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시도와 변화로 한국 최고 부자 등극
‘더기빙플레지’가입...‘재산 절반 사회 환원’ 밝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사진=카카오)

[CEONEWS=최재혁 기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서울로 상경한 후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장노동자로, 어머니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가던 단칸방에 살 정도로 흙수저였다. 김 의장은 재수 시절,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3번이나 혈서 쓰며 정신을 다잡은 끝에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한다. 대학생활은 김범수 의장이 향후 인생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됐고, 초기 인터넷 시절부터 그 가능성을 느꼈고, 대학원에서 PC 통신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까지 받는다. 졸업 후 1992년, 전문연구 요원으로 '삼성SDS'에 입사했다.

삼성SDS에서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기반을 닦았다. 입사 직후 양식 편집기 '폼 에디터',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했다. 

1990년대 말 PC방과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자,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규모의 PC방인 ‘미션넘버원’을 부업으로 운영했다.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000만 원의 자본을 모았다. 1998년 삼성SDS를 그만두고  게임회사 '한게임'을 설립했다. 한게임은 창업한 지 1년 6개월 만에 1,000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늘어난 회원 수와는 별개로 적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익모델이 부족해 넘쳐난 트래픽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한게임은, 2000년 삼성SDS 동기 이해진 GIO가 이끌던 '네이버'와 합병하며 ‘NHN’ 공동대표가 된다. 한게임은 초창기 NHN의 수익 대부분을 담당하며 네이버를 국내 포털 1위 자리에 올려놓았고, 김 의장은 2004년 NHN의 단독 대표이사에 오른다.

2005년부터 2006년 말까지 NHN 글로벌 담당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에는 NHN 미국법인 대표를 맡는 등 중요 직책을 책임졌지만, 급작스레 대표직을 던지며 2009년 미국으로 떠난다. 김 의장은 퇴직하며 직원들에게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고 메일 보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리를 박차는 듯해 보였지만, 이해진 GIO와 경영에서 의견 차이를 보였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김 의장은 미국에서 몇 차례 사업을 벌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카카오 프렌즈 오프라인 샾(사진=카카오)
카카오 프렌즈 오프라인 샾(사진=카카오)

‘카카오톡’ 발판으로 높이 뛰어올라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2008년, PC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동영상과 사진 등 콘텐츠 공유가 가능한 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벤처기업 ‘아이위랩’을 인수해 '카카오톡'을 출시한다.

카카오톡은 시작부터 대박을 기록했다. 회원 수는 반년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고, 1년째에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때 김 의장은 아이위랩의 사명을 아예 카카오로 변경하며 브랜드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한게임 때처럼 수익모델이 없던 카카오톡은 적자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한 번의 위기극복 경험이 있던 김 의장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방준혁 넷마블·코웨이 의장과 만나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12년 중국 텐센트로부터 720억 원, 위메이드에서 200억 원 등 총 920억 원가량의 투자를 유치하며 자금난을 해결했다. 같은 해에는 70억 원 흑자를 기록하고, 이후 이익을 수백억 원 규모까지 늘리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14년 김 의장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었다. 카카오톡이 경쟁 메신저와 경합을 벌이고, 해외 시장에서는 네이버의 '라인'이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위기론이 제기됐다. 김 의장은 "네이버가 1등이고, 다음이 2등인데 같은 차선으로 달리면 어떻게 네이버를 이길 수 있나. 새 합병법인은 차선을 갈아타야 한다"며, '다음'과 합병하며,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불과 수년 전 자신이 몸담고 있았으나 지금은 최대 경쟁사인 NHN을 상대로, 다음의 콘텐츠와 카카오의 트래픽을 합쳐, 네이버를 이기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012년 12월2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기자간담회에서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 등 카카오의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카카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012년 12월2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기자간담회에서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 등 카카오의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카카오)

