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서 명인, 사진 제공=명인안동소주)
(박재서 명인, 사진 제공=명인안동소주)

우리나라 술의 역사

[CEONEWS=최종원 기자] 고려 때의 [고려도경, 高麗圖經]의 기록을 보면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이렇게 좋은 술은 못 마시고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같은 기록이 있다. 백성들이 마시던 술은 아마도 막걸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막걸리의 맑은 윗부분을 떠낸 것을 청주라고 부르고 여기에 다양한 재료를 넣으면 법주 같은 여러 종류의 청주가 된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센 도수의 술을 만드는 방법을 잘 몰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주와 같은 소주(燒酒)는 언제부터 만들었을까? 역사학자들은 13세기 고려 시대 말에 원나라를 통해 몽골인들이 즐겨 먹던 소주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개성에도 소주를 ‘아락주’라 했다고 하는데 '아락(Arag)'은 증류주를 뜻하는 아랍어로, 소주는 중세 페르시아에서 시작됐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

소주 계열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안동소주'인데, 그렇다면 왜 안동에서 소주가 만들어졌고 유명해졌을까? 고려몽골연합군이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를 안동과 개성에 두었고 원나라에서 전해오는 소주 레시피가 그대로 현지에 전해졌기 때문으로 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700년 한국의 전통주

현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 매일 전국에서 엄청난 양의 소주가 판매되고 있는데 지금의 것과 전통적인 소주는 완전히 다른 술이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나 사탕수수 같은 원료로 당밀을 만들고 연속식 증류기를 이용하여 증류하면 약 95% 정도의 에탄올 즉, 먹는 알코올(주정, 酒精)이 된다. 여기에 물과 첨가물을 넣어 도수를 낮춘 것이다. 반면에 전통 방식의 소주는, 밀이나 쌀로 만든 누룩과 쌀을 쪄서 만든 고두밥에 좋은 물을 섞어서 발효주를 만들고 소줏고리라는 옹기를 활용해서 한 방울씩 증류해서 내린 술이므로 당시에도 상당히 귀한 술이었고 집안의 제례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각 지역과 집안마다 전통적인 레시피로 발전하면서 부(富)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1904년 일본에 의해서 조세 수탈을 위한 주세법이 만들어졌고 영세한 규모가 대부분이었던 전통주는 일제의 주조 자본에 의해서 설 자리를 잃었으며 밀주 제조 단속의 강화로 전통주의 명맥은 거의 소멸하다시피 했다. 이후 소주는 개성 이북 지방에서, 탁주는 개성 이남의 지방에서 주로 소비되었는데 1927년 지금의 희석식 소주의 도입으로, 그 당시 진천양조상회 같은 곳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던 고가의 증류소주는 점점 도태되기 시작하였다. 해방 후에도 일제 당시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에 전통주의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1960년대 중반 '순곡주 제조 금지령'과 강력한 밀주 단속으로 그야말로 전통주는 궤멸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명인안동소주 박찬관 대표, 사진=최종원 기자)
(명인안동소주 박찬관 대표, 사진=최종원 기자)

우리나라 전통술의 부활

전통 방식의 증류소주가 가장 발전한 안동(安東)에서도 지금까지 약 5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명인안동소주 박찬관 대표와 한국의 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Q. 부친이신 박재서 명인께서는 어떤 계기로 안동소주와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A. 저희 선조 중, 조선 명조 때 은곡 박진 15대 할아버님께서 안동에 정착하면서 후학을 가르치셨는데, 부인이셨던 할머님을 통해서 가양주로 빚은 것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1960년대 순곡주 제조 금지령에 따라서 잠시 명맥을 이어오지 못하다가 조모와 모친께서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법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빚는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저가형 희석식 소주나 대량으로 수입되는 양주들이 주로 소비되었고, 몇 가지 전통주를 복원하려는 사업이 시도되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세계에 알릴만한 전통주가 필요했고, 이를 계기로 해서 전국에 8대 민속주를 제조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안동에 주조공장을 만들자는 제안이 왔고,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동소주를 만들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명인안동소주 선물용 제품, 사진제공=명인안동소주)
(명인안동소주 선물용 제품, 사진제공=명인안동소주)

Q. 전통적인 방식의 안동소주는 어떤 특별함이 있나요?

A. 소주는, 누룩과 쌀, 물로 만들기 때문에 간단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만의 누룩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밑술과 덧술 만들기 그리고 열을 가해서 증류하는 방법, 여과 및 숙성이 이뤄지고 나서야 제품으로 출시가 됩니다. 저희는 막걸리를 만들어서 소주로 증류하는 2단 방식이 아니라, 누룩과 고두밥을 섞어 밑술을 만드는 과정을 세 차례 반복해 발효시켜서 덧술을 만드는 3단 단금기법(사양주)을 사용하고 40일가량 발효시킨 후, 청주 상태에서 증류하기 때문에 맛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또한, 직접 불을 때서 직접 가열하는 상압식으로 청주를 증류하게 되면 잔류물이 눌어붙으면서 화근내(탄내)가 발생하기 때문에 명인안동소주는 간접가열식인 감압식으로 증류해서 비교할 수 없는 깔끔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찾아가는 양조장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1720년에 문을 연 최초의 카페인 플로리안(Florian)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의 매니저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카페는 3백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단 하루도 변화하지 않으려고 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찾아가는 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하는 전통주 산업 활성화 정책 중 하나로, 2013년부터 매년 지역별 우수 양조장을 선정하여, 품질 환경개선과 체험 프로그램 개발 및 홍보 마케팅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심사를 거쳐 추천된 양조장 가운데, ㆍ품질 인증 ㆍ양조장의 역사 ㆍ지역사회와의 연계성 ㆍ관광 요소 ㆍ품평회 수상 이력 등의 기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정한다. 명인안동소주는 2015년에 지정되어 이 지역을 대표하여 음식, 문화 그리고 농산물 다른 문화상품과 연계해서 안동소주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주조공장 내에 마련된 시음회장, 사진=최종원 기자)
(주조공장 내에 마련된 시음회장, 사진=최종원 기자)

