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욱 재계 거목 경영인이 페이스북에 공유

[CEONEWS=김충식 기자]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기형도 시인이 쓴 ‘홀린 사람’이라는 작품이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특정한 대상을 우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사회자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누군가가 그분에게 질문을 던지고, 군중들이 울먹이고 실신하는 모습은 우매한 대중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시의 시대는 비단 80년대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작금의 시대에 사회자는 현대사회의 언론일 수도 있고, 언론의 탈을 쓴 선동가들일수도 있다. ‘그분’은 우리가 감히 손댈 수 없는 존재감있는 대상일 수도 있다. 어쩌면 80년대에 우매한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훌륭한 분’으로 성장해 가슴에 ‘금배지’ 하나 달고 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며칠 전 한 삼성 퇴직자가 쓴 글이 화제가 됐다. 그는 자신을 ‘16년 간 삼성에 몸담았고, 떠난 지 18년이 된 선배’라 소개하며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 밤낮 가리지 않고 땀 흘린 선배들, 나, 그리고 지금의 후배들까지 100만이 넘는 삼성인들이 지금껏 한 일이 고작 밤새 협력업체나 쥐어짠 일이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 무책임한 사람이, 16년간 가슴에서 단 하루도 배지를 떼지 않았던 그 자랑스런 삼성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며 분노했다.

이는 앞서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홍 원내대표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3일 한 포럼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삼성그룹이 1, 2, 3차 협력업체들을 쥐어짜고, 쥐어짜서 오늘의 세계 1위를 만들었다”며 “삼성이 작년에 60조 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여기서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한테 1000만 원씩을 더 줄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이 글을 손욱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센터장(73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재계 내부에서도 해당 글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비록 손욱 센터장이 직접 해당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퇴직자 글을 공유한 사람이 과거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장(부사장), 삼성 SDI 사장, 삼성종합기술원장,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농심 대표이사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한 재계의 거목 경영자라는 점 때문이다.

글쓴이는 "'LAMAD(신입사원 입문교육)'에서 삼성전자의 볼품없는 카세트를 팔다 개에게 혼비백산 쫓기면서 돈의 가치를 배웠다"고 했다. "과장이 되기까지 모두 C등급 평가를 받으면서도 일의 가치를 배웠다. 10년 만에 뜻밖의 S등급을 받고 노력의 가치를 배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사전 나무위키는 삼성 인사고과에서 S등급을 받으려면 상위 10%안에 들어야 한다고 한다. A등급은 상위 25%, B등급은 상위 55%, C등급 하위 10%에 속한다.

또 "삼성이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에게 1000만원씩 돌아간단다"라며 "난 20조원의 크기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LAMAD(신입사원 입문교육)’ 중 배가 고파 초등학교 선생님께 20원을 구걸하면서도 '20원만'이라는 말을 못 했다. 지금껏 "담배 한 개비만"은 했었어도 "만 원만 빌려주세요"라는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국력이 미약했던 때, 해외 출장 중 외국 도심에 외로이 선 삼성의 간판은 내게 반가움보다 도리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며 최근 홍 원내대표의 발언은 삼성 출신 근로자의 자부심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처사라고 했다.

그는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 흘린 선배들과 나, 그리고 지금의 후배 여러분을 포함하여 100만이 넘는 삼성인들은 뭘 했다는 것인가"라며 "우리가 지금껏 한 일이 (홍 원내대표의 말처럼) 고작 밤새 협력업체나 쥐어짠 것이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세계 1등이 되기 위한 그 귀한 시간을 이렇게 폄훼하는데, 여러분은 분노라는 단어를 언제 쓰려고 아끼는가"라며 "수많은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이익을 내는 파렴치한 집단의 월급쟁이로 비치고 싶은가"라고 말했다.  

다음은 '삼성의 후배들아 왜 침묵하는가' 글 전문이다.

 

<삼성의 후배들아 왜 침묵하는가>

나는 16년간 삼성에 몸을 담았고 떠 난지 18년이 되었으니 여러분의 선배가 된다. 지난 13일 아침에 한 기사를 접했다. "삼성이 20조원만 풀면...".

나는 1984년, 대졸공채를 거쳐 삼성인이 되었다. 16년간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자정이 넘은 귀가는 일상이었다.

휴가는 꿈이었고 밤을 지샌 날도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삶에서 삼성인이었음은 내게 최고의 긍지며 자부심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삼성의 가족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삼성은 네 곳의 중소, 중견 기업에 탈락한 나를 받아 들여 더욱 그렇다.

오늘 나의 얘기는 삼성을 모르거나 까마득한 후배들에겐 도무지 이해 못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TV도 신문도 없는 28일간의 신입사원 교육에서 사람의 가치를 배웠다.