흙수저에서 대한민국 최고 부자 등극...그늘도 있어

김 의장은 올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올랐다. 7월 29일(현지시각) 미국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김 의장은 135억 달러(약 15조 4,926억 원)의 순 자산을 보유해 국내 1위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순 자산인 123억 달러(약 14조 1,179억 원)를 뛰어넘었다. 국내 벤처 붐을 일으킨 1세대 경영인이 여느 대기업처럼 상속과 승계를 일절 거치지 않고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한국 최고 부자에 등극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의장이 이끄는 카카오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높은 성장세를 보인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시가총액 10위권 밖에 있던 카카오는 비대면 업무 상용화에 힘입어 2021년 네이버와 시가총액 3위를 놓고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매출도 역대 최대인 4조 1,500억 원에 달한다. 또 작년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웹툰 등 계열사도 상장을 앞둔 만큼 사업 확장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김 의장은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삼성SDS를 뛰쳐나와 한게임을 만든 것,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시킨 것, 네이버를 떠나 미국으로 간 것, 모두 환경을 변화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환경에 변화를 준 것이, 내 성공 비결"이라며 자신의 성공은 변화의 시도에서 왔다고 강조했다.

2016년 5월2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총장 취임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초대 총장으로 선임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오른쪽)이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함께 걷고 있다(사진=카카오)
2016년 5월2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총장 취임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초대 총장으로 선임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오른쪽)이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와 함께 걷고 있다(사진=카카오)

드라마 같은 성장 신화에는 그늘도 있다. 카카오는 김 의장을 중심으로 한 기형적인 지배구조다. 사실상 김 의장의 막강한 지분으로 운영되는 셈인데, 그만큼 의중이 잘 반영되지만, 견제 장치는 미흡하다.

카카오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김 의장이 카카오를 지배하고, 상장사인 카카오가 수십 개 계열사의 지분으로 각각을 지배하는 형태다. 순환출자가 이뤄지지 않지만, 롯데와 CJ 같은 지주회사 체제도 아니다. 대신 카카오가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며 인수, 분사 등을 통해 투자 규모와 진출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카카오택시(사진=카카오)
카카오택시(사진=카카오)

카카오가 거느린 계열사는 2021년 기준 118개로 웬만한 재벌그룹을 뛰어넘는데다,  계열사를 대거 편입시키며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 펼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8월 3일 공개한 '2021년 5∼7월 대규모 기업 집단 소속회사 변동 현황'에 따르면 카카오는 이 기간 신규 편입 계열사가 13개로 가장 많은 기업이었다. 카카오는 '안테나', '예원북스' '스튜디오하바나' '엔플라이스튜디오' '파이디지털헬스케어' 등을 계열사로 추가했다. 계열사가 매년 평균 20개씩 늘어나는 카카오의 성장세가 매섭다. 

거침없이 성장하는 카카오의 지분은 김 의장이 14.38%, 케이큐브홀딩스가 11.43%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카카오의 1대, 2대 주주인 셈이지만, 케이큐브는 김 의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카카오 관계자는 이런 기형적인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에  "구글처럼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라는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며 "감사위원회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이사회 산하에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한 ESG 위원회를 뒀다"고 말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016년 5월26일 성남시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취임 및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스타트업캠퍼스 운영전략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카카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016년 5월26일 성남시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취임 및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스타트업캠퍼스 운영전략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카카오)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현대중공업지주, 서울아산병원이 손잡고 의료 빅데이터사업에 진출했다. 2018년 8월29일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 합작투자계약 체결식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뒷줄 오른쪽 세 번째)와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뒷줄 오른쪽 두 번째)이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카카오)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현대중공업지주, 서울아산병원이 손잡고 의료 빅데이터사업에 진출했다. 2018년 8월29일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 합작투자계약 체결식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뒷줄 오른쪽 세 번째)와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뒷줄 오른쪽 두 번째)이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카카오)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 꿈꾸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은 김 의장은, 자신과 같은 불우한 환경의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사회 변화와 혁신이라고 생각한 김 의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자발적 기부 운동인 '더기빙플레지'를 통해 공식 서약을 했다.

그는 서약서를 통해 재산의 절반 이상 기부를 밝히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던 저는 30대에 이를 때까지 '부자가 되는 것'을 오직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며 달려왔다. 그러나 목표했던 부를 얻고 난 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면서 "의미 있게 산다는 것에 관해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서약을 시작으로 우리 부부는 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려 한다”며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또 다른 혁신가들의 여정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장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라고 적혀있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지나, 퇴사와 합병 등 수많은 고비를 넘나들고, 변화를 시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된 그의 꿈은 '전보다 나은 삶'이다. 김 의장의 꿈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닐까. 그의 꿈을 응원한다.

대화 나누는 김범수 의장(사진=카카오)
대화 나누는 김범수 의장(사진=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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