를 잡았다.  이종기 대표는 쌀, 보리, 수수, 감자, 각종 과일 등 양조에 쓰이는 다양한 재료로 술을 만들어 봤지만 그 가운데 오미자가 가장 탁월했다고 한다. 오미자는 예로부터 한약재에 사용할 만큼 몸에 좋은 성분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이지 않았을까?

(오미나라 전경, 사진=최종원 기자)

양조장의 입구에는 '향기 그윽한 천년주막, 세계 명주가 익어가고 있네'라고 써 있다. 조령산에서 발원한 조령천과 월악산에서 흘러내린 영강이 서로 합류해서 하나의 물줄기가 되는 이곳은 깎아지는 직벽과 그 절벽 사이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산길로 이어져 있지만, 과거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길을 다녔다고 한다. 문경새재길에는 조령원 터가 있는데, 조령원의 '원'은 오늘날의 숙소, 여관이라는 뜻으로 영남의 관리들이나 선비들이 문경새재를 넘다가 하룻밤을 묵었던 곳이라고 한다. 자, 숙소가 있으니 당연히 주막이 있었을 터. 바로 오미나라 양조장을 만든 곳이 이 고장에서 가장 오래된 '주막'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오미나라 시음장 입구 현판에 '천년주막(千年酒幕)'이라고 쓰여있다. 

세계 명주로의 진화

국내 마스터블렌더 1호인 이종기 대표와 천년주막 터인 오미나라 양조장에서 우리 술에 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오미나라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제품들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잘 아시다시피, 문경에서는 오미자와 사과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오미자로 와인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체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때문에 발효와 숙성이 어려워서 연구개발에만 5년 정도가 걸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특별한 발효균주를 만들어 냈고 기술개발을 통해서 스파클링 와인(연, 결)과 스틸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세계핵안보정상회의에 참가한 35개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의 오미로제(OmyRose)가 건배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청와대 국빈행사에 자주 사용되었고 한국와인대상,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 낸 와인으로 만들어 낸 최고급 증류주 '고운달'이 있구요. 문경의 사과를 증류해서 만든 '문경바람'이 있습니다. 이 제품들도 우리술 품평회 증류주 부문에서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5성급 호텔과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고운달, 사진=최종원 기자)

Q. 우리나라에서 술을 좋아하는 일반인 뿐만 아니라, 우리 술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분들에게도 상당히 유명하신데 대표님께서 이루려는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 일까요?

A. 저는 농화학과를 나와서 운이 좋게도 대기업에서 술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는 맥주가 귀할 때 였는데 제품 출하 전에 품질관리를 위해서 무작위로 선택해서 마셔봐야 했습니다. 아침부터 말이죠. (웃음)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술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을 사다가 국내양주도 만들어 보고 또한 해외의 좋은 술을 수입해서 국내에 유통도 해보았습니다만 더욱 우리 술에 대한 책임감이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명주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한국 술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세계3대 증류주는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프랑스의 '코냑(브랜디)', 중국의 '마오타이' 입니다. 우리 주변 국가인 중국의 마오타이를 보면 1915년 파나마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을 이래 열다섯 차례이상 국제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2016년 영국의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한 전 세계 브랜드 가치에서 조니워커 위스키와 헤네시 코냑을 뛰어 넘어 당당히 1위를 차지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술의 랭킹을 매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산업과 전통문화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평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오래전에는 우리나라 전국에 상당히 많은 양조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각 지역별로 한국 농산물로 만든 최고의 술을 만들어서 백두대간을 따라서 예전의 명성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제가 문경에 양조장 뿌리를 내린 이유도 오미자의 최대 생산지이며 '문경바람'의 재료인 사과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찾아가는 양조장'이란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술의 종류와 양이 많다는 것과 1,000여개의 양조장이 이렇게 영세한 상황인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양조장집이라면 그 일대의 가장 부유한 집안일 경우가 많았다.  1930년대 희석식 소주의 도입과 일본의 주세 탈취, 1960년도 순곡주 제조 금지령 등의 과정들을 통해서 그 명맥이 끊어지고 대기업의 독점으로 인해서 지역별로 차별화된 한주(韓酒)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은 조금 나아지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의 주세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오미나라의 대표적인 술, '고운달'

일반적으로 맥주와 와인은 발효주(醱酵酒), 위스키와 코냑은 증류주(蒸溜酒)로 구분한다. 발효된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되고, 와인을 증류하면 코냑이 되는 것이다. 다만, 코냑이라는 것은 "All brandy is not cognac, but all cognac is brandy" (모든 브랜디가 코냑은 아니지만, 모든 코냑은 브랜디이다) 이란 말처럼 코냑은 코냑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랜디(Brandy)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똑 같은 발포성 와인이라고 하더라도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고 코냑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랜디만을 '코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 그렇다면 '고운달'은 어떤 술일까? 