Q. 박찬관 대표께서는 군에서 오랫동안 계셨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준비해 오셨나요?

A. 몇 년 전까지 육군 장성을 꿈꾸는 영관 장교였습니다.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우리 가문의 무형 자산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라’는 말씀이 저에게 큰 사명감을 느끼게 하셨고, 군에서 예편한 뒤에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명인안동소주 브랜드 마케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역 관광과 연계된 ‘찾아가는 양조장’을 신청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과, 전통 소주를 내릴 때 사용하던 맷돌, 시루, 단지, 소줏고리 등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곳을 찾아오시는 많은 국내 및 해외 관광객에게 안동소주를 시음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준비했습니다.

술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이나 한국의 전통주를 즐기려는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서 술맛에 대한 개선을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량생산을 하더라도 품질이 균일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현대화된 자동제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은 삼성전자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공장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견학코스가 준비되어 있어서 직접 주조 공정을 보실 수 있는데, 공장 내부의 커다란 발효기는 외부의 기온과 습도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으면서 일정하게 발효되어 40여 일 동안의 숙성기간을 통해서 균일한 맛의 청주로 바뀌게끔 자동제어 됩니다. 

(주조공장 내부, 사진=최종원 기자)
(주조공장 내부, 사진=최종원 기자)

한국의 안동소주, 세계화를 꿈꾼다.

2007년 10월, 명인안동소주는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건배주로 선정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주(國酒)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에는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 벨기에 몽드셀렉션 등 세계 3대 주류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우리 술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Q. 명인안동소주에서는 어떤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나요?

A. 저희는 주력제품인 45도와 35도, 22도 세 가지 소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증류해서 처음 나오는 80도 정도의 술을 초류라고 부르는데, 휘발성이 강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후, 자동제어를 통해서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시는 45도의 안동소주를 생산하고요. 그리고, 젊은 층을 위한 낮은 도수로서는 35도와 22도가 있습니다. 낮은 도수 소주도 물을 희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증류량을 조절해서 도수를 맞추는 방법으로 생산하고 있어서 원재료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우리 양조장을 방문하시면 명인안동소주의 역사와 소주 박물관을 보실 수 있고, 전통 방식으로 소주를 만드는 방법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산하고 있는 소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공간까지도 잘 준비되어 있으니 오셔서 즐겨 보시길 권합니다.
 

(박찬관 대표,박춘우 팀장,  사진=최종원 기자)
(박찬관 대표,박춘우 팀장,  사진=최종원 기자)

명인안동소주의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은 박찬관 대표의 아들인 박춘우 팀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재서 명인은 이 회사의 오너이자 전통의 맛을, 박찬관 대표는 CEO로서 생산과 마케팅을,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박 팀장은 제품의 품질 개선을 담당하면서 3대의 협업으로 가업의 전통을 이어 나가는 모습에서 전통주의 장래는 더욱 밝아질 것 같다. 

Q. 박춘우 팀장께서는 가업을 이어 나가면서 어떤 보람을 느끼셨나요?

A. 이제 회사에 합류한 지 5년 정도 되었지만, 그전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어떻게 명인안동소주를 성장시키셨는지 봐왔기 때문에 저도 지역적인 전통술을 넘어서 브랜드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제품이 남북정상회담 등 국가적인 행사의 건배주로 사용되었고, 올해 초에도 청와대 선물용으로 납품한 것으로 품질에 대한 검증을 받았다고 생각했고요. 여러 차례 세계 3대 국제주류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위스키나 코냑, 보드카, 고량주처럼 앞으로 우리의 전통술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명주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년경, 한류열풍이 불던 일본에서 막걸리의 인기가 상당히 치솟으면서 국내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막걸리 누보 vs 보졸레 누보’대결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정부에서는 막걸리의 세계화를 부르짖었고, 햅쌀로 만든 막걸리와 그 해 포도로 만든 보졸레 누보와 대결 구도를 만들어서 막걸리를 홍보하였으며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막걸리의 날’로 선포해서 프랑스 ‘보졸레 누보’축제나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와 같이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런 계획이 유지되지 않고 있다. 전통주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 시장에서 대중화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주 업체 간의 저가 경쟁보다는, 좋은 원료로 제대로 만든 프리미엄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MZ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전통의 맛은 유지하면서도 패키지는 유니크하고 트렌디한 브랜드 디자인으로 지평을 넓혀가는 전략이 병행된다면 우리나라 전통주의 세계화는 그리 먼 꿈이 아닐 것 같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