나는 'LAMAD'에서 삼성전자의 볼품없는 카세트를 팔다 개에게 혼비백산 쫓기면서 돈의 가치를 배웠다. 나는 과장이 되기까지 모두 C등급 평가를 받으면서도 일의 가치를 배웠다. 10년 만에 뜻밖의 S등급을 받고 노력의 가치를 배웠다.

1997년 세계 최고의 IT교육센터를 완공하고 1등의 가치를 배웠다. 그 후 벤처기업을 키우면서도 항상 삼성인의 자세로 살았다.

나는 새마을운동의 발원지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대학시절에 5.18을 겪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이 2천 달러 언저리 때에 삼성에 들어와 1만 달러를 넘기는 해에 삼성을 떠났다.

신입사원 시절 몸담았던 제일합섬의 옷을 팔려 가두에 좌판을 깔았다. 제일제당의 세제와 중앙일보를 팔았다. 시계, 카메라, 세탁기와 냉장고까진 괜찮았지만 IMF시대에 자동차를 팔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 외에 왜 그것들을 팔아야 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보너스를 대신한 삼성 자동차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었을 때도 그랬다. 우리라는 것에 대한 당연한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미약했던 때, 해외 출장 중 외국 도심에 외로이 선 삼성의 간판은 내게 반가움보다 도리어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세계를 이끄는 삼성이 되어 그 출신이란 인증서를 가졌다는 게 너무도 가슴 벅차고 고맙다. 이는 나의 16년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삼성의 후배 여러분들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하지만 한 무책임한 사람이, 16년간 가슴에서 단 하루도 배지를 떼지 않았던 그 자랑스런 삼성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삼성이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에게 1천만 원씩 돌아간단다.

난 20조원의 크기를 상상해 본적이 없다. ‘LAMAD’ 중 배가 고파 초등학교 선생님께 20원을 구걸하면서도 '20원만'이라는 말을 못했다. 지금껏 "담배 한 개피 만"은 했었어도 "만 원만 빌려 주세요"라는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20조 원만이란다.

또 삼성이 1위가 된 건 협력 업체를 쥐어 짠 결과란다.

그러면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 흘린 선배들, 나, 그리고 지금의 후배 여러분들을 포함하여 1백만이 넘는 삼성인들은 뭘 했다는 건가?

우리가 지금껏 한 일이 고작 밤새 협력업체나 쥐어 짠 것이었나?

세계 1등이 되기 위해 밤새고, 혼나고, 울고, 손뼉치고, 가슴 부둥켰던 그 귀한 시간들을 이렇게 폄훼하는데 여러분들은 분노라는 단어를 언제 쓰려 아끼는가?

오늘 나를 분노케 한 이가 대한민국을 위해 얼마를 벌었는지는 관심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삼성이 오늘날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어떤 보탬이 되었는지는 묻고 싶다.

그가 TV, 옷, 신용카드, 보험, 숙박을 선택할 때 자신의 돈으로 얼마만큼의 삼성제품을 구매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자신이 풀라는 20조원에 얼마만큼 보탰는지 묻고 싶다.

분초를 다투는 세계 곳곳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는 삼성에서 20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앞서서 싸워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던가? 그 정도를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간 우리가 쏟은 열정을 한 순간에 이렇게 함부로 짓밟아버리는가?

삼성이 걸어온 길에 비하면 한 톨 모래알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공으로 국회 배지를 단 것이 그토록 엄청난 힘을 주던가?

삼성은 말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과 땀으로 결과를 만드는 곳이다.

한 가족의 패륜아가 죽임을 당할 죄를 저질렀어도 가족은 그를 지키려 끝까지 울부짖는다. 그럼에도 나는, 가족이라 여기는 삼성을 이끄는 50세도 안된 한 청년의 포승에 묶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무능하고 나약한 구경꾼이었다. 그 시간 20만이 넘는 후배 여러분들의 심정은 어떠했었나?

하지만 여러분들도 침묵을 선택했다. 막을 힘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울부짖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후배들아, 우리는 세계가 존경하는 삼성의 배지를 가슴에 붙이고 있고 자랑스러워하는 가족이 있다. 이 때 우리의 침묵은 어떤 가치를 갖는가? 우리가 수많은 협력업체나 쥐어짜 이익을 내는 파렴치한 집단의 월급쟁이로 비치고 싶은가?

수년 전 내가 투표한 대통령이 나라를 어지러이 만든 것에 나의 어리석음을 수없이 탓했다. 그래서 그녀를 응징한 이들이 나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려 놓기를 응원했다. 그런데 오늘은 슬프고 무섭다.

오늘 절친한 친구에게 나를 분노케 한 사람을 두고 입에 담기 힘든 욕을 쏟았다. 그나마 속을 털어놓아 시원했다.

삼성에서 단 한번도 촉망 받는 인재는 아니었다만, 내가 숨을 거두는 날 삼성인이었음이 자랑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오늘 침묵을 깬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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