2017년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고운달'은 이종기 대표의 36년 양조기술 결정체로서 시판과 동시에 주류전문가로부터 찬사를 한몸에 받은 술이다. 오미자는 천연의 5가지 맛인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 신맛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라틴어로 'The maximowiczia Typica' 즉 '최상의 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문경의 오미자를 수확하여 3년이라는 시간동안 발효, 숙성과정을 거친 후 샤랑트 증류기를 통해 뽑아낸 후 다시 3년을 문경백자와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브랜디(Brandy)'의 한 종류이다.

얼마전에 지인들과 많은 위스키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조니워커 블루와 고운달을 비교 테스트 해본 적이 있다. 조니워커 블루, 스모키함으로 대변되는 피트(Peat)향이 가득한 위스키는 보리가 주원료이고 이탄(이탄)으로 훈연한 몰트(malt)를 사용하여 증류한 뒤 오크통에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목 넘김을 좋게 하기 위해서 회사의 비법으로 그레이(gray) 위스키를 배합해서 완성된다. 상당히 고가로 판매되고 맛 또한 훌륭해서 많은 마니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고운달은 아직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다고 생각이 된다. 고운달의 원재료는 오미자이다. 원재료의 가격에서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세에 따라서 조금 다르겠지만 유기농 오미자 1Kg당 12,000원 정도가 된다고 하니 최소한 원재료의 가격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봐야한다. 게다가 오미자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할 만큼 다양한 효과가 있지 않은가. 고운달을 마시기 전에는 향기를 음미해 봐야한다. 오미자의 향이 코끝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 과일, 허브향이 조화롭게 느껴지며 50도의 높은 도수이지만 목 넘김이 상당히 부드럽다. 오크통 숙성 제품은 오크통 특유의 삼나무향이 기분 좋은 향을 더해준다. 

조니워커 블루는 곡물로 만든 위스키이고 고운달은 오미자라는 과일로 증류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승부는 포도를 발효시킨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brady)와의 승부가 더욱 어울릴 것 같다.

(오미나라 샤랑트 증류기, 사진=최종원 기자)

Q 대표님, 이렇게 좋은 술이지만 상당히 고가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A.  오미자 와인 한 병에 오미자가 약 600g 들어갑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유기농 오미자 1kg에 12,000원대 입니다. 그런 오미자와인 5~6병을 증류시켜야 고운달 한 병의 양이 나옵니다. 증류과정에서 일년에 원액의 5~10% 정도씩 증발돼 없어지는데 고운 골드 빛과 향을 내기 위해서 워낙 작은 오크통(25L)을 사용하다 보니 제조원가가 워낙 높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세계의 술시장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Q. 오미나라에서는 '고운달' 같은 명주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또 다른 고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A. 현재의 주류 정책과 주세법은 전통술의 발전이 아니라 안정적인 세수 확보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출고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지금의 상황은 고가 제품일수록 세금도 함께 오르는 구조여서 술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싼 원료를 사용해서 고품질의 제품을 출시하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부터 꺾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안으로서는, 외국처럼 술의 양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로 전환하면 대부분의 전통술 가격을 최소한 30~40% 낮출 수 있습니다. 

술 마시는 예법, 향음주례 (鄕飮酒禮)          

향음주례는 향촌의 선비, 유생들이 향교나 서원 등에 모여서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일종의 유교의례인데, 이는 음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효(孝)·제(悌)·목(睦)·린(隣)'을 권장하는 주례(酒禮)를 통한 훈련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Q. 젊은 사람들이 어떤 음주문화를 갖추었으면 좋을까요?

A. 코로나시대에 이전부터 젊은 층으로부터 음주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한 소통으로 서로를 신뢰하게 되어 '공동의 선'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가진 ‘향음주례’라는 풍류와 예절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해서, 정성껏 만든 오미나라의 술을 즐기면서 전통의 문화를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미나라 주 모습, 사진=최종원 기자)
(오미나라 주 모습, 사진=최종원 기자)

문경새제 천년주막 (이종기)
맑은 술 향기로워 
온 내음 잠잠하고  
바람이 맡긴 마음  
너와 나 분별없네 
한바탕 놀이 마당에 
흥에 겨운 길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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